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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에 그린다 1959년판 자작시 해설집을 ‘청마를 지키는 사람들’에서 세로쓰기는 가로쓰기로, 한자어는 쉽게 풀어서 쓴 개정판입니다.
구름에 그린다1959년판 자작시 해설집을 ‘청마를 지키는 사람들’에서 세로쓰기는 가로쓰기로, 한자어는 쉽게 풀어서 쓴 개정판입니다. ⓒ 경남

그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벽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깃발')

 

제 또래라면 아마 학창시절 이 시를 외워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 저도 줄줄 외웠었습니다. 세월이 흐른 지금은 희미한 옛 기억에서 맴돌 뿐이지만…. 지난 8월 14일(음력 1908년 7월 14일 탄생)로 청마 탄생 100주년이 되었습니다.

 

지난봄에 통영 정량동 언덕에 있는 유치환의 생가 복원지(청마문학관)에 갔다가 책 한 권을 사들고 왔는데 그간 다 읽지 못하고 책꽂이에 꽂아뒀었습니다. 며칠 전에 다시 꺼내 다 읽었습니다. 유치환 시인이 자신의 시에 해설을 한 <구름에 그린다>란 책입니다. 이 책은 저로 하여금 유치환 시인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색깔론] 푸른색과 회색 사이

 

거제도와 통영은 청마 유치환의 자취가 가장 많은 곳들입니다. 서로 유치환의 고향이라고 하지만 태어난 곳은 거제도의 둔덕골입니다. 두 군데 모두 그가 살던 집이 복원되어 있습니다. 통영이든 거제도이든 바닷가라는 점에서는 예외가 아닙니다. 푸른 바다와 ‘청마(靑馬)’는 닮았습니다.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의 마음속 깊이 나부끼는 깃발은 오직 푸른색입니다. 순정입니다. 고결함입니다. 오죽하면 호도 ‘청마(靑馬)’일까요. 그가 살던 집에서도, 남망산에서도, 온통 푸른색의 바다만이 질펀하게 내려다보입니다. 유치환은 바다에 대한 그리움이 남달랐습니다. 바닷가에서 나 바다와 더불어 컸으니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물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그리움’)

 

파란 파도를 가슴으로 싸안으며 그리움을 달래고 있습니다. 한려수도의 푸른 바다와 유치환은 닮았습니다. 푸른색하고 유치환을 떼놓고 생각하기란 힘듭니다. 아직까지는 그랬습니다. 그러나 <구름에 그린다>라는 그의 책을 읽고 나서는 달라졌습니다. 그는 푸른색보다 회색에 가깝습니다.

 

쫓기인 카인처럼

저희 오오래 어두운 슬픔에 태웠으되

어찌 이 환난을 짐승이 되어선들 겪어나지 못하료.

저 먼 새벽 날 미개의 종족이

어느 암상에 활과 살을 팔짱에 끼고 서서(‘송가’의 일부분)

 

그는 이 시의 해설에서 “긍정적인 사유의 조목들은 오늘날 와서 따져보아 세일 수 있을 뿐 당시를 두고 말하면 그저 혼돈하게 함께 뭉쳐져 나의 생활 감정의 밑바닥을 저류하여 나를 인도하고 있었을 뿐”이라고 합니다. 실은 긍정이 아니라 허세라는 거지요. 회피란 죽음이요 무(無)이기에 그렇게 긍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푸른색이 아니라 실제는 회색입니다.

 

그 어느 세상부터

생긴 대로 살아온 이 서러운 삶들

 

어제는 인공기 오늘은 태극기

관언할 바 없는 기폭이 나부껴 있다(‘기의 의미’ 일부분)

 

청마는 망양대에서 두 깃발의 펄럭임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기의 의미’에서는 ‘깃발’의 푸름이 없습니다. 공산괴뢰의 인공기와 대한민국의 태극기가 공존하는 현실을 그저 관언할 수 없는 그였습니다. 그는 해설에서 “현실에 대한 응대의 고로”라고 적고 있습니다. 회색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통영에 있는 청마문학관입니다.
통영에 있는 청마문학관입니다. ⓒ 김학현

 

[국가론] 애국과 매국 사이

 

한의사인 아버지 유준수의 5남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난 유치환 시인은 비교적 유복한 집안 태생입니다. 그러나 그의 생애는 일제치하와 해방, 한국전쟁, 4.19 혁명, 5.16 쿠데타 등 격동적인 민족사와 같이 한 삶이었습니다. 당연히 그의 국가관이 관심거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생명파’의 동인지 '시인부락'의 동인이 아니라, ‘생리’라는 동인지를 통하여 활동했습니다. 그럼에도 청마를 ‘생명파’라고 합니다. 짙은 죽음이 드린 시대를 살면서 한결같이 생명의 깃발이 나부끼는 작품들을 썼다는 게지요. 서정주처럼 서정적이진 않지만 허무를 극복하려는 번민이 그의 시들에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허무주의를 자각함으로 생명에로의 초대를 이루려고 했다고 평가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런 평가를 볼 때는 그는 분명 허무한 시대에 생명을 노래하는 시인이었습니다. ‘깃발’과 ‘바위’를 통하여 그의 푸르고 흔들림 없는 힘은 맘껏 발휘됩니다.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에 물들지 않고

희노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의 비정의 함묵에(‘바위’ 일부분)

 

“일제군국주의의 무모한 전쟁은 마침내 영미와의 개전으로까지 이르렀던 것과 동시에, 그들의 광태는 그들의 비위에 거슬리는 한국의 지식분자는 모조리 말살해 치우려는 데까지 뻗쳐 … 내게도 항상 일제 관헌의 감시의 표딱지가 떨어지지 않고 붙어 다녔지만… ”(26쪽) ‘비력의 시’를 설명하면서 한 말입니다. 이 글의 기개처럼, 유치환은 형 유치진과는 달리 애국자로 자리매김 되어왔습니다.

 

그러나 ‘들녘’, ‘전야’, ‘북두성’ 등이 친일 논란에 휩싸이더니, 급기야 산문 형식의 글이 발견되어 그의 친일성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경남대 국어국문학과 박태일 교수가 발견한 1942년 2월6일자 만선일보(滿鮮日報)에 실린 청마의 산문, ‘대동아전쟁과 문필가의 각오’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오늘 대동아전의 의의와 제국의 지위는 일즉 역사의 어느 시대나 어느 나라의 그것보다 비류 없이 위대한 것일 겝니다. 이러한 의미로운 오늘 황국신민 된 우리는 … 오늘 혁혁한 일본의 지도적 지반 우에다 바비론 이상의 현란한 문화를 건설하여야 할 것은 오로지 예술가에게 지어진 커다란 사명이 아닐 수 업습니다.

 

만선일보는 1937년 만주에서 발행된 친일성향의 한글 신문입니다. 글 역시 황국신민으로서의 시인의 사명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유치환도 형 유치진과 함께 대표적인 부왜(附倭)문인으로 이름이 거명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시대의 아픔이 만든 애매모호함이 밝고 푸른 ‘청마’를 ‘구름에 그리고’ 만 것일까요.

 

 1942년 2월6일자 만선일보(滿鮮日報)에 실린 청마의 산문, ‘대동아전쟁과 문필가의 각오’라는 글입니다. <연합뉴스> 갈무리
1942년 2월6일자 만선일보(滿鮮日報)에 실린 청마의 산문, ‘대동아전쟁과 문필가의 각오’라는 글입니다. <연합뉴스> 갈무리 ⓒ 연합뉴스

 

[신론] 무신론과 유신론 사이

 

의외로 이 책에서 유치환은 신에 대한 언급을 많이 했습니다. 제가 신앙인이라 그런지, 그 일갈이 몹시 거슬렸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신 없음’에 대하여 고추 서서 말하고 있었으니까요. ‘신 없음을 말하는 신학’, 한 마디로 유치환의 신론은 그런 것입니다.

 

‘신 있음’의 제게 ‘신 없음’의 그의 신학이 얼떨떨한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인간이 신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원숭이가 떨어진 모자를 들고 이리 저리 뒤져보는 것과 같다”(173쪽)는 묘사를 서슴지 않습니다. “신이 신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신에게는 신이 무용한 것으로 되고 만 것이다”라며, “창조한 것들이 결국 미완성품이라는 그의 능력의 미급을 노정하는 증좌”(172쪽)라고 합니다.

 

유치환은 “신의 인식을 종교에서 뺏어 와야 한다”고 전제하며, “신의 존재에 관해서 생각해 보려지도 않고 생각해 보지도 않던 한 무신론자가 그의 마지막 죽음의 자리에서 비로소 신의 존재를 깨닫고 불러 찾는다 하여 신의 존재가 증거되지 않는다”(178쪽)고 합니다.

 

청마의 기독교에 대한 적의는 대단합니다. “천국과 지옥의 가공의 이야기는 인간의 향선성의 한갓 추상”이라며, “‘신은 죽었다’고 외친 니체의 갈파야말로 야만적 수전노적 신앙에 받들린 계집 같은 투기심의 기독교신에 대한 증오와 반항”이라고 나름대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산중일기’ 부분만 빼고 산문부분을 온통 ‘신 없음’의 신학으로 채운 저의가 무엇인지 이해가 안 갑니다.

 

청마 유치환! 이제는 학창시절 배웠던 그가 아닙니다. 적어도 지금의 제게는. ‘푸른 말’보다 ‘뜬구름’을 떠오르게 만듭니다. 책 제목처럼, 고작 ‘구름에 그리고 만’ 회색의 그림자입니다. 질곡의 시대에 이리저리 쏠린 질곡의 회색 말! 그리곤 구름이 흘러가듯 그렇게 떠나간 시인일 뿐입니다.

 

 통영 청마문학관 안에 있는 청마 유치환의 생가입니다.
통영 청마문학관 안에 있는 청마 유치환의 생가입니다. ⓒ 김학현

 

덧붙이는 글 | * 이 기사는 갓피플, 당당뉴스, 뉴스앤조이에도 송고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 1959년판 자작시 해설집을 ‘청마를 지키는 사람들’에서 세로쓰기는 가로쓰기로, 한자어는 쉽게 풀어서 쓴 개정판입니다. 그의 시세계와 작품의 배경, 삶의 단면을 알 수 있습니다. 유치환 저, 2007년 3월 20일 발행, 도서출판 경남, 8000원


구름에 그린다

유치환 지음, 도서출판 경남(2007)


#청마#유치환#구름에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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