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알지 못하던 내가 국내경제, 나아가 세계경제에까지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닌 펀드다. 반토막 펀드 얘기는 이제 대수롭지 않은 얘기가 돼버렸다. 나 역시 2개의 펀드가 거의 -50%의 수익률을 보였지만 결국엔 모두 환매했다. 과연 잘한 일일까?
작년 5월, 남들 다 가입한다는 펀드에 나 역시 동참했다. 이 당시만 해도 마이너스 수익률은커녕 보통 20~30% 이상의 수익을 낼 수 있다고 알려진 게 적립식 펀드였다.
이미 적금으로 만들었던 목돈으로 승용차를 구입했기 때문에 적금의 매력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적금과 펀드 중에 잠깐 고민했지만, 선택은 펀드였다. 투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초보가 어떻게 펀드에 가입하게 됐을까?
무조건 펀드지! 누가 요즘 적금을 드니?
보수적인 부모님은 적금을 권했다. 한푼 두푼 모아 만기에 적금을 타는 게 제일 좋을 것이라 말씀하셨다. 하지만 5% 남짓의 이자를 받느니 훨씬 수익률이 좋은 펀드에 더 끌렸다. 그러던 중에 직장 동료가 컴퓨터 화면을 보며 하는 말이 들려왔다.
"어랏? 500만원 넣어놨는데 벌써 700만원이 됐네!"
옆에서 자세히 보니 1년 전에 가입했던 펀드가 수익이 그렇게 난 것이었다. 퇴근 후 술자리에서 친구들을 만나도 온통 펀드 자랑 뿐이었다. 미리 가입했던 친구들은 벌써 수익이 많이 나서 일부는 결혼자금 계획을 5년에서 3년으로 앞당기겠다는 야심찬 포부도 밝혔다. 그리고 하는 말이 무조건 펀드에 들라는 것이다. 적금 들면 바보라나.
그때부터 어느 펀드가 좋을까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은행도 다녀보고 그동안의 수익률도 비교해 보면서 3개의 펀드에 가입했다. 인터넷을 찾아보며 주워 들은, 위험에 대비한 '분산투자'였다.
가입 후 몇 개월간은 승승장구했다. 100만원이 120만원이 되고 이렇게 가다가 금방 집이라도 살 것 같았다. 겉으로는 은행 이자보다 높으면 된다고 말하고 다녔지만 속으로는 절대 아니었다. 제일 잘 나간다는 차이나 펀드를 따라잡으라며 무언의 채찍질을 하기도 했다.
가입했던 펀드 3개중 1개는 몇 개월 되지 않아 환매했다. 부동산에 투자하는 '리츠 펀드'였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얘기가 나돌 때 정리했던 것이다. 수익률은 2.59%로 '본전치기' 했다. 환매금으로 새로운 펀드를 알아보다 펀드계의 왕으로 군림하던 '차이나펀드'에 가입했다. 중국펀드가 수익률이 최고조였던 10월에 말이다.
이때만 해도 난 내가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인 줄 알았다. 적절한 시기에 환매도 할 줄 알고 그 좋다는 차이나펀드를 손에 넣었으니 자신감만은 워렌 버핏보다 더 했다.
"이정도면 뭐..." → "나아지겠지?" → "안되겠다!"
작년 말부터 조짐이 이상했다. 차이나 펀드는 연일 마이너스의 행진이었고 나머지 국내주식형 펀드와 동유럽 펀드도 수익률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도 전체금액 대비 은행이자보다 높은 수익률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이 정도면 괜찮겠지 하며 매달 적립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올 봄부터는 수익을 줬던 펀드마저 마이너스에 진입했다. 어라? 그래도 괜찮아지겠지 하며 기다렸다. 펀드는 장기투자가 아니었던가. 기다리면 오르겠지.
역시 내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7월에 반짝하며 오르기 시작했다 동유럽 펀드는 플러스로 전환했고 국내주식형도 수익이 나기 시작했다. 역시 언론에 나와 얘기하는 투자회사 전문가들 말은 틀림이 없군!
하지만 누가 알았겠는가. 이 때가 적절한 환매 타이밍이었다는 것을. 이후로 나의 펀드들은 하향 곡선을 넘어 굴삭기로 지하를 파기 시작했다. 기다리면 오를 것이라던 증권전문가들은 다들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반토막 펀드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고, 내가 가입한 펀드들도 그 길을 따라갔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겉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얘기했지만 그들과 같이 내 속도 쓰렸다. 그래도 지켜보면 좋아질 것이라며 아무렇지 않은 듯 얘기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물론 몇년 이상 계속 불입하면 언젠가는 수익이 날 것이라는 말에는 나도 이견이 없다. 하지만 그 동안의 '속앓이'를 하는 게 싫었고 그 동안 적립한 돈의 기회비용이 아깝다고 생각해 드디어 모든 펀드의 환매를 결심했다.
결국 차이나펀드와 동유럽펀드는 반토막 상태로 환매를 했고, 국내 주식형 펀드만이 다행히 -29.11%의 '선방'을 해주었다.
또 다시 신입사원, 하지만 마음만은 '편해'
요즘 친구들에게 자주하는 말이 있다.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의 포부와 다짐들을 생각하며 "나는 다시 신입사원이다"고 강조한다. 실제 신입사원은 아니지만 그때처럼 매달 얼마씩을 저축해서 목돈을 모아야겠다는 계획을 수립했다는 얘기다.
환매한 펀드대금은 모두 예금에 넣고, 다시 매달 적금을 붓고 있다. 예금 금리도 7%를 넘기니 다시 열심히 모으면 된다는 생각뿐이다. 무엇보다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없기에 마음은 편하다. 그냥 편한 게 아니라 정말 편하다.
나의 이런 결정이 너무 섣불렀다는 사람들도 있고, 조금 기다려보지 않았느냐며 타박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적금통장에 모은 돈이 쌓여가는 걸 보면서 후회보다는 이제라도 환매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 자신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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