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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모 에로스, 겉그림
호모 에로스, 겉그림 ⓒ 그린비
어김없이 자연은 제 할 도리를 하느라 겨울을 우리 앞에 데려다 놓았다. 뼛속까지 파고드는 추위를 당해낼 재간이 없어 이럴 땐 순간이동 능력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 정도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인간관계가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라는 익숙한 명제 앞에 다시 서게 된다.

이전에 나는 친구라는 좁은 틀에 인간관계를 묶어두었다. 내가 만나는 사람은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친구관계가 계속되기 힘들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결혼이라는 제도, 소소한 일상의 온기 차이로 친구관계가 소원해지기도 한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에 모든 여건이 녹록치 않다. 나이 들어 무언가를 새로이 시작한다는 게 새삼스럽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친구를 사귄다손치더라도 그 깊이를 어찌 측량할 수 있으리. 혈연으로 맺어진 부모 형제, 친구 외에 우리는 선후배라는 인간관계를 지속시켜 나가기도 한다.

그 많은 인간관계 가운데 우리를 가장 빛나게 하는 관계가 있으니 그건 바로 연인이다. 뭐 줄곧 사랑을 꿈꾸기만 하고, 제대로 사랑 한 번 못해본 사람도 내 주위에는 지천으로 널렸으나 세상 이치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 그들도 머지않아 제 짝을 만날 날이 오겠지. 남녀 간의 사랑은 인생을 바꿀 만한 힘을 지니고 있다. 사랑 한 번에 인생이 망가지기도 하고, 인생이 긍정적으로 바뀌기도 한다. 그러니 사랑을 제대로 잘 해야 인생에 득이 된다는 말씀.

흔히 연애가 시작되면,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가거나, 하릴없이 유원지를 헤매거나 한다. 한마디로 온통 소비를 통해서만 사랑을 확인하려 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참으로 부질없는 짓이다. 힘으로 일어선 자 힘으로 망한다고, 소비로 맺어진 연애는 반드시 소비로 무너지게 되어 있다. 사랑만큼 소중한 감정도 없지만, 사랑만큼 부서지기 쉬운 감정도 없다. 10년 이상을 한 이불 밑에서 알콩달콩 살던 부부도 순식간에 파국을 맞이하곤 하는데, 하물며 처녀총각의 연애야 말해 무엇하랴. 그래서 책을 읽고 공부를 하라는 것이다. 함께 책을 읽으면서 데이트를 하면 돈도 덜 들고 서로에 대한 신뢰도 높아진다. 또 책을 읽으면 주고받을 이야기도 자연 많아진다. 그러면 말하는 능력, 서사적 힘도 절로 붙게 된다. 일석삼조! 아니 사조! - (208쪽)

일반적인 연애의 틀을 깨는 조언이다. 사랑이 지나가도 '피폐해진 마음뿐'이 되지 않으려면 공부하라는 것이다. 비록 사리 같은 상처를 안겨주더라도 마음의 양식은 곳간에 차곡차곡 쌓여 있으니 그래도 남는 장사가 될 수밖에.

저자는 사랑을 원한다면, 또는 운좋게 사랑을 하고 있다면 무엇보다 서사의 능력을 키우라고 강조한다. 여기에서 서사란 화술이 아니라 나의 삶과 외부가 맺는 관계성이라고 한다. 서사의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략이 필요한데 하나는 지금까지와는 아주 다른 삶의 영역을 개척하는 것. 다른 하나는 자신의 평범한 일상에 생생한 힘과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라고 말한다. '만약 지금 누군가를 짝사랑하고 있다면 자기비하와 헛된 망상에 빠져 헤매지 말고, 그 열망을 낯선 세계와 접속하는 동력으로 써 보는 건 어떨까' 하고 저자는 넌지시 운을 띄운다.

이를테면 사회봉사활동이나 시민운동 같은 것.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는 것도 좋고, 낯선 네트워크에 들어가 친구관계를 바꾸는 것도 좋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외적 자극에 의한 촉발로 인해 진부하기 짝이 없는 일상도 탄력이 붙게 될 거라고 강조했다. 핵심은 신체의 소통과 감응력을 높이는 데 있는데 이런 과정을 거치게 되면 몸이 전혀 다른 '어펙션'을 내뿜게 된다고 한다. 그게 바로 서사의 동력이며 사랑하는 이에게 뭔가 '줄'게 생긴다면, '전혀 다르게 변한 나를, 나의 싱싱한 일상을, 그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멋진 선물이 또 있을까'라고 묻고 있다.

사회봉사활동? 시민운동? 아 너무나 멋진 말이 아닌가. 덧붙여 저자는 선물을 왜 꼭 자신이 좋아하는 상대에게만 주려는지 묻는다. '그런 대상을 보내 준 이 세상에 대해서도 뭔가 보답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사랑을 하면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단다. 생각할수록 눈부신 말이다. 사랑할 수 있게 해준 데 대한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는 거구나. 사랑의 힘은 정말 위대하다!

사랑이란 단지 그 대상하고만 소통하는 것이 아니다. 그 대상이 살아가는 시공간과도 깊은 교감을 나누어야 마땅하다(이쯤에서 “사랑하는 대상이 바로 ‘나’다”, “참된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을 스스로 창조한다!”는 테제들을 암기해 보는 것도 좋겠다). 그러므로 사랑이 시작되면 내면에 웅크리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세상 속으로 성큼 들어가야 한다. 그러다 보면 그 힘에 의거하여 인연이 형성될 수 있고, 인연이 맺어진 다음엔 그렇게 만들어진 삶의 서사를 다시 나눌 수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인연이 생길 수도 있고. 암튼 이래저래 남는 장사다! - (226쪽)

인간은 누구나 외로운 존재며, 가끔은 시장기 같은 외로움을 통해서 자기 삶을 맑힐 수가 있다고 법정 스님이 말씀하신 바 있지만, 우리는 본능적으로 사랑하며 살기를 원한다. '사랑하고 싶다면, 공부를 하라' 인문학자 고미숙의 처방전이다. 사랑을 공부의 대상으로 여기고 공부를 통해 인간과 세계에 대한 안목을 높이자는 말이다. 찬바람이 부는 계절, 더없이 허한 속을 사랑으로 채우고 싶은 이들이 있다면, 공부하자. 공부가 우리를 구원할지니!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 내 몸을 바꾸는 에로스혁명, 개정증보판

고미숙 지음, 북드라망(2012)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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