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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人+in]은 오마이뉴스 정치부 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만난 '정치인의 속내'를 톡톡 튀는 에피소드와 뒷담화로 엮어서 돌아가면서 쓰는 고정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예일대 법학 교수 에이미 추아가 쓴 <제국의 미래>,
 예일대 법학 교수 에이미 추아가 쓴 <제국의 미래>,
ⓒ 비아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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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기자 출신 김형오 국회의장(5선)은 요즘 '관용'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내친 김에 김 의장은 정치권에 '관용의 정치', '관용의 리더십'을 주문했다. '관용'이 그의 최신 화두가 된 셈이다.

김 의장이 '관용'이라는 화두를 붙잡게 된 데는 지난 5월에 발간된 한 권의 책이 큰 역할을 했다. 미 예일대 법학 교수 에이미 추아가 쓴 <제국의 미래(비아북)>가 그것이다.

김 의장은 출간 직후 <제국의 미래>를 탐독한 뒤 자비를 들여 책을 구입해 지인들에 선물하며 일독을 권했다. 거의 마니아 수준이다. 

'관용' 마니아, 김형오

<제국의 미래>가 김 의장을 사로잡은 이유가 뭘까? 이 책은 고대 페르시아·로마, 동양의 당나라·몽골, 서양의 네덜란드와 영국·미국 등이 제국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다원주의와 관용이 자리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제국의 성공 요소로 지리·인구·자원·지도력 등이 언급되지만, 다원주의와 관용이 없었다면 제국은 성공할 수 없었다는 것이 에이미 추아 교수의 분석이다. 이는 "관용이 사라지면 제국은 몰락한다"는 명제로 이어진다.

그런 독특한 분석 때문에 이 책은 올해 삼성경제연구소가 선정한 'CEO가 휴가 때 읽어야 할 도서 20선'에 선정됐다. 게다가 지난 11월 '최초의 흑인대통령'으로 기록될 오바마가 대선에서 승리하자 <제국의 미래>는 국내에서 더 많은 관심을 받았다. '현대의 제국' 미국의 미래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김 의장은 지난달 26일 공주대 명예교육학 박사학위를 받는 자리에서도 <제국의 미래>를 언급하며 관용의 정신을 강조했다.

김 의장은 "최근 역사상 초강대국들의 성장과 몰락 과정에서 배워야 할 교훈을 분석한 <제국의 미래>를 감명 깊게 읽었다"며 "로마·당나라·몽골·스페인·네덜란드·영국·미국 등 다원적이고 관용적이었기에 제국으로 발전한 나라들을 분석했다"고 소개했다.

김 의장은 이 책을 탐독한 심정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다. 

"끊임없이 변화하면서도 중심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 전략적 관용과 상대적 관용의 실체를 접하면서 저는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관용의 정신과 한미FTA는 과연 어떻게 어울리나?

<제국의 미래> 애독자가 된 김형오 국회의장.
 <제국의 미래> 애독자가 된 김형오 국회의장.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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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김 의장은 "21세기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 갈 힘을 '관용의 정신', '관용의 리더십'에서 찾아야 한다"며 관용의 현재적 의미로 ▲ 화합과 상생 ▲ 나눔과 배려 ▲ 개방 등을 강조했다.

김 의장이 언급한 관용의 현재적 의미들은 정치 분야뿐만 아니라 양극화가 구조화되고 있는 한국사회 전반에 꼭 필요한 것들이다.

하지만 그가 관용을 한미FTA와 연결시킨 점은 뭔가 어색해 보인다. 

김 의장은 관용의 세 번째 의미로 '개방'을 제시한 뒤 "오랜 폐쇄적 단일국가 관념에서 열린 세계로 나가기 위한 인종적·문화적 관용을 우리가 실현할 수 있느냐의 시험대이기도 하다"며 "한미FTA나 한-EU FTA 체결의 필요성 역시 같은 맥락에서 바라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몽골 제국을 세운 징기스칸의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여는 자는 흥한다"는 말까지 인용하며 은근히 개방대세주의를 강조했다. 

'관용의 정신'이 '한미FTA 비준'과 뭔 상관?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김 의장이 강조한 '관용의 정신'과 '한미FTA 비준'이 도대체 어떻게 어울린다는 말인가? <제국의 미래>를 아무리 들추어보아도 그 관계성을 헤아릴 길이 없다. 

여러 전문가들이 분석했듯, 한미FTA가 한국사회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게다가 한미FTA에 관한 한 '제국'은 미국이지 한국이 아니다. 그런데도 관용의 현재적 의미를 따지면서 '한미FTA 체결 필요성'을 은근슬쩍 언급한 것은 <제국의 미래>를 오독한 증거가 아닐까?

그래서 이런 상상을 해본다. 오히려 대한민국 입법부의 수장인 김 의장이 '오만한 제국' 미국에 관용의 정신을 요구하면 어떨까? 그리고 한미FTA 폐기는 아니더라도 미국에 재협상을 요구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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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김형오 , #제국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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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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