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빨리 결정해!"
"그래 씻자. 지금 안 씻으면 아무래도 후회할 것 같다."
지난 21일(일) 새벽 0시 30분 소금에 절인 배추를 뒤집어도 될 것 같았다. 그 전날 오후 5시쯤 절인 배추라 그 시간에 뒤집어 놓고 아침에 씻으면 될 것 같았다.
한두 개 뒤집어 봤다. 그런데 반쯤 절여져 있어야 할 배추가 지금 당장 버무려도 될 정도로 적당하게 절여져 있었다. 혹시나 해서 계속 뒤집었지만 모두가 당장 씻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 어떤 것은 아주 푹 절여져 있었다.
피곤도 하고 그 밤중에 씻고 잔다는 게 귀찮기도 해서 '그냥 자고 새벽 4시~5시에 일어나서 씻을까? 얼마나 더 절여질라고' 싶었다. 하지만 그 시간에 뒤집고 새벽 4시~5시에 일어나기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또 아침에 씻는다면 너무 절여져서 배추가 짜고 질겨질 것 같았다. 그래서 '그래, 김장은 일년의 반농사이고 한 번 있는 일인데 씻고 자자'고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이다.
그런데 소금을 많이 쓰긴 했지만 그렇게 많이 썼나 하고 소금자루를 확인해 보니 30Kg을 거의 다 쓰고 국대접으로 10대접 정도 밖에 안 남은 것이 아닌가. 참 어이가 없었다. 소금은 남편이 갖다 주어서 얼만큼 썼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된 것이다.
어쨌든 씻기로 결정을 하고 나니 마음이 바빠졌다. 남편은 피곤하다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아들과 딸은 목욕탕에서 나는 베란다에서 배추를 씻기 시작 했다. 배추를 씻으면서 속에 있는 배추를 보니 씻기로 한 것을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푹 절여진 것도 꽤 있었다. 딸과 아들도 마찬가지로 말을 한다. 배추를 다 씻고 나니 새벽 2시 30분이 되었다. 시간은 그렇게 되었지만 걱정이 사라지니 마음은 편해졌다.
몇 시간 자는 둥 마는 둥하고 아침에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씻어 놓은 배추를 보니 정말 많았다. 딸은 싱글싱글 웃으면서 말한다.
"엄마 너무 많은가?"
"그러게 많긴 많다."
"엄마 이렇게 많이 해보긴 처음이지?"
"그래 처음이다. 120포기나!"
"엄마 이렇게 하면 내년 김장할 때까지 먹을 수 있잖아. 그리고 생김치 먹고 싶으면 조금씩 해먹으면 되고."
"그래 이왕 저절렀으니깐 해봐야지."
딸은 작년에 김치때문에 조금 애를 먹었다. 나도 김장을 20포기 정도 했으니 딸아이를 많이 주지 못했다. 딸의 시댁에서도 김장을 조금 했는지 감감 무소식이었다. 하여 딸아이는 올해 아주 단단히 마음을 먹은 것 같았다.
작은 김치냉장고와 냉장고가 있는데 큰 김치냉장고를 하나 더 샀다. 그곳에 일년치 김치를 넣어둘 거라고 한다. 일단 집에 김치가 많으면 마음이 놓이고 다른 반찬 한두 가지만 더 있으면 밥만 해서 먹으면 된다는 생각인 것이다.
요즘 먹거리에 대한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닌 것이 사실이다. 하여 점점 외식하기가 겁이나기에 될 수 있으면 집에서 해먹고 있다고 하는 딸아이의 말이다. 또 두 손자들이 김치를 잘 먹는 편이기에 더 그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올 김장은 다른 때보다 4~5배가 더 많으니 사전에 가족이 모두 거들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다음날 일찍 일어난 남편이 씻어 놓은 배추를 보고 놀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속사정을 들은 남편은 "그러게 소금을 그렇게 많이 썼으니" 한다. 부지런히 아침을 해먹고 본격적으로 김장담그기에 들어갔다. 무채는 남편과 아들이 썰기로 했다. 사위는 회사에 바쁜 일이 생겨 출근을 해야 했다. 딸과 나는 양념을 준비했다. 나도 그렇게 많이 해보기는 처음이라 양념이 어느 정도 들어가야 하는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다.
양념을 준비하다 보니 아무래도 모자랄 것 같기에 시장에 또 갔다. 갓, 쪽파를 더 사가지고 오기도 했다. 무를 썰던 남편이 6개 정도 남겨 놓고 너무 많다면서 그만 썬다고 한다. 난 아니라고 6개 마저 다 썰라고 했지만 남편은 막무가내였다. 할 수 없이 6개를 남겨놓은 채 배추 속을 넣기 시작했다. 점점 줄어드는 배추가 반갑기만 했다.
120포기를 어느 것은 두 쪽, 네 쪽 자른 것이 있으니 배추 속 넣기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속을 넣다보니 양념 속이 모자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6개 남겨놓은 무를 다 썰었으면 남김없이 다 할 수 있었는데. 할 수 없었다.
일단 양념을 넣지 못한 배추를 남겨 놓은 채 뒷정리를 하고 저녁을 먹기로 했다. 그래도 남편에게 한 마디 해야 했다. "내 말을 좀 들어야지. 그래도 살림을 30년 넘게 한 사람인데 눈대중이란 것이 있잖아" 하니 남편도 조금 미안했는지 "알았어요. 마님. 다음부터는 안 그럴게요" 하며 너스레를 떤다.
막걸리에 보쌈으로 저녁을 먹었다. 다음날 난 또 나머지 김장준비로 바빴다. 시장에 가서 생새우, 갓, 쪽파, 까나리젓갈 등을 사가지고 왔다. 다음날 아침에 출근을 하면서 남편이 " 저거 그냥 놔둬. 내가 저녁에 와서 할게" 한다. "하루 종일 일하고 온 사람한테 어떻게 그렇게 해. 내가 슬슬 해야지" 했다. 하지만 처음으로 많이 한 김장인지라 몸이 여기저기 쑤시고 아팠기에 조금 쉬어야 했다. 그래서 그날 김장은 생각만큼 진도가 빨리 나가지 못하고 말았다.
본의 아니게 남편의 말대로 퇴근을 해서 같이 하게 되었다. 그날 남겨 놓은 6개의 무 중 5개를 남편이 채를 썰고 나는 양념준비를 한 뒤 버무려서 둘이 배추 속을 넣었다. 얼마 안남은 줄 알았던 배추가 중간 항아리로 한 항아리가 넘었다. 120포기나 한 김장이라 집에 있는 김치통과 큰 통은 남아 나는 것이 없었다.
그래도 모자라 마지막에는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던 항아리에도 김치를 담게 되었다. 오랜만에 항아리에 김치를 담그고 우거지로 덮어 놓았다. 예전에 그랬듯이. 김치를 그릇에 다 담아놓고 뒷정리를 마쳤다. 그제야 김장이 끝난 것이 실감이 났다. 그릇에 담아 놓은 김치를 보니 정말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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