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가 제시한 압수 증거품은 70개가 넘었다. 명함, 안경, 김구가 사준 손목시계, 트렁크 열쇠고리, 수첩…, 압수 증거품 가운데 유난히 눈길을 끈 것은 체포 당시 이봉창이 소지하고 있던 사진이다. 사진은 모두 8장인데, 그 가운데 5장이 여자 사진이었다. '누구 사진일까? 가족사진? 총각이니까 사랑하는 애인 하나쯤은 있었겠지…' 그러나 의외였다. 친구에게 받은 여자 사진을 제외하면 모두 유곽에서 받은 창녀 사진이었다. -책속에서1932년 1월 8일, 일왕에게 폭탄을 던져 일본의 간담을 서늘케 하고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그리하여 조선 독립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동경의거'의 주범 이봉창을 체포했을 당시 그의 소지품에서 나온 몇 장의 여자 사진들.
세 장은 임시정부가 있는 상해에서 이봉창이 상대했던 창녀들 사진이고 나머지 한 장은 동경의거를 계획하고 상해를 떠나 오사카에 머물던 이봉창이 의거를 결행하던 무렵에 상대한 수루라는 여곽의 수(壽)라는 이름의 일본 창기이다.
'혹시 일본 놈들이 이봉창의 이미지를 깎아내리기 위해 일부러 꾸민 것은 아닐까?'<기노시타 쇼조, 천황에게 폭탄을 던지다>(너머북스)의 저자 배경식은 이봉창의 재판기록과 상신서 등을 읽던 중 이런 의심을 한다. 독립운동의 영웅인 이봉창이 의거 당시 지녔던 소지품이라 보기엔 아무래도 미심쩍기 때문이었으리라. 저자의 이런 의문은 이 책을 쓰는 계기가 된다.
친일적인, 너무나 친일적인 모던보이 이봉창
같은 독립운동가라지만, 안중근이나 안창호에 비해 이봉창은 내게 낯설었다. 그들에 비해 독립군으로서의 비중도 당연히 낮았다.(내게는) 이런 이봉창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이 깊어진 것은 지난해 10월, 백범 기념관에서 활짝 웃고 있던 그의 사진을 보고나서부터다.
'한인 애국단 입단서'를 가슴에 걸고, 고르지 않은 이빨을 사심 없이 드러내놓고 활짝 웃고 있는 그의 웃음은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죽음을 앞두고 어떻게 저런 웃음이? 나라의 독립이 소중하고 절박하기로서니 죽음을 작정한 인간이 어떻게 저렇게 웃을 수 있는 걸까? 이봉창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어떻게 자랐으며 어떤 계기로 일왕에게 폭탄을 던지게 되었을까? 보통 용기로는 힘든 일인데.'
사진에는 상해에서 김구와 헤어지면서 마지막으로 찍었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제국의 상징인 일왕을 제거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와 자존을 세상에 알리겠다는 두 사람의 마지막 만남. 그 비장함은 오죽했으랴. 생각이 여기에 머무는 순간 이봉창의 웃음에서 죽음까지 초월한 비장함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후 시시때때로 이봉창의 죽음을 초월한 웃음이 자꾸 떠올랐다. 그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졌다. 하지만 백범 기념관에서 만난 것과 비슷한 기록들 뿐. 그 후 까마득하게 잊고 있다가 1년 만인 지난 10월, 이 책이 출판되었기에 푹 빠져 읽고 더욱 강하게 기억하게 되었다.
사실, 몇 페이지 넘기지 않아 애국자 이봉창에 대한 나의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다. 이 책에서 만나는 이봉창은 너무 의외였다. 정말 이랬을까 싶은 마음이 자꾸 들 정도였다.
3·1운동 당시 이봉창은 무라타 약국의 점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이봉창이 3·1운동에 대해 언급한 것은 1932년 9월 16일에 있었던 첫 공판 때뿐이다. 일본인 관선 변호사가 "그것을 듣고 어떤 소감을 가졌는가?"라고 묻자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했다"고 답변했다. 이처럼 이봉창은 3·1운동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무엇 때문에 그러한 운동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으며, 직접 참여하지 않고 방관자로 지켜보기만 했다.-책속에서3·1운동에 대한 그의 무관심을 보면 독립운동의 영웅이 어찌 이럴 수 있나 싶다. 의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인간이라면 전국적으로 일어난 3·1운동을 계기로 마땅히 조국 독립의지로 활활 불타올라야 하건만. 3·1운동 당시 이봉창의 나이 19세(그는 1901년생이다). 그럼에도 글쎄? 눈치코치조차 없는 인간이 아닌가!
그런데 이봉창을 좀 더 깊이 알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된다. 그의 부친은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가 호재가 되어 부자가 되었다. 여자와 술, 도박을 좋아한 나머지 급기야 몰락하고 이봉창은 가난한 노동자의 길을 간다. 하지만 일본인들과 자주 어울렸으며 여자와 술, 도박을 좋아한 부친처럼 이것들을 즐기는 등 향락적인 모던보이로 살아간다.
일본 친구들의 도움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일본어 덕분에 그는 일본인 회사에 취직, 조선인들과 월등하게 비교되는 급료를 받는다. 그래도 늘 부끄러운 것은 조선인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이었다. 사고방식이 이 정도니 일본의 조선인에 대한 차별정책이 불만스럽지만 그런 일본이 원수가 아니라 일본인이 되어 대접받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할 뿐이었다.
때문에 친일적인, 너무나 친일적인 그는 진정한 황국신민이 되어 차별도 받지 않고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살고 싶어 한다. 그리하여 일본으로 건너가 조선인들과는 일절 단절, 심지어는 함께 간 조카딸마저 외면하면서 일본인 '기노시타 쇼조'로 철저하게 살기도 한다. 일본인이 되고 싶은 열망이 대단했다고 밖에 볼 수 없는 대목이다.
일왕을 보는 것만으로도 황송한 이봉창, 왜?천황즉위식은 평소에 천황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일반 백성들에게는 평생 한번 밖에 볼 수 없는 굉장한 구경거리였다. 고쿄에서 도쿄로 가는 천황 행렬을 보기 위해 10만이 넘는 인파가 몰렸고, 교토역에서 고쇼까지의 행렬에는 무려 60만의 인파가 몰렸다고 한다. 이때 이봉창의 나이는 스물일곱이었다.…이봉창은 천황의 얼굴을 봐야만 제대로 된 진짜 일본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비록 자신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가난한 노동자이지만 돈을 빌려서라도 반드시 천황의 얼굴을 보겠다고 다짐한다. -책속에서그리하여 그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일본인 두 명과 함께 일왕의 행렬을 보려고 다니던 직장까지 접고 오사카를 떠난다. 이때가 1928년 11월. 이런 그는 1932년 1월 8일 일왕을 향해 폭탄을 던진다. 일왕의 행렬을 보는 것을 백성의 의무이자 영광으로 생각한 이봉창이 일왕을 향해 폭탄을 던지게 된 사연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
이 책은 모두 4부. 오직 일본인이 되고 싶었던 일제강점기의 모던보이 이봉창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황송해 마지 않던 일왕을 향해 폭탄을 던질 수밖에 없는 이유들을 파헤친다.
저자는 이봉창의 상신서나 재판기록을 읽으며 품었던 의문을 풀면서 독립운동의 영웅인 이봉창에 앞선, 식민지시대의 청년인 인간 이봉창을 우리에게 데려온다.
이제까지 우리에게 알려진 이봉창은 김구 선생의 <도왜실기>를 통한 일방적인 기록을 통해서다. 저자는 이봉창의 옥중수기인 상신서나 당시의 재판기록과 관련 자료들을 근거로 이봉창의 출생과 성장, 향락적이고 소비적인 모던보이 이봉창, 김구와의 만남과 동경 의거 등에 대해 순차적으로, 하지만 긴박감 있게 들려준다.
책에는 이봉창의 옥중수기인 상신서가 실려 있다. 최근 몇 년 전까지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지 않던 그에 대한 재판기록과 상신서이다. 상신서를 통해 만나는 일제강점기 우리의 독립의지와 당시의 상황, 이봉창이 기술한 김구 선생의 면모, 이봉창의 마음속 고뇌, 일본의 당시 풍경 등이 잘 드러나 있다. 혹자들에게 흥미로운 기록이 되리라.
지난해 백범기념관에서 이봉창을 처음 만난 이후 죽음을 초월한 웃음이 시시때때로 떠올랐던 것처럼, 이 책을 읽고 난후, 책을 통해 만난 '인간 이봉창'의 면면이 마치 가슴에 폭탄이 던져진 것과 같은 충격과 파장으로 자꾸 생각난다. 그리하여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인간 이봉창을 만날 것을 권하곤 한다. 책을 읽을 또 다른 사람들도 아마 나처럼 그러리라. "…평가를 위해 제대로 따져봐야 할 것은 임시정부 OO를 역임했다는 경력이 아니라, 임시정부 OO로서 실제로 어떤 일을 했는가, 즉 과정에 대한 꼼꼼한 관찰이다. '결과'보다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역사가 서술될 때 비로소 영웅과 지사의 인간적인 면모와 삶의 진실을 드러낼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살아있는 독립운동사이고 인간의 역사이다. 그래서 나는 '영웅 신화'가 아닌 삶을 고민하는 인간의 역사로서 독립 운동사를 쓰고 싶었고, 이봉창은 그러한 나의 문제의식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저자의 말 중에서 덧붙이는 글 | <기노시타 쇼조, 천황에게 폭탄을 던지다>(배경식지음/너머북스/2008.10.18/13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