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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이슬에 맺힌 겨울 숲 겨울비 내린 다음 날 아침, 나목의 나뭇가지에 희망을 닮은 비이슬 한 방울이 위태위태 달려있다.
비이슬에 맺힌 겨울 숲겨울비 내린 다음 날 아침, 나목의 나뭇가지에 희망을 닮은 비이슬 한 방울이 위태위태 달려있다. ⓒ 김민수

숲이 자신의 속내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계절인 겨울, 비밀스러운 그들만의 잔치를 벌였던 여름과 가을을 보낸 숲에 찬바람이 분다. 나목이 아니었다면 을씨년스러운 찬바람이 불어오는 겨울 숲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더 차갑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춥고 배고픈 사람들을 격려하기 위해 겨울 나무는 그렇게 맨몸으로 겨울을 맞이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제는 겨울비가 종일 내렸다. 폭설이 내렸다는 소식도 들리긴 하지만 서울의 첫눈은 이전보다 늦다. 그렇다고 겨울이 늦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겨울은 혹독하리만큼 빨리 다가오고 지루하리만큼 길다.

 

겨울비가 내리고 나면 더 추워지는 계절이기에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라도 겨울비는 슬프다. 유행가 가사에서 겨울비가 왜 슬픔 혹은 외로움인지를 공감하는 나이가 되면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짧다는 것을 발견한다. 사춘기 혹은 청년기의 감수성으로 느끼는 겨울비와 중년 혹은 노년의 길목에서 느껴지는 겨울비는 그 무게가 다르다.

 

10년 전, 그러니까 1998년 이맘 때였다. 아내는 셋째를 임신하고 있었고, IMF의 여파로 구조조정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내가 다니고 있던 곳도 예외는 아니었고, 이듬해 5월 셋째가 태어나고 두 달이 안 되어 실직자가 되었다. 보증관계로 퇴직금을 다 쏟아붓고도 3천만 원이라는 빚을 떠안게 되었다. 그리고 10년, 우여곡절 끝에 빚도 갚았고 풍족하진 않지만 나름 안정된 삶을 살아왔다.

 

세 아이 사교육비에 허리가 휘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학부모라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였다. 내 생각만 고집하다가 혹시라도 아이들에게 원망을 듣는 부모가 될까 두려웠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몇 년만 더 지나면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삶을 살아갈 것이라 기대하며 아내와 노년의 계획을 세웠다. 거창한 계획은 아니다.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시골로 내려가자는 것, 그래서 소박한 밥상을 대하며 자급자족하는 삶을 살아가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지난 10년을 달려왔다.

 

그리고 2008년, 모든 것이 10년 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똑같다. 다른 것이 있다면 그때보다 열 살이 더 먹었다는 것, 인생의 쓴맛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 그래서 젊은이들이 보기에는 기회주의자처럼 보일 수도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어느새 물질의 소유가 행복의 척도가 되는 자본의 논리에 따라 살아간다. 더 많이 갖고, 더 좋은 것을 갖는 것으로 내 존재의 위치를 확인하는데 익숙해졌다. 추구하는 삶과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는 나를 보면서 진저리를 치지만 올무에 걸린 새처럼 자본의 올무에 걸려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나를 본다.

 

며칠 전 그리 유명하지 않은 작가의 책을 봤다. 인터넷 카페의 회원에게 보냈던 편지들을 모아 책으로 발간한 모양인데, 편지 하나가 서너 페이지가 될 정도의 장문편지였다. 매일 저렇게 장문의 편지를 쓴 정성이 깊다. 편지의 내용은 주로 '희망, 긍정적인 생각, 착하게 살자' 등등이었다. 중간쯤 읽었을까? 갑자기 부아가 나기 시작했다. 단어가 나쁜 것도 아니고, 편지의 내용이 부정적인 것도 아니었지만, 도대체 이 세상에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싶었기 때문이다.

 

아플 때는 아프다 말도 하고, 슬플 때는 웃기도 하고, 화가 나면 욕도 하고 화풀이도 할 수 있어야 사람이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꼭꼭 자기의 감정을 숨기고 마냥 착한 사람, 좋은 사람이 된다고 그것이 좋은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동안 내가 이야기했던 희망들이 누군가에게는 이렇게 역겨울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니 부끄러웠다.

 

삶이 팍팍하다. 너도나도 조금도 손해를 볼 수 없다고 하고, 부자는 더 부자가 되려고 가난한 이들의 몫을 빼앗는다. 가난한 이들은 가난한 이들대로 자신의 것을 지키려고 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부자들이 이기는 싸움인 것, 자신은 들러리였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좌절하게 된다. 그럼에도, 희망을 봐야 한다고 자위하는 삶이 아프다.

 

비 온 다음 날 아침, 겨울 숲의 나목 나뭇가지에 비이슬이 맺혀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다. 그리고 그 작은 비이슬 안에는 겨울 숲이 들어 있다. 이렇게 작은 비이슬이 품은 겨울 숲, 어쩌면 내 작은 희망도 비이슬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바람불면, 햇살비치면 이내 말라버릴지라도 비이슬 맺혀 있는 그 순간만큼은 온 숲을 담은 비이슬과 희망은 닮은꼴이 아닐까 싶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카페 <김민수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슬#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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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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