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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시골 후배가 늦은 밤 시각에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많이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는 녀석이라 무척이나 반가웠습니다. 여러 가지 삶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문뜩 후배 녀석이 경험한 치유에 관한 이야기로 빠져들었습니다.

 

장남으로 태어난 후배 녀석은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동물성 사료를 먹은 적도 있다고 했습니다. 평소 아버지도 자신과 함께 텔레비전을 보다가 공부를 하지 않는다며, 갑자기 아버지가 자신을 땅바닥에 내팽개친 적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때의 분노와 적개심은 청년이 되어서도 수그러들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런 마음이 치유된 것은 아버지가 겪은 뇌출혈로 인함이었다고 했습니다. 어느 날 병상에 있던 아버지가 자신을 불러놓고 지난 날 구박했던 모든 일에 대해 용서를 청해 왔다고 합니다. 그 순간 아버지를 향한 모든 분노가 눈 녹듯 녹아들어갔고, 그때에 썼던 시 한편도 내게 즉석에서 읊조려 주었습니다.

 

사람이 상처를 치유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감상하거나 수다를 떠는 것으로 극복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박미라의 〈치유하는 글쓰기〉에서는 그 무엇보다도 자전적인 글쓰기가 상처 난 마음을 치유하고 극복하는데 제일 좋은 특효약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글쓰기는 참 탁월한 도구다. 단 한 문장으로도, 서툰 글 솜씨로도, 아무렇게나 끄적인 낙서로도 치유의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마음 치유의 방법은 아주 다양한데, 글쓰기 안에 그 모든 게 들어 있다."(책머리에)

 

그렇다고 치유하는 글쓰기에 뭔가 남다른 비법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나 자신의 문제를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 조금 먼발치에서 거리를 둬 보는 것, 그 문제를 직접 직면하거나 명료화 하여 써 보는 것, 그것을 인터넷 동호회와 같은 곳에서 서로 나누고 격려하고, 급기야 사랑하고 수용하는 방법 등 여러 갈래의 오솔길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명문장이거나 화려한 수사를 동원하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논리적으로 짝 들어맞거나 앞뒤 문맥이 일치해야 하는 것도 아님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유명한 소설가가 인기를 끄는 비결이 독자들과 흡족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있듯이, 치유하는 글쓰기도 그저 누군가의 삶에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족할 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자신의 아픈 상처를 누군가에게 알렸을 때, 다른 사람이 그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공감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몫이 될 것입니다. 이른바 그 사람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품는 일입니다. 만약 그것이 없다면 그 누구도 자신의 아픈 비밀을 털어 놓으려 하지 않을 것이요, 좀체 치유하는 글쓰기란 쉽지 않는 일이 될 것입니다.

 

만약 치유하는 글쓰기가 막막할 것 같으면 책 속에 들어 있는 내용을 따라 하는 것도 좋은 처방이 될 것 같습니다. ‘버스명상’이라는 코너에서는 자신이 버스 운전사가 되어 버스를 몰고 가는 상황을 글로 쓰는 일인데, 그것으로서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점검할 수 있다고 합니다. ‘내 인생의 집 한 채’라는 부분에서는 나만의 안식처를 글로 써서 힘들고 고달플 때면 그곳에서 삶의 에너지를 찾을 수도 있다고 알려줍니다.

 

이쯤 해서 첫머리에서 밝힌 후배 녀석의 '울 아버지는 나에게 늘 흐르는 눈물입니다'라는 시를 소개하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당연히 후배 녀석의 허락을 받아서 옮겨 적습니다. 나도 이 시를 읽는 동안 지난 날 이른 나이에 하늘로 간 아버지가 그립고 서러워, 목 놓아 울 정도였으니 다른 이들에게도 치유하는 힘을 북돋지 않을까 싶습니다.

 

울 아버지는 나에게 늘 흐르는 눈물입니다.

                                                                                                            

최규성

 

연약한 아들 하나 낳아서 세상에서 제일 잘난 아들처럼 생각하시는

우리 아버지가 그 눈물입니다.

못난 아들 반에서 꼴등 해 가슴 아파 푸념석인 말투로

농사짓자 하시더니 오늘은 또 돈을 보내십니다.

그래서 울 아버지는 내게 늘 흐르는 눈물입니다.

 

아들 녀석 세상에서 출세하라 했더니

주의 종 된다고 신학대학 시험 보더니 덜커덕 떨어져 화내시려다

못난 아들 기죽을까봐 오늘도 눈물 삼키시더니

아파서 병이 나 수술하셨습니다.

그래서 울 아버지는 내게 흐르는 눈물입니다.

 

울 아버지 뇌수술로 큰 병원에 입원하시더니 의사가 죽는다 엄포를 놓습니다.

울 아버지 수술실 들어가는 것 보고 아빠 손 잡았더니

걱정하지 마라 아들아 아무 일 없다, 울지 말라 하십니다.

울 아버지 바보같이 아픈 건 아버지신데...,

내 걱정하는 것이 가슴 아파서 하늘보고 땅보고 눈물 흘립니다.

그래서 울 아버지는 제게 늘 흐르는 눈물입니다.

 

울 아버지 머리숱 많다 하시더니

못난 아들 고민하다가 머릿속이 훤히 보입니다.

검은 머리보다 흰 머리수가 늘어가는 아버지 뒷모습 보며

오늘도 눈물이 가슴에 메아리칩니다.

그래서 울 아버지는 내게 늘 흐르는 눈물입니다.

 

언제 집에 갔더니

다 떨어진 내복 입고, 울 아버지 텔레비전 보십니다.

며칠 쉬었다 가려는데 옷 사 입으라고 돈 주십니다.

그 돈 받고 떨어진 내복 입고 계신 울 아버지 생각나 눈물이 핑 돌아

아빠 등지고 하늘 바라보고 눈물 흘립니다.

그래서 울 아버지는 내게 늘 흐르는 눈물입니다.

 

이번에 또 대학원에 편입시험 봐서 떨어졌더니

두말 안하시고 노력하라며 한숨을 내쉽니다.

울 아버지 생각에 가슴 아파서 오늘도 눈물 흘렸습니다.

그래서 울 아버지는 내게 늘 흐르는 눈물입니다.

 

이래저래 못난 아들 기죽지 마라고 본인이 두 배로 일하시더니

그런 돈 내게 부치시고 밥 굶지 말라 하십니다.

서른 다 된 내 나이에 부모님께 효도 못하고

밤늦게 들어와 주무시고 새벽에 나가 일하시는

부모님 피 빨아서 학교 다니는 것 같아

글 쓰는 이 밤 하나님 알고 나만 알게 불 꺼진 천장 바라보고 눈물 흘립니다.

그래서 울 아버지는 내게 늘 흐르는 눈물입니다.

 

못난 아들, 하지만 울 아버지의 희망 규성이가...


치유하는 글쓰기 - 발설하라, 꿈틀대는 내면을, 가감 없이

박미라 지음, 한겨레출판(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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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을 위한 '글쓰기 수프'

태그:#치유하는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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