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몇 번이고 읽었던 책이다. 그러나 이번에 새로 나온 책은 동일한 제목의 2008년 개정판이다. 낱낱이 훑어보니 표지와 책의 장정을 새롭게 바꿨다. 뿐만 아니라 ‘햇살과나무꾼’(어린이 책 전문기획실이다)에서 원서에 충실하고, 원고를 꼼꼼하게 챙겼다는 흔적이 역력하다. 문장의 맛과 의미를 크게 살렸고, 읽기에 편안하게 다듬었다. 또한 정감어린 그림을 곁들여 놓아 작품을 읽는 재미가 한층 도드라진다.
저자 하이타니 겐지로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그의 작품에서는 재일동포 이야기를 자주 만날 수 있다. 일본과 한국의 역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작가가 만난 제국주의와 전쟁, 재일동포들의 이야기를 작품에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이타니 작품이 한 권 한 권 국내에 소개됨으로써 독자층이 두터워졌다는 게 또 하나의 이유다.
또한 아이들의 글을 엮어 <선생님, 내 부하가 되라>라는 책 서문에 “내가 어떤 글을 쓰더라도 그 뿌리는 이 책에 있을 겁니다.”라고 말했듯, 그가 만난 어린이야말로 그에게 있어 문학의 원천이다. 교사 시절 만난 아이들은 그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말 그대로 ‘아이들에게 배운’ 것이다.
하이타나 겐지로에게 ‘어린이’와 ‘문학’을 빼고서는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런 까닭에 그의 첫 장편소설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는 1974년에 작가 자신의 17년 교직 생활체험을 바탕으로 쓴 이 책이다. 그 속에서 길들여지지 않은 아이들의 세계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또한 각박하고 소외된 현실에서도 천진난만함과 상냥함을 잃지 않는 희망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H 공업지대 안에 위치한 히메마쓰 초등학교, 근처에 쓰레기처리장이 있어 어려운 교육환경이다. 때문에 갖은 어려움을 겪게 되고, 대부분의 학교 선생님들은 말썽 많은 쓰레기처리장 아이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대한다.
그런데 대학을 갓 졸업하고 이곳에 부임한 고다니 선생님은 달랐다. 쓰레기처리장 아이들에게 동정어린 관심과 친절함으로 다가선다. 선생님에게 쓰레기 처리장 아이들은 친해지기 힘들고 말썽쟁이 아이들이지만, 이렇게 여린 고다니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게 해주고 변화하게 만든다.
교사 자신이 먼저 변해야
그 중에서 데쓰조는 좀 특별한 아이다. 파리를 좋아하고, 친구가 없으며, 전혀 말을 하지 않는 아이다. 고다니 선생님은 이런 데쓰조를 변화시키기 위해 마음고생을 한다. 하지만 자신이 먼저 마음을 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데쓰조와 파리연구를 같이 하면서 글도 가르쳐 주고, 부모를 잃고 상처받은 데쓰조를 따뜻이 보듬어 준다.
“선생님, 데쓰조 야단치러 온 거야? 그 자식은 개랑 파리말곤 친구가 없단 말야. 좀 봐 줘.”
이사오가 간곡히 사정했다.
“야단치러 온 거 아냐. 어째서 파리를 기르는지 데쓰조랑 할아버지께 물어보러 온 거지.”
“뭐, 그렇담 괜찮지만. 그 자식, 진짜로 파리말곤 친구도 없단 말야. 선생님은 미인이니까 파리 같은 거하곤 거리가 멀겠지만.”
고다니 선생님은 처음부터 만만치 않은 상대를 만난 것이다. 아이들 중에서도 데쓰조는 파리를 기르는 것에만 관심이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닫고 산다. 개구리를 반쪽으로 찢고, 발로 짓뭉개버리는 아이다. 데쓰조가 벌이는 일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다니 선생님한테는 상식과 아량으로 배려해도 도무지 이해 불가능한 존재였다.
그러나 아무리 햇병아리교사라 해도 고다니 선생님은 담임을 맡은 이상 데쓰조를 포기하지 않는다.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도 도무지 입을 여는 법이 없고, 파리를 기르는 게 유일한 거라 학교에서는 친구도 없는 아이지만. 고다니 선생님은 그런 데쓰조에게 다가가기 위해 하루하루 고군분투한다.
햇병아리 교사의 열정
그런 가운데도 전혀 응원군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을 둘러싸고 선생님들끼리, 학부모끼리 대립하는 갈등 상황들이 끊임없이 이어지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이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선배 교사 아다치 선생님에게 교사로서의 소양을 자극 받는다. 이 지점에서 필자의 햇병아리교사 시절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난다. 공감대가 형성된다.
“데쓰조는 나쁜 아이가 아닙니다. 산으로 데려가면 데쓰조는 곤충을 기를 겁니다. 강으로 데려가면 물고기를 기르겠지요. 하지만 나는 아무 데도 못 데려갑니다. 이 녀석은 쓰레기가 모이는 여기밖에 모르고, 여기는 구더기나 하루살이, 그리고 기껏해야 파리밖에 없는 뎁니다.”
고다미 선생님은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는 아이, 말도 않고 글도 쓸 줄 모르는 아이, 오직 파리를 기르는 데에만 강한 집착을 보이는 아이, 데쓰조를 이해하게 되면서 그 아이의 숨겨진 천재성을 발견한다.
그러는 와중에 고다미 선생님은 또 한 사람의 ‘특별한 아이’를 만난다. 원칙적으로 특수학교를 가야 했지만, 사정으로 잠시 고다니 선생님네 반으로 전학을 오게 된 미나코다. 미나코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아이다. 그래서 관심을 많이 가져 수업에 지장을 주기도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학부모들은 미나코 때문에 수업에 지장이 생기고, 고다미 선생님이 미나코만 편애를 한다고 항의한다.
편애와 사랑은 다르다
실제로 필자의 경우도 사오년 전 3학년 아이들을 담임했을 때 심각한 자폐로 학급단위 수업을 쥐락펴락했던 아이가 있었다. 그때 학부모들과 심심찮은 마찰을 빚었다. 정작 자폐아를 도우려고 하면 나머지 학급 아이들이 소홀해졌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자폐아의 존재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이 부모에 있었다. 반 아이들은 변화무상한 친구의 성향을 곧잘 이해한다. 이는 고다니 선생님 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미나코가 학교에서 쫓겨날 상황이 되자 고다니 선생님 반 학생들은 미나코 당번을 따로 만들어 돌보면서 미나코가 쫓겨나지 않도록 한다. 고다니 선생님과 반 아이들은 순수한 미나코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성숙해져간다. 그 결과 고다미 선생님은 ‘모두 다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아이들과 더불어 배우고 믿는 만큼 자란다는 교육신념을 새삼 다짐한다.
더불어 배우고, 믿는 만큼 자란다는 교육신념
지금 나 자신도 교사로서 아이들 곁에 있지만, 학창시절에는 선생님들에 대한 좋은 인상이 남아 있지 않다. 그저 데면데면한 만남이었기에 특별하게 애틋한 찾고 싶은 선생님이 없다. 정작 선생님이란 존재가 얼마나 크고 소중한 것인지는 직접 아이들을 맡아 가르치고 나서야 절실하게 느꼈다. 왜 그런 말이 있잖은가. 여자들은 시집가서 아이를 낳아 길러봐야 어머니의 심정을 알게 된다고.
한 아이가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에 이르기까지 교사의 헌신적인 사랑과 칭찬, 그리고 따뜻한 부추김은 일평생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 갈 수 있는 자양분의 원천이 된다. 그래서 진짜 좋은 선생님은 정서적으로 불완전한 아이들에게 든든한 힘이 되고, 침울한 마음을 다시 추스를 수 있게 배려한다. 그런 선생님과 함께라면 공무는 무조건 재미있다.
이에 고다니 선생님은 비로소 쓰레기처리장 아이들은 ‘교화’나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살아있는 ‘소중한 존재’ 그 자체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고다니 선생님도 한 사람의 ‘진정한 교사’로 거듭나는 계기가 된다.
좋은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든든한 힘을 준다
그러다가 종국에는 고다니 선생님의 헌신적인 사랑과 노력으로 데쓰조는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문제아였던 데쓰조가 ‘파리박사’라고 불리는 재능 있는 아이로 변모해 간다. 파리에 대한 관심을 학습 능력으로 발전시킨 데쓰조는 아이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파리 박사’로 인정받게 되면서 보석 같은 존재로 성장한다.
이 책은 하이타니 겐지로의 첫 번째 장편 소설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길들여지지 않은 아이들의 세계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각박하고 소외된 현실에서도 천진난만함과 상냥함을 잃지 않는 희망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교육에 대한, 인간에 대한 작가의 주제 의식은 그의 거의 모든 작품 속에 짙게 배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를 으뜸으로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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