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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교회 예배 모습. 선교사가 오는 건 불법이지만 자체 예배는 허용한다.
 쿠바 교회 예배 모습. 선교사가 오는 건 불법이지만 자체 예배는 허용한다.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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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목사님과 J, 그리고 전도사
 마리아 목사님과 J, 그리고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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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하기 전 현지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특이하게도 여자 목사님인 마리아씨가 시무하시는 교회다. "쿠바의 교회는 나라에서 관리한다"는 얘기도 있지만 비교적 자유스러우면서도 다른 남미에 비해서는 조용한 분위기다.

찬양연주곡은 경건했고, 내 영혼 그윽히 평안을 느꼈다. 우리는 특별히 예배시간에 소개되었고, 또 그 예배를 함께 드렸다. 어렵지 않게 흐름을 따라갈 수 있었으므로 설교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불편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상상력을 최대한 동원해 머릿속에 그림을 그렸다. 저 사람이 얘기하는 게 무얼까, 오늘 내가 마음에 두고 달려가야 할 것이 무얼까. 일단 교회에서 주는 달디 단 주스 한 잔의 목넘김이 마냥 좋다.

코코넛 한 잔의 위안, 그런데 뭔가 부족해

J가 가장 좋아하는 코코넛
 J가 가장 좋아하는 코코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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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피자 두 조각으로 때우고 출발했다. 오후 1시도 채 되지 않아 물통의 물을 이미 다 비워냈다. 우리는 계속 달렸다. 중간에 여우비를 만났지만 대지 너머 알록달록 그려진 무지개를 바라보며 힘을 냈다. 유난히도 언덕이 많았는데, J는 예전 같지 않게 잘 넘어왔다. 막판으로 갈수록 다리 근육에 힘이 붙은 것이다.

"코코넛 먹고 가요!"

무료하게 라이딩을 하고 있을 무렵, 길 중간에 코코넛 파는 아이를 보자 나도 모르게 오토매틱 브레이크가 작동됐다. 산적들이나 쓸 법한 대도(大刀)를 몇 번 샤샥 휘두르더니 금방 꼭지에 알맞은 구멍이 뚫렸다. 더위 때문에 갈증 난 목을 축이는 데 코코넛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다. J는 아예 코코넛에 얼굴을 파묻을 듯한 기세로 남은 한 방울까지 탈탈 털어서 먹는다.

하지만 달짝지근한 코코넛이라도 시원함이 없고 양이 적어 순간적 일탈감만 줄 뿐이다. 그리고 콜라에 길들여진 난 코코넛 따위의 당도는 그다지 마음에 차지도 않는다. 다만 수많은 음료 중에서도 코코넛을 최고로 치는 J의 흡족한 표정이 위안이 된다.

정신을 맑게, 산뜻하게 해주는 음료를 만나다

사탕수수를 기계에 넣고 즙을 낸다.
 사탕수수를 기계에 넣고 즙을 낸다.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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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달고, 시원하다.
▲ 사탕수수 음료 무척 달고,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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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더울 때는 대책이 없다. 아스팔트 도로라는 것을 고려해 온도가 40℃이 넘으면 그늘을 찾든지 물로 배를 채우든지 해야 한다.

이럴 땐 제 아무리 다 쓰러져가는 허름한 가게라도 사막의 오아시스요, 가뭄에 단비가 된다. 그 곳에서 벌컥벌컥 들이키는 음료가 고급식당에서 마시는 것보다 더 맛있다면 여행을 아주 잘하고 있는 것이다. 열정을 다해 고생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여행 중간중간 자주 마시는 즉석 가내수공업용 주스는 쿠바 음료의 젖줄이다. 분말을 뿌려 만드는 저질 주스도 있지만 망고나 수박 등 과일을 직접 갈아서 만드는 고급 주스도 더러 있다. 가격까지 똑같으니 당연히 후자 '윈'!

쿠바 횡단을 거의 마쳐갈 무렵, 또다른 신기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과일 주스는 저리가라 할 정도로 정신을 맑게 산뜻하게, 그리고 에너지가 마구마구 분출되게 만들어 주는 음료를 대한 것이다.

'흐미, 무지하게 단그~.' 그렇다고 특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바로 사탕수수 음료다. 아바나에서 드문드문 보긴 했지만, 시골에서 처음으로 마시는 사탕수수 음료 한 잔은 나를 황홀경으로 빠져들게 했다. 직접 사탕수수를 갈아서 설탕을 듬뿍 넣어주는 한 잔의 여유.

일반 주스보다 당도도 훨씬 높고 시원하면서, 양도 두 배나 많다. 우리는 정신없이 들이켰다. 철제 컵 하나에 족히 400㎖는 담아내 두 컵만 마셔도 배가 부른데, 네 컵을 아무 어려움 없이 목구멍으로 넘겼다. 어지간히 지치고 더웠을까. 뻘겋게 익은 피부가 까맣게 타들어가는 고통 속에 유일한 기쁨은 바로 속이라도 시원하게 해갈하는 것이다.

쿠바의 과일주스는 '과일 반 설탕 반'

비가 오는 사이 잠시 들른 집 주인이 라디오를 듣고 있다. 쿠바 시골엔 라디오만이 유일한 정보통인 곳도 있다.
▲ 라디오를 켜봐요 비가 오는 사이 잠시 들른 집 주인이 라디오를 듣고 있다. 쿠바 시골엔 라디오만이 유일한 정보통인 곳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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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자 의식한 아저씨. 다시 옷과 모자를 걸치고 나와 진지한 표정으로 라디로를 듣는 모습이 우리를 즐겁게 해 주었다.
▲ 잠깐만! 사진을 찍자 의식한 아저씨. 다시 옷과 모자를 걸치고 나와 진지한 표정으로 라디로를 듣는 모습이 우리를 즐겁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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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도는 사탕수수 음료>과일 주스>커피>코코넛 순이다. 자체 당도는 도무지 무엇이 더 높은지 모르겠다. 물을 제외한 쿠바 음료에는 모두 설탕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많이.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이.

이를테면 단위 용적당 가장 적은 설탕이 들어가는 건 커피다. 커피 한 잔에 두 스푼 정도 들어가면 꽤 감칠맛이 난다. 사탕수수는 그 자체로 이미 달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웬 걸, 설탕도 엄청나게 뿌려 댄다. '설탕 따위야 손님을 위해서라면' 하듯 아낌없이.

과일주스에 들어가는 설탕의 양을 본다면 치과 의사들의 표정이 어떻게 될까 자못 궁금해진다. 몇 번 즉석 제조과정을 살펴본 결과, 황망하게도 과일과 설탕의 비율이 6:4나 7:3 정도 섞였다. 게다가 어떤 집은 과일 반, 설탕 반! 설탕으로 맛을 조금 더 돋우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주재료로 넣는 것이다.

이 설탕을 향한 쿠바인들의 애정은 열렬하기만 하다. 과거 쿠바의 주력 수출품은 사탕수수(설탕)였다. 18세기에 사탕수수 생산량을 점차 늘리면서 그 유명하다는 쿠바 담배를 대체해 경제를 이끌어가는 주요 작물이 되었다.

급기야 1970년에는 무려 1000만톤의 설탕을 생산해 쿠바 경제에 일대 대변혁을 가져왔다. 설탕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철도가 세워지면서 교통시설 발전을 가져오는 등 관련업 성장으로 인해 국가 경제가 활기를 띠었다.

쿠바는 섬나라라는 지리적 핸디캡이 있었고, 미국과의 단절 이후 자원의 상대적 박탈감을 겪었다. 그에 비해 사탕수수만큼은 천년만년 천하태평이라고 여겼다.

쿠바 설탕산업의 영화를 함께 누린 길. 경제낙후와 함께 지금은 이 길이 초라해 보인다.
▲ 기찻길 쿠바 설탕산업의 영화를 함께 누린 길. 경제낙후와 함께 지금은 이 길이 초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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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불황을 타개할 정치력과 기술력이 제자리걸음인 상태에서 쿠바의 설탕산업은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이제는 넓디 너른 사탕수수밭 옆에 놓인 철로를 보며 옛 영화를 잠시 감상해볼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1100만 국민을 책임질 내수용 설탕은 여전히 풍족하다. 쿠바 어디를 가든 양과 질 모두 동급최강 조미료로 손색이 없을만큼 인정받고 있다. 마르지 않는 샘처럼 설탕을 생산해내는 쿠바는, 다른 조건을 덮어놓고 보면 나 같은 설탕귀신에겐 낙원같은 곳이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고, 모든 음식에 무조건 보조를 맞춰야 하며, 무력함·소화불량·배앓이·두통 등 아픈 곳도 단칼에 해결해주는 나의 만병통치약 콜라의 존재를 잊을 만큼 강렬한 단맛을 주는 쿠바 음료에는 강력한 힘이 뒷받침되고 있다.

나는 갈증을 풀고, 쿠바 국민들은 생계를 이어간다

끝과 또다른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을테니.
▲ 달려라! 끝과 또다른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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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달아 건강이 염려되지만 그걸 알면서도 중독처럼 다가간다. 입자 하나하나가 결고운 백색보석의 빛을 가졌다면 염치없는 과장일까?

입에 털어넣는 순간 땀과 바꾼 달콤한 맛에 쿠바 농민들의 고단함이 느껴지는 듯 하다. 그리고 그들의 자부심도 동시에. 사탕수수의 나라에서 마시는 단 것, 더 단 것, 아주 단 것으로 오늘도 나는 갈증을 해소하고 쿠바 국민들은 생계를 이어간다.

참, 도대체 쿠바 과일 주스가 얼마나 다냐고? 과감히 추천해 본다. 그걸 마시고 난 다음 콜라를 마셔보시라. "콜라는 맹물에 탄산만 채워진 불량품"이라며 인상을 찌푸릴지 모른다.

쿠바 주스는 들이키지도 않고 "콜라는 너무 달아, 설탕 덩어리야"라고 말하는 것은 공 한 번 안 던지고 "선동열 슬라이더는 너무 밋밋해, 배팅볼이야"라고 하는 마인드라고만 조용히 일러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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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필자는 현재 '광야'를 모토로 6년 간의 자전거 세계일주 중입니다. 최근 도전과 열정, 감동의 북미 대륙횡단 스토리 <라이딩 인 아메리카>(넥서스)를 발간했습니다.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 http://www.vision-trip.net



태그:#쿠바, #세계일주, #라이딩인아메리카, #자전거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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