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어느덧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아스스한 바람이 가을의 등을 떠밀고 사라지고, 또 떠밀고 사라지곤 합니다. 아스라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가을은 겨울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있습니다. 새벽이면 낮은 는개가 자주 내려앉는 걸 볼 때 분명 가을은 머지않아 그 자취를 감출 것 같습니다.
단풍이 낙엽이 되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단풍은 낙엽이 됩니다. 단풍이 낙엽이고, 낙엽이 단풍이지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할 사람도 있겠지요. 다만 나무에 붙어 있는 게 단풍이고 떨어진 게 낙엽이라고. 그러나 저는 단풍과 낙엽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난다고 생각합니다. 낙엽은 단풍과는 달리 존재하나 존재가치를 인정받지 못하지요.
단풍은 아름답고 단아한 색깔로 지나는 나그네의 발길을 붙잡습니다. 단풍은 단풍관광이라는 특수(特需)의 한 가운데 서서 어연번듯하게 자신을 뽐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 단풍관광이란 걸 한 이들이 있을 겁니다. 단풍으로 유명한 설악산, 내장산을 비롯하여 전국의 산들이 관광객을 맞느라 몸살을 앓았을 게 뻔합니다.
그러나 낙엽은 앙상한 가지 밑에서 자신의 옛 이야기를 추억으로 그리며 고독을 즐기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단풍에 보다 낙엽에 좋은 점수를 주고, 잠시 후 소복이 쌓일 눈과 함께 낭만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낙엽은 사각사각 발밑에서 밟히면서 자신의 존재가 잊힐까 조바심을 부릴 뿐입니다.
이효석은 낙엽을 태우며 그 냄새가 갓 볶아낸 커피 향기 같다고 했습니다. 잘 익은 개암 냄새가 난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애정을 기울이는 이가 몇이나 될까요. 흔한 일이 아닙니다. '단풍관광'이란 말은 있어도 '낙엽관광'이란 말은 없지 않습니까. 그것만 봐도 단풍과 낙엽은 전혀 다른 대우를 받는 게 분명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낙엽보다는 단풍에 더 사랑을 보냅니다.
혹 다따가 호우라도 떨어지게 되면 낙엽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합니다. 몇 해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언론은 무참히 낙엽의 생채기 난 얼굴에 또 한 번 씻을 수 없는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낙엽이 하수구를 틀어막아 물이 빠지지 않았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물난리를 겪었다는 이야기지요.
앰하게도 낙엽은 겨울 초입에 들이닥친 집중호우에도 혼자서 모다깃매를 맞아야 한답니다. 단풍에게 치이는 것도 모자라 가지가지 매를 고연히 맞아야 하는 낙엽의 한 맺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단풍이 낙엽이 되는 아픔
단풍과 낙엽, 둘은 같은 존재의 다른 이름입니다. 그런데 그 차이는 무한대입니다. 실은 찰나의 차이일 뿐인데 가치는 무한대로 벌어집니다. 단풍은 관광객을 몰고 다니지만 낙엽은 하수구를 막을 뿐입니다. 삶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쓰지만 죽음은 추억을 이야기할 뿐입니다. 찰나의 엇갈림이 이리 다릅니다.
낙엽의 홀대를 보며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단풍과 낙엽, 참으로 안타까운 비교의 명암이 그들 위에 드리웁니다. 이 한끝 차이의 오묘함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자연의 이치에 우리의 인생이 적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단풍은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낙엽이 되고야 만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발버둥을 치고 가지에 붙어 있으려고 해도 매몰찬 바람은 사정을 봐주지 않습니다. 마지막 잎사귀 하나에 운명을 건 병든 이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잎사귀 자신이 그런 싸움을 합니다.
그러나 내나 그 싸움은 성공하지 못한 채 땅으로 떨어져 낙엽이 되고 맙니다. 이런 이야기가 바로 자연의 이치요, 인생의 역사입니다. 안간힘을 쓰며 삶이라는 영역에 남기를 노력하더라도, 결국에 가서는 삶의 영역을 지나 죽음의 영역으로 옮겨야만 합니다.
전 요즘 들어 제가 지금 단풍과 낙엽의 중간 지점에서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생각에 어처구니없이 사로잡히곤 합니다. 달력 두 장(두 달이 한 장에 있는 달력이라면 달랑 한 장)만 넘기고 나면, 벌컥 새해라는 놈이 우리 앞에 설 것입니다. 그게 이리 겁나는 일로 다가오다니. 50대라는 고개가 꼭 달력 두 장을 남겨놓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낙엽과 제가 그리 닮았을 수가 없습니다. 단풍보다 낙엽에 살가운 게 이런 이유에서일까요. 조금 살았다 싶으면, 옛 이야기를 쓰는 것보다 이제는 알맞게 땅에 안착하여 적당히 퇴비가 됨으로 2세의 영양분이 되어야 한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너무 이르다는 생각도 함께 교차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50이라는 고개를 넘은 지 얼마 안 되니까요. 그러나 언젠가 그렇게 되는 게 순리란 생각엔 변함이 없습니다. 성경 베드로전서 1장 24절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풀포기처럼 허무하고 인간의 모든 영화와 권세도 들에 핀 꽃들과 다를 것이 없다."
그렇습니다. 이 말은 그 누구에게도 진리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삶은 푸른 이파리일 거라고, 아니라면 적어도 품새 좋은 단풍일 거라고 착각하는 게 우리네 인생입니다. 단풍과 낙엽 사이에 부는 아스스한 바람을 인정함이 옳지 않을까요. 그렇게 겨울이 오는 것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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