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부동산 거품붕괴가 본격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분양 물량 급증으로 인한 건설업체의 자금난이 심각해지면서 거품붕괴를 막으려는 정부대책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 출범 이후 첫번째 부동산대책인 소위 '8·21대책'부터, 9·1 감세안, 9·19 500만호 주택공급대책, 9·22 종합부동산세제(이하 종부세) 개편안 등이 잇따랐다. 이도 모자라 10·21 '가계 주거부담 완화 및 건설부문 유동성 지원 구조조정방안'과 11·3 '경제난국 극복 종합대책'까지 나왔다.
이들 대책의 공통점은 극심한 자금난을 겪는 건설업계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고가주택 보유자의 세금 및 대출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건설 및 부동산경기 부양'과 '집값거품 떠받치기'로 일관한 정책들이다. 더구나 정부가 이들 대책을 내놓는 속도와 규모가 엄청나다는 점이 주목된다.
한두 달 전까지만 해도 정부는 '한국경제의 펀더멘털은 괜찮다'고 허장성세(虛張聲勢)를 부려왔다. 하지만 부동산 거품붕괴와 한국경제의 위기가 빠르게 현실화되면서 이제는 활용 가능한 부동산 및 건설경기 부양책을 총동원하고 있는 느낌이다.
눈앞에 다가온 부동산 거품붕괴하지만 국내외 거시경제구조를 볼 때 현정부의 이같은 부동산 부양책으로도 거품붕괴를 막기 어렵다. 정부가 대출규제 완화를 제외하고 웬만한 부양책은 다 내놓았지만 부동산시장이 꿈쩍도 않는 게 그 증거다. 그동안 집값폭등을 주도했던 소위 '버블세븐'의 집값은 정부의 부양책에 아랑곳하지 않고 급속도로 빠지고 있다. 금융기관이 원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경매물건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아직 남아 있는 대출규제가 풀린다 해도 마찬가지다. 이미 구조적으로 심각한 외화 및 원화 자금난을 겪고 있는 은행이 과거처럼 선뜻 대출을 해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최근 대출 연체율이 급등하고 자기자본비율(BIS)이 하락하고 있는 은행권으로서는 제 발등에 떨어진 불 끄기가 먼저이기 때문이다.
급기야 금융권에서 대출제한을 넘어 본격적인 대출회수에 들어갔다는 소식이다. 이처럼 정부의 부동산 및 건설 부양책은 거품붕괴의 시장압력을 도저히 이길 수 없다. 단지 시간을 약간 지연시키는 효과만 있을 뿐이다.
과거 일본에서도 부동산 거품기인 1992~95년 동안 무려 70조엔이 넘는 각종 경기부양 대책이 쏟아져나왔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현재 우리 돈 가치로 1천조원이 넘는 예산을 경기부양에 투입한 것이다. 일본의 경기부양 대책도 일본 토건족들의 요구에 의해 각종 불요불급한 건설 및 토건사업들로 채워졌다. 하지만 극심한 거품붕괴의 압력을 막지는 못했다. 일본이 1992~94년 3년 동안 사실상 제로성장률을 보인 것이 그 증거다.
문제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한 정부의 중구난방식 대책이 장기적으로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다는 점이다. 우선 주택시장에 미칠 파급효과를 생각해보자. 2008년 9월말 현재 미분양 주택은 전국적으로 16만호를 넘었고, 수도권에만 2만3천 가구에 이르렀다. 최근에는 기존 분양 물량에 대한 계약해지까지 잇따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분양 물량은 한동안 계속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1991~97년까지 부동산 경기침체를 겪은 것은 80년대말~90년대초 2백만호 건설에 따라 급증한 미분양 물량을 해소하는 과정이었다. 이렇게 본다면 사상 최고의 미분양 물량이 쌓인 현재로서는 90년대보다 더 깊고 더 긴 부동산 침체기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 부동산시장에서 미분양 물량이 해소되도록 놔둘 경우에도 그렇다는 말이다.
건설경기 부양하다 나라경제 파탄난다
그런데 정부는 당장 건설사들의 자금난을 해소해준다는 명목으로 정부예산을 동원해 주택사업을 벌이게 하고 있다. 부동산시장 스스로의 조절메커니즘을 교란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같은 건설경기 부양용 주택공급 확대책은 2010년대 이후 이미 꺼져 있는 주택시장을 '확인사살'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사상 최고 수준의 미분양 물량이 쌓인 상태에서 2008년 이후에도 서울 등 수도권에서 지속적으로 막대한 물량이 공급된다. 우선 서울에서는 2010년대 이후 32만호의 주택이 공급된다. 여기에 뉴타운 전체 면적과 맞먹는 준공업지역에서도 공동주택이 공급된다. 2009년 판교신도시 2만7천 세대를 필두로, 2010년 위례(송파)신도시(4만6천 세대), 광교신도시(3만1천 세대), 동탄 2차신도시(11만3천 세대) 등에서 입주물량이 쏟아진다.
그밖에 검단신도시 6만6천 가구, 파주신도시 3만4천 가구, 김포신도시 5만9천 가구, 양주신도시 5만6천 가구 등 10개의 2기 신도시에서 모두 52만5023 가구가 공급된다. 2010년까지 예정된 물량만 해도 30만가구에 육박한다. 여기에다 '8·21'대책으로 인천 검단과 오산 세교의 4만9천 가구가 추가된다. '9·19대책'에서는 갑작스레 그린벨트를 대규모로 해제하고, 뉴타운 25개를 추가로 지정해 연간 30만호이던 주택 공급물량을 연간 50만호로 늘려잡는다고 한다.
주택 공급물량이 늘더라도 충분한 수요가 있다면 괜찮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추세, 2013년을 전후한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신규 주택시장에 유입될 인구의 급격한 감소(출생자 수는 71년 101만에서 80년 87만, 90년 66만, 2000년 64만, 2005년 44만명으로 급격히 줄어든다), '88만원 세대'라는 신조어로 상징되는 신규 주택수요층의 구매력 약화 등은 유효 주택수요층의 급격한 감소를 예고하고 있다.
건설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경우 정부의 건설경기 부양책으로 사실상 시장에서 퇴출돼야 할 건설업체들이 부지기수로 '좀비기업'으로 살아남았다. 그 결과 초기의 줄도산 행렬에도 불구하고, 90년대 중반까지 일본의 건설업체 수는 그다지 줄지 않았다.
부실기업이 제대로 퇴출되었더라면 살 수 있었던 기업들조차 시간이 흐르면서 정부예산이라는 호흡기로 연명하는 좀비기업으로 전락했다. 그렇게 건설사의 부실은 계속 증가했고, 결국 금융권의 부실증가로 이어져 일본의 장기 경기침체를 가져오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부동산 거품해소, 시장에 맡기자현재 정부정책은 과거 일본이 장기 경기침체로 치달았던 궤적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부동산시장에서 공급과잉 신호가 지속되고 있는데도, 억지로 주택공급을 늘리려 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전에 비해 부동산 거품기에 세 배 이상 늘어난 건설업체들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건설사들이 위기론을 떠들어대는 가운데도 건설업계 전체의 부도율은 1%대를 조금 상회하는데, 이는 5~7%대였던 90년대 중반보다도 낮은 수치다.
부동산 거품기에 잔뜩 늘어난 건설업체들을 국민경제 전체가 언제까지 먹여살릴 수는 없다. 자신들의 경영판단 잘못과 과욕으로 빚어진 부실은 그들 스스로 책임지게 해야 한다.
전체의 55%에 이르는 비정규직, 자금난에 시달리다 못해 도산하는 중소 제조업체, 사실상 폐업 직전인 자영업자,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저소득층 등 정부예산이 가야 할 곳은 천지다. 그런데 제대로 된 경제적 약자에게는 쥐꼬리만한 예산을 지원하면서, 도덕적 해이에 빠진 건설업계 복지에 골몰하는 정부는 제정신인가?
많은 이들이 '연착륙론'을 부르짖는다. 필자도 가능하다면 한국경제가 연착륙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미 그동안 막대한 규모의 악성 부동산 거품을 만들었던 탓에 연착륙은 어려워 보인다. 사실상 거품을 키우는 연착륙보다는 중장기적으로 한국경제 전체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정치적 목적에 따라 단기적으로 충격을 최소화한다는 명목으로, 장래 돌아올 한국경제의 충격을 키워서는 안된다. 물론 한국경제가 파탄나는 상황은 피해야겠지만, 당분간은 냉철한 시장경제의 가격조절 메커니즘에 따라 부동산 거품이 자연스레 해소되도록 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정부가 집값을 떠받치기보다는 집값이 떨어지도록 해서 유효수요가 살아나게 하는 것이 부동산경기를 가장 빨리 활성화하는 길이다. 또 부실 건설업체들이 시장에서 퇴출되게 하는 것이 중장기적으로 볼 때 건설업계와 한국경제 전반에 돌아올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이다.
'건설업계 복지'에 퍼붓는 예산들은 아껴뒀다가 부동산 거품붕괴의 충격으로 고통받는 가계와 기업들에 원칙과 기준을 정해 도와주는 데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금 정부가 가는 길은 일본형 장기불황으로 치닫는 길임을 깨달아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선대인님은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