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유산은 전라북도 무주와 장수, 경상남도 거창과 함양군 등 2개도 4개 군에 걸쳐 솟아 있는 산입니다. 13개의 대, 10여개의 못, 20개의 폭포 등 기암절벽과 여울들이 굽이굽이 이어진 덕유산은 오대산과 더불어 1975년 국내 10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명산 중에 명산입니다.
구천동 계곡은 예로부터 선인들이 이름 붙인 33경으로 덕유산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며 해발 1614m의 향적봉을 정상으로 하여 백두대간의 한 줄기를 이루고 있다 합니다. 향적봉을 중심으로 1300m안팎의 장중한 능선이 남서쪽으로 장장 30여km를 달리고 있으며 그 가운데 덕유산 주봉을 비롯해서 동쪽에는 지봉, 북쪽에는 칠봉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덕유산은 덕이 많은 너그러운 모산이라 해서 덕유산이란 이름이 붙었다고도 합니다.
덕유산의 비경을 바라보며 호연지기를 길렀을 많은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 절경을 가슴에 안아보고자 11월 마지막 휴일인 30일 남편과 함께 향적봉을 향해 출발합니다. 멀리서 보이는 덕유산이 하얗게 눈에 덮여 장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겨울 산행을 한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체력이 따라줘야 하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시간 절약도 할겸 무주리조트에 있는 곤돌라를 이용해서 설천봉에 도착해보니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 있습니다. 눈꽃 나라입니다. 며칠 전 내린 눈이 밤새 바람에 날려 나뭇가지위에 내려 앉아 눈꽃이 피었습니다.
환상적인 눈꽃에 반해 한참을 바라봅니다. 한국의 특산종으로 빙하기의 역사를 간직한 화석나무라는 구상나무의 눈꽃을 보기위해 향적봉과 중봉 사이를 향해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런데 이 구상나무가 최근 기온 상승으로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해 안타깝기만 합니다. 한라산 덕유산 정상 주위에서만 살아 남아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구상나무에도 눈꽃이 피었습니다.
아! 환상적입니다. 어떤 미사여구를 사용한다 해도 다 표현할 수 없어 말문이 막힙니다. 사진을 하는 사람들은 상고대라 표현하며 상고대를 만나는 날은 대박이라며 좋아합니다. 이렇게 멋진 상고대를 처음 보는 저는 자연의 아름다움 앞에 숙연해 질뿐입니다. 설천봉에서 잠시 머무른 뒤 향적봉을 향해 떠납니다.
다음날 아름다운 운해를 만나기 위해 향적봉 대피소에 예약을 해놓은 터라 숙소로 향합니다. 사전 준비 없이 평상시 신고 다니던 운동화로 오른 사람들이 향적봉을 구경하고 내려오며 수북이 쌓인 눈길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어도 마냥 신이 나는지 깔깔 거립니다.
눈꽃의 세계에 빠져 걷다보니 오를 때는 힘들이지 않고 올라가지만 안전 장비 없이 내려온다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닙니다. 아이들 또한 옷을 입은 채 미끄럼을 타며 내려옵니다. 향적봉의 설경을 감상하고 대피소를 들러 짐을 풀고 구상나무의 눈꽃을 찍기 위해 완전무장하고 나섭니다.
구상나무와 노린재나무, 청시닥나무, 주목나무, 고로쇠나무 등 갖가지 나무 위에도 눈꽃이 피었습니다. 뉘엿뉘엿 지는 해와 함께 구상나무 위에 쌓인 설경이 눈이 부십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만들 수 없는, 자연을 창조하신 신만이 할 수 있는 경이로운 조화입니다. 절경에 빠져 있다 보면 추위쯤이야 아랑곳 하지 않습니다.
어둑어둑해지자 숙소로 돌아갑니다. 숙소에는 다른 일행이 도착해 있습니다. 대전에서 오셨다는 자영업을 하신다는 유정렬(40)씨는 저처럼 덕유산을 사진을 찍기 위해 처음 찾았다 합니다. 이번이 7번째로 서울에서 오신 홍순표(47)씨는 올 때마다 다른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해 자주 찾게 된다 합니다. 두 분은 사진을 취미 생활로 하는 분들입니다.
한 분은 산을 좋아해서 시간만 나면 산을 찾는다는 익산에서 오신 정영길(59)씨 그리고 저와 남편 모두 5명이 한 장소에서 합숙을 하게 되었답니다. 물론 여성 전용칸이 있긴 합니다. 이런 장소에서 처음 숙박을 하게 된 저는 모든 것이 신기했습니다.
40명이 정원인 이곳은 주말이면 20~30분 안에 예약이 끝나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기가 힘든데 오늘은 일요일이라서 예약 없이도 잘 수 있다며 8년째 대피소를 운영하고 있는 주인 박봉진씨는 얘기 합니다.
이곳은 소유자가 덕유산 국립공원인데 임대를 해서 운영을 하고 있다 합니다. 대피소에서 하는 일중 가장 중요한 목적은 조난구조와 등산객들의 편의를 도와주는 일이 우선이라며 산장 주인은 말합니다. 그렇게 산장의 밤은 깊어 갑니다. 산장에서의 불편함은 물이 없기 때문에 씻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씻지 않고 잔다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환경에 잘 적응하는 것이 인간이다 보니 그런대로 참을 만합니다.
산장주인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제일이 떠올라 입가에 미소가 머뭅니다. 구상나무를 배경으로 노을을 찍기 위해 장소를 물색하던 중 멋진 구상나무를 발견하고 다가가 찍고 있는데 서슴없이 그곳으로 도착한 어떤 분이 자리를 잡습니다.
"어디서 오셨나요?" "무주에서 왔답니다." "멋있지요? 무주면 가까운 곳에서 오셨네요. 여기는 자주 오나요?""별로 멋있지 않습니다. 아 네!……. 매일 옵니다." "어떻게 매일 오실 수 있나요?" "저 아래 산장지기입니다. 허허."간단명료하게 대답 합니다. 참 무뚝뚝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보니 짐을 풀 때 만났던 분인데 추운 날씨 탓에 완전 무장을 하고 만나니 알아 볼 수가 없었던 겁니다. 무뚝뚝해 보이지만 재미있는 산장 주인입니다. 우리는 서로 웃으며 해가 지자 저는 먼저 철수하며 길 잃어버리지 말고 집 잘 찾아오세요라며 농담을 건네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그 분은 매일 볼 수 있는 풍경이기 때문에 멋지지 않아요라고 했던 겁니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옵니다.
아침이 되자 일출과 운해를 담기위해 향적봉으로 올라갑니다. 세찬 바람이 붑니다. 구름이 춤을 춥니다. 바람에 이끌려 살아 움직입니다. 장관입니다. 구름바다입니다. 너무도 아름다워 온 몸에 소름이 돋습니다. 해가 살포시 수줍은 듯 얼굴을 내밀다 이내 사라집니다. 구름에 가려 보일 듯 말듯 애간장을 태웁니다. 이내 사라지고 다시 구름바다가 나타납니다.
어찌나 아름다운지 할 말을 잃어버립니다. 추위도 잊어 버립니다. 처음 보는 운해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환상적인 아름다움에 취해 구름 위를 걸어 내려옵니다. 집으로 돌아온 지금도 그 모습이 눈에 아른거립니다.
자연은 우리들에게 행복을 주며 희열을 느끼게 합니다. 덕유산의 운해와 눈꽃을 보기위해 열 번을 올랐으니 보지 못했다는 사진동호회 회원의 말이 생각납니다. 처음 덕유산을 찾아 모든 것을 다 보여준 자연에게 감사하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