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채소의 가격폭락으로 배추재배 농가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성껏 키운 배추가 제 값을 받지 못하고, 도매상의 발길도 뜸한 때문이다. 가뭄에 시달린 남부지방과 달리 중부지방의 채소가 풍작을 이룬데다 재배면적까지 늘어 엎친 데 겹친 격이다.
생산비조차 건질 수 없게 되면서 농민들의 걱정이 커지는 것은 당연지사. 상황이 이렇다보니 헐값에 밭떼기로 넘기거나 아예 밭을 갈아엎는 농가까지 속출하고 있다.
하지만 이 파동에서 한 발짝 비켜 선 농가도 있다. 생배추 대신 절임배추를 만들어 출하하고 있는 농업인들이다. 소득도 생배추로 팔 때보다 훨씬 더 높다.
"4년 전입니다. 생배추로 출하하면 평당 3000원에서 5000원 정도 남더라고요. 그런데 절임을 하면 8000원에서 1만원까지 소득이 됐어요. 당연히 절여서 팔아야죠."‘마을 동쪽으로 바다가 보인다’고 해서 이름 붙은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동해리 양성현(45) 씨의 얘기다. "평당 1만 원 짜리 농사"가 있는데 외면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
"올해는 값이 좀 떨어졌지만 그래도 8000원 짜리 농사는 된다"는 게 그의 말이다. 작황에 따라 들쑥날쑥 하는 생배추와 달리 절임배추 값은 비교적 일정해 생산원가는 물론 안정적인 소득이 보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절임배추를 생산해 소비자와 직거래를 함으로써 부가가치도 높일 수 있다. 금상첨화다.
그의 절임배추 생산은 수확한 배추를 깨끗한 바닷물에 씻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2차로 소금 간을 한 다음 마지막에 바닷물로 염분을 조절한다. 이렇게 절인 배추는 10포기씩 비닐포장을 한 상자에 담아 출하한다.
양씨를 비롯 5농가로 이뤄진 엔터영농조합법인의 겨울배추 재배면적은 17㏊. 생산량은 30만 포기에 이른다. 모두 친환경 품질인증을 받은 것이다.
이 배추는 전량 절임을 해서 25㎏짜리 상자로 연간 3만 상자를 서울을 중심으로 전국에 보낸다. 농산물 물류회사와 농협, 아파트 부녀회 등이 주된 판매처. 특히 공간이 좁아 배추 절이기가 마땅치 않은 도시지역 아파트 소비자들의 절임배추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주문도 잇따르고 있다.
한번 주문한 고객이 다시 주문을 해오고, 그 입소문을 전해들은 소비자들이 또 주문을 해오면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는 실정이다.
소비자들도 배추가 알차고 아삭아삭해 맛있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 종암동 현대아이파크에 사는 이애자(50) 씨는 "내가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닌데 해남김치마을의 절임배추는 정말 사각사각 달고 맛있다. 상한 것 없이 튼실하고 좋았다"면서 "내가 이 정도로 만족하면 모든 사람들이 다 흡족해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남김치마을 총무를 맡고 있기도 한 양성현 씨는 "모든 소비자들의 입맛을 맞추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지만, '배추가 정말 맛있다'는 한 마디에 일하는 보람을 느끼고 있다"면서 "앞으로 기계설비를 갖춰 법인의 생산 배추는 물론 주변 농가의 것까지 모두 절여서 팔 수 있도록 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양씨가 살고 있는 해남군 북평면 동해리는 '해남김치정보화마을'로 지정돼 있다. 해남 두륜산의 정기를 안고 산과 들, 바다가 어우러진 마을로 뒷산에 수백 마리의 박쥐가 사는 동굴이 있다. 냇가에는 다슬기, 피리, 가재 등이 노닌다. 마을 앞 동해들은 드넓다. 그 너머로 꼬막과 바지락, 낙지 등이 잡히는 바다가 있다.
해남김치마을(운영위원장 추행호)에서는 이 곳에서 생산된 배추, 마늘, 고추, 파 등 농산물과 인근에서 생산되는 천일염, 젓갈, 굴 등으로 김장을 해 토굴에 보관했다가 나중에 팔고 있다.
외지인들을 대상으로 김치 담그기를 비롯 갯벌생태체험, 떡메치기, 된장 담그기, 콩 타작, 짚공예, 고구마 캐기 등 계절별로 다양한 체험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