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희 기자님, 집이 불탔다는 소식에 놀란 가슴이 진정이 되지 않는군요. 정선까지 먼 길은 아니지만 날이 밝기를 기다려 찾아갔습니다. 몇 번이나 갔던 길이지만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연로하신 어머님이 가장 큰 걱정이었습니다. 다행히 다치지는 않으셨다니 우선 안심이 되었습니다.
구불 구불 국도를 따라 당신의 집으로 가는 길은 유난히 멀었습니다. 삽당령 정상에 서 있는 나무들은 얼음꽃을 피워 겨울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엄동설한에 집을 잃은 어머니의 상실감은 얼마나 크실까요.
정선 장터에서 만난 강 기자님은 개먹이와 앞집 아이들에게 줄 과자를 한 상자 들고 서 있었습니다. 강 기자님의 표현대로 "집을 잃은 개에게 줄 밥, 앞집 아이에게는 과자를 주고 그 개를 잘 돌봐달라고 부탁하련다"라고 하셨지요. 갑작스러운 화마는 개먹이마저도 남겨두지 않았나 봅니다.
불길이 휩쓸고 간 자리는 참혹했습니다. 돌로 쌓아올린 하얀 벽만 남겨두고 모든 것이 검게 변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소설가 강기희를 만들어낸 책들이 검은 화석으로 변해 버린 것이 가장 안타까웠습니다. 그 책들은 너무 놀란 나머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화석이 되어 버렸나 봅니다.
무엇인가 찾아낼 만한 것은 없는지 한참을 둘러봤지만 가장 자리가 불에 탄 육필 원고 한 묶음,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사이버 세상을 휘젓고 정선의 자랑거리와 사람사는 세상의 이야기를 전하던 노트북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 흔적조차 찾지 못했습니다.
칠십 여섯 노모와 마주 앉아 숟가락을 들었을 밥상과 따뜻한 김이 피어오르던 밥 그릇 하나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어쩝니까? 정선 장터에 마실 갈려고 어머님이 마련하신 산나물과 장아찌도 모두 타버렸으니.
잠자리에서 화마를 만난 어머님께 속옷과 겉옷 한 벌 사드렸다는 말을 들으니 가슴이 저립니다. 허망한 마음을 달랠 길 없는 어머니는 장터에 나가 옆 사람의 산나물과 도라지 더덕을 빌려서는 좌판에 펼쳤다지요. 차마 그 모습은 뵙지 못할 것 같습니다. 뵐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지금은 황망한 정신에 그리하고 계시지만 며칠 지나 마음이 자리를 정하면 병이 나실지도 모릅니다. 젊은 사람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니까요.
강 기자님 이럴 때는 어떻게 위로의 말씀을 건네야할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해남의 김남주 시인의 생가에서 열린 해남문학축전에 다녀오느라 집을 비운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래서 앞집 할머니와 같이 주무신 덕에 연기 가득한 집에서 피신할 수 있었다고 위안을 삼아야 할까요.
강 기자님, 힘드시겠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라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읍시다. 혹시라도 정선을 떠난다거나 이런 생각은 하지말고 세상을 향해 일갈하던 그 기백을 잃지 마시길 바랍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정선문화연대, 동강살리기 운동본부 상임대표로 활동하던 그 모습 기억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집필하던 장편소설 <천도로 가는 길>을 빨리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