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7년 봄, 헌책방마을에서는 어딘가 알쏭달쏭한 일이 터졌습니다. 불온도서를 사고팔았다면서 공안경찰이 헌책방인 미르북 김명수 대표를 붙잡아 가두고 조사했습니다. 이어 수원에 있는 어느 헌책방 대표까지 붙잡아 가두어 조사했습니다.
그러고는 이 수원 헌책방과 책을 사고판 서울 중곡동 가자헌책방 김종웅 대표한테까지 손을 뻗쳐서 붙잡아 가두어 조사한 일이 있었습니다(나중에 알려진 일이지만, 이때 검찰과 경찰에서 문제로 삼은 책은 교보문고·영풍문고·알라딘과 숱한 새 책방에서 버젓이 잘 팔고 있던 책이었습니다).
한두 매체에 이 이야기가 실리기는 했으나, '교보문고 대표'도 아니요, '인문사회과학 책방 대표'조차도 아닌 '헌책방 대표'라 그러했는지, 두루 이야기가 되지 못했습니다.
지난해부터 불기 시작한 공안 바람은, 헌책방부터 찾아들었습니다. 왜 헌책방에 공안 바람이 불어야 하는지 무척 궁금한 노릇입니다. 헌책방에서 사고파는 책이라고 해봐야 얼마나 된다고. 교보문고나 영풍문고에서 사고파는 책에 견주면 새발의 피조차 되지 않습니다.
헌책방에서 사고파는 책은, 먼저 교보와 영풍에서 사고팔린 책입니다. 그 다음에 사람들이 헌책방에 내놓든, 그냥 폐휴지로 버려서 고물상을 거쳐 헌책방에 들어오게 되든, 몇 다리를 거치고 거쳐야 들어오게 됩니다. 앞선 숱한 사람들 손길은 제쳐두고 헌책방을 들볶는 까닭을 도무지 알 노릇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얼마전 인문사회과학 책방 '풀무질' 공동대표 은종복님하고 댓거리를 하는 가운데, 공안경찰이 어이하여 헌책방 일꾼을 들볶는지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은종복님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고 한동안 옥살이를 할 때에, 은종복 님을 조사하던 형사가 "큰 책방에 있는 일꾼은 돈을 벌려고 하는 거고, 당신은 돈도 안 되는 책방 하면서 북한을 이롭게 하고 학생들한테 사회주의·빨갱이 사상을 심어주려고 하는 것이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국가보안법으로 우리 삶과 생각을 억누르려는 사람들이 보기에, 인문사회과학 책방을 하는 사람, 헌책방을 하는 사람'은 돈을 벌 생각이 없는 사람으로 여겨졌구나 싶습니다.
지난해 6월 어느 날 일이 떠오릅니다. 그때 서울 중곡동에 있는 가자헌책방에 난데 없이 공안경찰이 들이닥쳤습니다. 이 때 경찰들한테 붙잡혀 하루 내내 심문을 받았던 김종웅 대표는 저한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현재 출판이 되어있다, 왜 약한 사람 데리고 와서 그러느냐, 교보나 영풍이나 출판사에 가서 그런 책 출판하지 못하게 해야지 왜 헌책방에 와서 압수해 가냐, 헌책방이 힘이 없어서 그러느냐, 이런 책들 다 새책으로 팔고 있다'고 그러니까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그래."
헌책방 일꾼의 '푸념'을 듣고는 이튿날 곧바로 서울로 날아갔고, 공안경찰이 곧 압수하겠다면서 따로 빼둔 책들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러고는 피식 웃었습니다. 공안경찰들이 '이적표현물'로 삼아서 압수해 가겠다는 책들은 다음과 같았거든요.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돌베개)> <인도차이나 현대사(여래)> <경제학개론(풀빛)> <80년대 학생운동사(형성사)> <필리핀 사회와 혁명(공동체)> <일본 제국주의의 현실(한마당)>
<사회구조와 삶의 질서(학문과사상사)> <한국자본주의와 사회구조(한울)> <새로운 사회학의 이해(나남)> <여성해방의 이론과 현실(창작과비평사)> <4월 혁명 자료집, 혁명재판(학민사)> <소련공산당의 해체와 북한사회주의의 진로(한울)> <장지연, 민족주의 사학의 선구(동아일보사)> <사회과학개론(백산서당)> <미국재계를 움직이는 9명의 한국인들(한언)> <일본의 지성이 본 안중근(경운출판사)> <서양경제사강의(한울)> <새계공산주의운동입문(청년사)> <마르크스주의의 인식론(이론과현실사)> <사회과학과 철학(서광사)> <20세기 혁명사상(동녘)> <대중문학이란 무엇인가(평민사)> <거대 기계 지식(생각의나무)>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 연구(친구)> <과학기술혁명시대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중원)> <한국언론의 신뢰도(한국언론재단)> <정치경제학개론(한)> <사회계급론(백산서당)> <자본주의 이행논쟁(광민사)> <문화의 유형(종로서적)> <현대 정치와 군부(현암사)> <사회사상사(사계절)> <정치적 커뮤니케이션론(명문당)> <아리랑(해냄)> <노자와 21세기(통나무)>
그 무렵 김 대표는 자정을 넘길 무렵 울먹이는 소리로 저한테 전화를 걸어 울먹이다 십 분 뒤 다시 전화 한 통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메모를 부탁했습니다.
"지금 메모하실 수 있어요? 적어주세요.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심판>, 아놀드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중원문화사에서 나온 10권짜리 <세계철학사>. 이제 끝났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고문 받다가 아주 성질이 나게, 아주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에, 오늘은 아침 아홉 시부터. 그리고 <이성과 혁명>이라고 마르쿠제 있잖아요.
…검찰 측에서 공안부에서 하는 게…. 내가 오늘 어디까지 간 줄 알아요? 정말 미쳐버리고 싶은 게, 경기지방검찰청·과학수사대·과학수사대에서 좀전에 지문검색을 하고 범법자로 국가비밀누설·좌경용공사범으로 올라가 버렸어요. '선동화' '선동' 있잖아요……. 고무 찬양으로. 국가사범으로 '○○○, 죄명, 국가사범' 딱 이렇게 되어버렸어. 안 미치겠어요? 나 아까 전에 나오면서 소주 두 병 혼자 까버렸어요. 미쳐버리지 않기 위해서."
그리곤 전화를 끊었는데, 이십 분쯤 지나서 다시 한 번 전화기가 울렸습니다. 자살하고 싶다고 심정을 털어놓더군요.
그 뒤로 김 대표는 몇 차례 더 심문을 받았지만, 그 어떤 죄목으로도 붙잡을 구석이 없었기 때문에 흐지부지 끝났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애먼 사람을 붙잡아서 괴롭히고 들볶아 스스로 죽고 싶다는 말이 나오게끔 했음에도, 나라는 이 일꾼한테 '미안하다, 잘못 알고 그랬다' 같은 뉘우치는 말 한 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달 동안 일도 제대로 못하고 마음 앓아가며 집안살림도 꾸리기 어려웠던 온갖 아픔에 갚음하는 일은 아예 바랄 수 없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나라는 또 경찰은과 공안부서 공무원은 자기들이 엉뚱하게 괴롭힌 헌책방 일꾼한테 마땅히 피해보상을 해주어야 하지 않았을까 모르겠습니다.
문득, 그 헌책방 일꾼 요즈음 소식이 궁금합니다. 손전화를 꺼내 안부를 여쭈어 봅니다. 요즈음도 경찰들이 더러 찾아오고 있다지만, 달리 꼬투리 잡을 대목이 없어서 그런지 그냥 돌아간다고 합니다. 꼬투리는 안 잡지만 오는 것으로도 사람을 괴롭히는 꼴입니다.
"신경 안 쓰기로 했어요."
그러나, 어찌 마음이 안 쓰일 수 있을런지요. 신경 안 쓰기로 했다는 말에, 오히려 더 '마음이 쓰여서 괴롭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만 않으려고 한다'는 느낌이 묻어납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맞고 틀리고를 떠나 빨갱이이고 아니고를 떠나, 그저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서 사고팔고 읽던 책이 고물이 되어 헌책방에 들어왔기에, 먼지 먹어 가면서 그 고물이 된 책을 닦고 손질하고 추슬러서 책꽂이에 곱게 꽂아놓고 새로운 책임자를 기다리던 헌책방 일꾼한테, 이렇게 모진 몽둥이질을 해대는 공안경찰들은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을 그치지 않는지 묻고 싶습니다.
이들이 '불온도서'와 '이적표현물'이라는 이름으로 애꿎은 사람을 들볶는 일은 어떤 법에 따르는 일인지 묻고 싶습니다. 이들이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있는 국가보안법 위에는 '헌법'이 똑똑히 있고, 헌법에는 자유로운 생각과 자유로운 일과 자유로운 책과 자유로운 사람을 지키고 보듬도록 뚜렷이 적혀 있지 않은가 묻고 싶습니다.
국가보안법이 아무리 대단한들 헌법을 짓밟고 올라설 수 있는지, 헌법 따위는 깡그리 깔아뭉개도 되는지, 헌법이야 자기들한테는 아무 쓸모가 없는 셈인지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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