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字文으로 書藝史를 쓰다역사학자 E. H. 카아(CARR, 1892~1982)는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하였다. 사(史)가 중요하다. 우리가 사(史)를 배우는 이유는 과거 사실을 반추하여 현재 상황을 이해하고, 보다 발전적인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이다. 모든 학문과 예술과 문화는 어차피 과거의 축적을 통한 현재의 재발견이고, 재해석이며, 이를 거친 창신(創新)이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역사 속에서 연속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
11월 13일부터 23일까지 연세대학교 박물관에서 전시될 심은 전정우(沁隱 全正雨)씨의 66체천자문 작품들을 보면서 작가가 천자문에 매진하는 이유를 알았다. 30체 천자문을 발표한 2년 전에 어렴풋이 느꼈던 점이 이제 66체를 발표하는 시점에 와서 보다 분명해졌다. 주흥사가 만든 '천자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천자문으로 서예사를 쓴다'는 점이다. 천자문이 씨줄이라면 3천년 서예사의 중요 서체를 날줄로 삼아 씨줄과 날줄을 엮어 서예사를 쓰고 있는 셈이다.
'천자문으로 쓰는 서예사'라는 말은 2004년 10월부터 쓰기 시작한 66체천자문 면면을 살펴보면 단번에 이해하게 된다. '66체'는 서예사에서 각 시대를 대표하는 서체이자 변천시기의 중요 서체들이다.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가야 하겠다. 그것은 바로 천자문을 쓰기에 각 서체의 현존하는 글자가 부족한 경우이다. 66체천자문 가운데는 역대 명필의 천자문 전문도 있지만, 동일 글자가 몇 십 자에 불과한 경우도 있다. 이때 중요한 점은 문자학적 검증과정이다. 작가는 당대(當代) 서풍은 물론, 대상 텍스트나 해당 작가의 필의(筆意)를 분석하고, 서체의 앞뒤 관계를 살피고 서체 간의 문자 구조를 파악하여 빈틈을 메우고, 마침내 자신의 것으로 재해석해낸 것이다.
그러나 이것 못지않게 중요한 점은 단순히 천자문 전문(全文)을 해당 서체로 완성해내는 것이 아니다. 없는 글자를 채워 넣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 이 작업을 나는 '리라이팅(rewriting)'으로 읽었다. 하나의 서체로 천자문을 쓰되 그것에 국한되어 외향적 유사성인 형임(形臨)만을 지향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천자문을 거듭 쓰는 이유를 '공부를 위해서'라고 강조하였지만 공부에 더하여 새로운 창작의 결과물을 낳고 있다고 여겨졌다. 그런 면에서 나는 심은천자문을 '천자문으로 쓰는 서예사'라고 의미지었는데, 작가는 바로 천자문을 가지고 서예사를 종횡하면서 '대화를 나누고 부단한 상호작용'으로 현재에 재탄생시켜 놓은 것이다. 그것이 바로 66체라는 두터움이 이룬 업적이요, 깊은 집중이다.
이는 얼마든지 새로운 창작의 방향도 낳을 수 있는데, 가령 <66체 반야심경>도 가능하고, <66체 법화경>을 쓰는 것도 가능하다. 그래서 66체천자문은 글자수 1000자, 250구라는 숫자를 넘어서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천자문 그 자체가 내포한 동양철학의 심오함이라든가 깊은 사유의 문장은 이미 오랜 역사를 거쳐 인정받아왔으니 별도로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물론 천자문은 현대, 그리고 한국 상황에는 적합하지 않거나 거리가 먼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천자문이 지금도 여전히 의미있는 점은 동양학문 입문서로서 가치를 지니는 것에 국한되지만은 않는다. 바로 천자문을 통하여 전통의 교감과 연결선을 만들고 이를 통하여 현대에서 그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고 창조해낸다. 그런 면에서 작가가 천자문을 선택한 것은 탁월한 측면이 있다. 나는 <칠체천자문(七體千字文)> 시리즈 출간 기획자로서 천자문에 대해 느끼는 매력이 남다르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번 심은 66체천자문은 '천자문으로 쓰는 서예사'로, '천자문'의 의미를 넘어선다고 본다.
66체천자문을 시기별로 나열해본다.(편의상 각 서체 뒤에 '천자문'이라는 명칭은 생략한다. 금번에 발표하는 천자문은 파란색으로 표시하였다.)
갑골문(甲骨文), 금문(金文),
석고문(石鼓文), 초백서(楚帛書), 포산초간(包山楚簡),
곽점초죽간(郭店楚竹簡), 후마맹서(候馬盟書), 소전(小篆), 권량명(權量銘), 진죽간(秦竹簡), 고새문자(古璽文字), 도문자(陶文字), 화폐문자(貨幣文字), 전문자(磚文字), 진한인(秦漢印), 은작산 한죽간(銀雀山 漢竹簡), 한간 목간(漢簡 木簡), 거연간(居延簡), 무위간(武威簡), 돈황간(敦煌簡), 한백서(漢帛書), 노자백서 갑본(老子帛書 甲本), 노자백서 을본(老子帛書 乙本),
마왕퇴죽간(馬王堆竹簡), 한금문(漢金文), 예서(隸書),
예기비(禮器碑, 장천비(張遷碑), 천발신참비(天發神讖碑), 급취장(急就章), 왕희지 행서(王羲之 行書), 왕희지 초서(王羲之 草書), 찬보자비(爨寶子碑), 광무장군비(廣武將軍碑), 찬룡안비(爨龍顔碑), 지영 해서(智永 楷書), 지영 초서(智永 草書), 중악숭고령묘비(中嶽崇高靈廟碑), 북위 해서(北魏 楷書),
장맹룡비(張猛龍碑), 궁양순 해서(歐陽詢 楷書),
구양순 행서(歐陽詢 行書), 구양순 초서(歐陽詢 草書), 저수량 해서(褚遂良 楷書), 손과정 초서(孫過程 草書), 안진경 해서(顔眞卿 楷書),
안진경 행서(顔眞卿 行書), 행서(行書), 초서(草書), 광개토대왕비(廣開土大王碑), 신라비(新羅碑),
회소(懷素), 설문 전문(說文 篆文), 조맹부 해서(趙孟頫 楷書), 조맹부 행서(趙孟頫 行書), 조맹부 초서(趙孟頫 草書), 문징명 행서(文徵明 行書), 문징명 초서(文徵明 草書), 동기창 행서(董其昌 行書), 동기창 초서(董其昌 草書), 진도복 초서(陳道復 草書), 오창석 전서(吳昌碩 篆書), 추사 예서(秋史 隸書), 추사 해서(秋史 楷書), 추사 행서(秋史 行書), 추사 초서(秋史 草書)
그런데 여기에서 또 하나의 놀라운 단초를 발견한다. 바로 '천자문'으로 쓰는 '한국서예사'를 곧 만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광개토대왕비, 신라비와 4체로 쓴 추사체천자문 등 한국서예사의 우뚝한 큰 봉우리들을 다루고 있으니 이제 더 수많은 봉우리를 넘어가면서 한국서예사 산맥을 종주할 것을 예상한다. 그가 지닌 '천자문'은 지팡이와 배낭이 되고, 지도가 될 것이며, 파노라마처럼 펼쳐질 한국서예사의 새 이정표를 이룰 것이다.
작가가 밝힌 추사체천자문을 4체씩이나 쓰게 된 동기는 한국서예사의 중요 서체로 천자문을 쓰게 될 것이라는 예상을 충분히 한다.
"추사 글씨의 진면목은 강건함과 기굴함이다. 모든 서체를 섭렵해야 비로소 천자문으로 쓰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추사체는 마법과도 같이 그를 끌어당겼다. 그는 머뭇거리지 않고 그 마법 속으로 걸어들어갔고, 그 결과 4체 16종에 걸친 추사체 천자문 작품을 생산해냈다. 작가는 추사체로 천자문을 쓰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바로 추사체 필의를 얼마나 끌어 당겼느냐이지 유사성과 추사 작품에 천자문 글자의 존재 유무가 아니었다. 추사체 천자문은 추사체로 썼지만 심은체가 되기도 하는 이유이다.
작가는 시공간을 넘어서 고전과 상통하고 대화하며 당대를 '지금-여기'로 끌어내왔고, 다시 미래로 이어준다. 그래서 그의 66체천자문은 고정화된 것이 아니라 변화와 새로운 생성을 염두케 한다. 작가는 앞으로 100체, 200체 천자문을 더 쓸 수도 있겠지만, 어느 때 다시 지금 썼던 서체의 천자문을 또 새롭게 써낼지도 모른다.
물론 66체천자문은 문자학, 고증학, 서체분석학이 발달한 오늘날이기에 가능하다. 그러나 심은 66체천자문이 '66체'라고 하는 서체의 가짓수에 국한되지 않는 것은 서예사를 종주하면서 다양하게 섭렵한 고전을 바탕으로 현재와 발전적 미래를 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문자추상의 새 지평을 열다이번 전시의 또 하나의 결실은 문자추상(文字抽象)이다. 66체천자문은 문자추상 작품 생산과는 직접 관계가 적어 보인다. 오히려 조형미술이나 추상화들이 문자추상 작품에 더 영향을 미쳐 보인다. 그러나 66체천자문이 문자추상 작품을 낳은 기반이 되었다는 것을 간과해선 안 된다. "작품 과정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캐치(catch)하여 문자추상 작품으로 화(化)했다"는 작가의 말처럼 서예사의 두터운 축적과 이를 창작해내기 위한 엄청난 시간의 작업과정에서 필획(筆劃)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추상 조형미를 생성시켰다고 보기 때문이다.
문자추상 작품들은 조형의식의 집결로 보인다. 한 자 또는 두 자 이내의 문자로 표현해내는 상징성은 문장이 지닌 내용 전달보다 더 어려운 측면이 있다. 획만으로 승부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4년 전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신관에서 보여주었던 문자추상이 입체작품까지도 포함하였다면 이번 작품들은 평면에서 볼륨감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먹획을 기저로 사용하여 중심을 세우고 이를 기반으로 그 의미를 확산시켜 나갔다. 문자추상 작품들은 형상을 지니되 궁극적으로는 형상을 버리고 획만으로 승부한다. '서예는 획 하나하나가 정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육혈(肉血)을 버리고 기(氣)와 골(骨)만을 취한 것이 아니라 우주를 품어않는 통쾌함이 있다. 획이 주축을 이루면서 여기에 오방색과 오륜색 사용은 우주적 상징성을 부여한다.
물론 먹획을 위하여 한민족의 오방색과 오대양을 뜻하는 오륜색 사용은 최소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그 상징성은 작품 전반에 걸쳐 주체를 단단하게 떠받치고 있다. '無'나 '和' 시리즈와 같은 한 자의 글자가 지닌 문자 의미를 색이 지닌 상징성은 또 새롭게 전달해준다. 따라서 색은 부차적 요소로 쓰인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닐 뿐만 아니라 심은 서예의 새 방향을 보여주는 것으로 읽혀진다.
어느 분야든지 기본이 제대로 갖춰져야 한다. 아무리 높은 빌딩도 한 단 한 단 쌓아서 이루어지는 것, 작품은 그 바탕을 하나하나 밟아 정점에 이르게 된다. 세필, 대자, 전지, 초고 66체 264종 천자문이나 문자추상 시리즈 작품도 모두 이 과정을 거쳤다. 이러한 작가의식과 실천은 어찌 보면 극과 극일 것 같은 두 표출 스타일을 자유롭게 달릴 수 있게 하는 이유이다.
이번 전시에는 천자문 30~40종과 문자추상 30~40점이 전시된다. 3천년 서예사의 시간과 오방과 오륜의 공간이 변주해내는 우주 속으로 '지금' 걸어가 보자.
덧붙이는 글 | 다소 길지만 나누지 않고 전문을 수록하였습니다. 독자의 이해를 더 잘 도울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전시는 3차에 걸쳐 전시됩니다. <1차전>은 11월 13일부터 23일까지 연세대학교 박물관에서 열리며, <2차전>은 11월 30일부터 12월 21일까지 강화 심은미술관에서, <3차전>은 12월 22일부터 2009년 1월 22일까지 부남미술관에서 열립니다.
작가 심은 전정우 선생은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 동아미술제 미술상을 수상하였으며,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한 강화 심은미술관 관장입니다. 작가 연락처 : 016-364-0946 (심은 전정우)
* 이 글은 <월간 서예문인화> 2008년 11월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