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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마포구 동교동 함께하는사회 빌딩 2층에 자리잡은 마포FM은 건물 벽에 붙은 작은 현수막이 아니면 라디오 방송국인지도 모를 정도로 '소규모'다.
서울 마포구 동교동 함께하는사회 빌딩 2층에 자리잡은 마포FM은 건물 벽에 붙은 작은 현수막이 아니면 라디오 방송국인지도 모를 정도로 '소규모'다. ⓒ 장일호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에 내려 라디오 주파수를 100.7에 맞춰봤다. 깨끗하게 잡히는 음악소리에 '아-'하는 낮은 감탄이 절로 흘러 나왔다. 직장에서 혹은 학교에서 고단한 일상을 마치고 동네로 들어섰을 때, 그렇게 반갑게 만날 수 있는 '우리 동네 라디오'가 있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일까. 순간 마포 주민들이 무척 부러웠다. 그런데 잠깐. 공동체라디오? 마포FM? 어라, 낯설다. 

 

공동체 라디오는 '시군구라는 기초지자체 정도의 넓이를 방송권역으로 하는 비영리 라디오방송'으로 정의할 수 있다. 현재 관악, 분당, 광주 등 8개의 공동체 라디오가 운영되고 있고, 마포FM도 그러한 공동체 라디오 방송 중 하나다.

 

그런데 이런 공동체 라디오가 최근 위기에 처했다. 정부는 비영리방송으로서 광고를 허용하지 않는다던 기존 입장을 뒤엎고 광고를 통해 자생력을 키울 것을 요구했다.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내년부터 공동체 라디오의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현재 마포FM은 방통위로부터 월 500만원의 지원을 받고 있는데, 이 지원이 중단되면 방송을 중단해야 할지도 모르는 위기에 처하게 된다. 

 

마포FM에는 지역 소식을 다루는 프로그램을 비롯해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L양장점', 홍대 앞 인디밴드들의 음악을 들려주는 '뮤직홍', 아줌마들이 실생활에서 겪는 일들을 풀어내는 '랄랄라 아줌마', 노인들이 만들어가는 '행복한 하루' 등이 편성돼 있다. 이 중 비혼 페미니스트들을 위한 방송이라는 '야성의 꽃다방' 녹음현장을 찾아 공동체 라디오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느끼는 어려움은 무엇인지 들어봤다.

 

'ON AIR'의 빨간 불에 마음 설레다

 

 매월 첫 주에 방송되는 시사프로그램 <야성녀가 간다!>를 진행하는 날래씨와 고길동씨. 방송 준비로 여념이 없다. 이들이 직접 준비한 대본은 의도된 여백이 많다. 언제 올지 모르는 게스트를 배려한 것. 그만큼 자유롭게 채워나가는 이야기가 풍성하다.
매월 첫 주에 방송되는 시사프로그램 <야성녀가 간다!>를 진행하는 날래씨와 고길동씨. 방송 준비로 여념이 없다. 이들이 직접 준비한 대본은 의도된 여백이 많다. 언제 올지 모르는 게스트를 배려한 것. 그만큼 자유롭게 채워나가는 이야기가 풍성하다. ⓒ 장일호

 

야성의 꽃다방. 이름에서 어떤 느낌이 오는가. 이 라디오 방송은 기존 매체들이 비혼 여성의 목소리를 담고 있지 못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2006년 3월 첫 방송을 시작으로 월요일 자정부터 1시간 동안 3년째 방송을 이어가고 있다. 

 

월요일 방송을 위한 녹음은 금요일 저녁 7시가 지나 시작됐다. 장비를 점검하고 준비해 온 대본과 멘트를 맞춰가며 분주하게 방송 준비를 하는 사람들의 열정적인 모습은, 지켜보는 사람까지 두근거리게 했다. 이 날 녹음은 시사프로그램인 <야성녀가 간다!>와 여성 아티스트들을 만나보는 <페마주>가 예정돼 있었다.

 

녹음 준비를 마친 DJ와 엔지니어는 상기된 표정으로 넋 놓고 지켜보고 있는 나에게 헤드셋과 마이크를 내주며 앉으라고 권했다. "네? 저요?"라고 되묻자, DJ 중 한 명인 날래씨가 "오늘은 '간통'에 대해 토론할 참인데 같이 하자"며 웃는다. '함께 만들어 가는 라디오 방송'이라더니 그 말이 허튼 게 아니었다. 곧 'ON AIR'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시그널이 시작되고 나는 다소 긴장된 마음으로 그들 틈에 앉아 있었다.

 

"12월 1일 야성의 꽃다방, 오늘은 고길동과 날래의 <야성녀가 간다!>와 달차의 <페마주>가 진행됩니다."

 

DJ 고길동씨의 씩씩한 목소리가 단출한 스튜디오 안에 울려 퍼졌다. 곧이어 대학 총학생회 선거 이야기, 조성민 친권 논쟁, 2008 글로벌 성 격차 보고서에 관한 이야기까지. 그녀들이 선정해온 11월 한 달 동안의 뜨거운 여성 이슈의 리뷰가 숨 가쁘게 이어졌다.

 

리뷰가 끝나자 최근 벌어진 옥소리씨의 판결을 두고 '간통'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떨리던 마음도 잠시, DJ와 엔지니어, 나와 또 다른 게스트는 어느덧 경계를 허물고 수다 떨듯이 편하게 '여성들의 생각'을 나눴다(궁금하신 분들은 마포FM 홈페이지를 통해 들어보시길).  

 

이어 사운드 디렉터 물통씨를 초대해 이주여성들의 인터뷰로 작업한 '사운드 콜라주'까지 함께 들어 본 <페마주>의 녹음이 끝난 시간은 밤 10시가 가까운 시각. 57분의 방송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내어 활동하는 그녀들은 모두 각자의 일을 따로 갖고 있다. 그러나 그녀들 누구에게서도 고단한 표정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방송에 대한 소회를 나누고, 각자의 사는이야기가 오가는 스튜디오의 분위기는 한마디로 '훈훈함'그 자체였다.

 

기존 미디어가 하지 못하는 이야기들

 

 11월의 엔지니어 담당을 맡은 마도 씨(빨간 체크)는 꽃다방의 열혈 청취자 중 한 사람이었다.
11월의 엔지니어 담당을 맡은 마도 씨(빨간 체크)는 꽃다방의 열혈 청취자 중 한 사람이었다. ⓒ 장일호

일주일에 한 번씩, 한 달에 네 번의 방송은 10여명의 활동가들이 돌아가면서 맡고 있다. 큰 그림으로 짜여진 프로그램만 있을 뿐 고정된 DJ도, 엔지니어도, 게스트도 없다. 매달 '달모임'을 통해 서로의 역할을 돌아가면서 맡게 된다. 활동가들 중에는 '열혈 청취자'였던 사람들도 포함돼 있다.

 

이날 녹음방송 엔지니어를 맡았던 마도씨는 "사람들이 많이 놀러왔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금요일 저녁에 뭐할까, 심심하니까 꽃다방에 놀러와야지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것. 기존 미디어와 달리 공동체 라디오는 문턱이 낮은 것이 장점이다. 누구나 와서 자신의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다. 또 그들의 목소리를 전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이 공동체 라디오를 고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마도씨 또한 처음에는 청취자였다. 그는 "내가 여성주의자일까 혹은 비혼일까에 대해서 스스로 선언하기도 그렇고 잘 모르겠다가, 꽃다방을 알고 듣게 되면서 이런 내 고민들을 '소통'할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며, 이러한 참여가 "나를 자유롭게 드러내고 자기검열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라디오를 함께 만들면서부터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됐다는 것. 그는 친구가 많이 생기게 된 것도 장점으로 꼽았다. 

 

수수씨는 "예전에는 내 얘기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말하는 것에 만족하고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공동체 라디오를 통해 내가 치유됨은 물론 커뮤니티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면서 욕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단순히 비혼 페미니스트 뿐 아니라 "다른 소수자들을 고민하게 됐고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서로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라디오에 대한 욕심"이 생긴 것.

 

활동가들은 방송통신위원회의 일방적인 지원 중단 결정에 아쉬움을 표했다. 날래씨는 "여러가지 아쉬운 점도 많지만 마포FM이 없으면 야성의 꽃다방도 없는 것"이라며 "주류 미디어가 공동체 라디오처럼 소외된 사람들, 소수자의 이야기를 자신의 관점에서 이야기 할 수 있나?"라고 물었다. 이어 "이야기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 자체가 소중하다"고 덧붙였다.

 

수수씨는 "커뮤니티 라디오 협의회와 함께 논의하는 등 나름의 방식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연대와 액션을 취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며 "야성의 꽃다방 청취자들과의 공감대를 확대하는 방법도 생각 중"이라고 했다.

 

우리동네 라디오 스타도 만나고 싶다

 

 여느 공동체 라디오가 그러하듯 야성의 꽃다방의 라디오도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방송이다. 누구에게나 마이크가 열려 있다. 이 날도 약속돼 있지 않던 게스트가 두 명이나 함께 했다.
여느 공동체 라디오가 그러하듯 야성의 꽃다방의 라디오도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방송이다. 누구에게나 마이크가 열려 있다. 이 날도 약속돼 있지 않던 게스트가 두 명이나 함께 했다. ⓒ 장일호

 

영화 <라디오스타>를 보신 적 있으신지. 그렇다면 영월이라는 작은 도시의 라디오의 마이크를 주민들이 직접 잡으면서 어떤 변화들이 있었는지 떠올려 보시라. 작은 도시를 활기차게 변화시키고 묶어주던 라디오의 목소리에는 글이나 영상처럼 일정한 문법을 갖추지 않아도 살아 넘치는 생기와 표정이 있었다.

 

누군가는 '뉴미디어 시대에 웬 올드미디어인 라디오 타령이냐'고 하실지 모르겠다. 안그래도 대통령이 라디오 훈화를 하는 통에 스트레스 받는다는 분들도 계실 테다. 그러나 라디오는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효과를 가져온다.

 

대통령은 올드 미디어인 라디오를 그야말로 '전달'에 치중한 고전적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공동체 라디오는 기존의 라디오보다도 더 '소통'을 중시하고 방송국의 문턱을 낮췄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게 함으로써 풀뿌리 민주주의를 다지는 데 기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공동체 라디오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는 자명하지 않을까? '야성의 꽃다방'이 더 오래 자신을 비롯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길, 그리고 우리 동네에서도 그런 '라디오 스타'들을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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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라디오#마포FM#야성의 꽃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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