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표차, 박빙으로 승부가 갈렸다. 95.7%의 높은 투표율, 뜨거운 선거였다. KBS노조 위원장 선거는 결과적으로 KBS가 얼마나 확연하게 분열돼 있는지, 그 골이 얼마나 깊은지를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KBS노조 위원장 선거가 이처럼 뜨거웠던 것은 이번 선거가 갖는 의미가 그 어느 때보다도 컸기 때문이다. 정연주 전 사장의 강제 해임과 이병순 사장 취임 이후 일련의 인사와 조직개편, 프로그램 개편은 KBS가 권력의 관리체제에 편입됐음을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그 과정에서 KBS노조는 침묵했다. 이병순 사장 체제와의 '공존'을 선택한 것이다.
대신 기자와 PD 직군 위주의 '사원행동'이 안간힘을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KBS노조 위원장 선거는 이병순 사장 체제의 역주행에 제동을 걸 내부 저지선을 구축할 수 있느냐 하는 점에서 특히 주목됐다.
KBS 노조, 이병순 사장 체제와 '공존' 선택
'사원행동' 측은 간발의 차이로 노조 위원장 선거에서 패배했다. 권력의 KBS 관리체제에 저항할 수 있는 내부 근거지를 구축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에서 뼈아프다.
당선된 강동구 노조위원장 후보는 현 노조 집행부의 부위원장이었다. 그 역시 사측과의 '대화'와 '협상'을 강조했다, 기존 노조의 적자임를 자임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이번 선거 결과는 KBS 노조원의 절반 가량이 사실상 이병순 사장 체제를 추인하는 정치적 선택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것은 사실상 권력의 KBS 관리 체제에 순응하겠다는 서약이나 마찬가지다. 이병순 사장 체제는 날개를 달았다. 권력은 KBS를 확실한 교두보로 챙길 수 있게 됐다.
1차 투표에서 사원행동측 후보에게 밀렸던 강동구 위원장 후보팀이 간발의 차이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상당수 노조원들이 예견되는 구조조정 상황에서 실리를 챙기는 데는 '체제'와의 불화나 대립보다는 '정치적 타협'을 할 수 있는 쪽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또 권력과의 관계 등 공영방송의 위상 같은 문제보다는 조직 내부 편가르기에 따른 사사로운 이익에 좌우된 표도 많았다.
노조 위원장과 부위원장 당선자는 한결 같이 노조의 단합을 강조했다. 선거 결과 나타난 노조의 분열상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과를 보자면 말로 치유할 수 있는 분열이 아니다. 패자 쪽에서는 신임 노조 집행부가 골 깊은 분열을 치유하려 나설 것이라는 기대 자체가 없다. KBS의 독립성과 공영성, 공정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새 노조 집행부가 얼마나 할 수 있을지조차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다. 서로 걷는 길과 방향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큰 틀에서 서로 손발 맞춰갈 공산 커
앞으로 KBS 관리체제는 '이병순-강동구 체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구조조정 등 충돌이 불가피한 사안들이 없지는 않지만 큰 틀에서는 서로 손발을 맞춰갈 공산이 크다. 상대적으로 '사원행동'은 당분간 활력을 되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상당히 기대가 컸던 이번 노조위원장 선거에서 패배함으로써 '사원행동'의 좌절감도 커 보인다. 전열을 재정비하는 것이 당장의 과제다.
변수가 있다. KBS 방송의 품질과 수준이 최근 들어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KBS 뉴스의 활력이 떨어진 것은 이미 오래됐다. 토론 프로그램과 다른 시사 프로그램들도 예전 같지 않다. 무엇보다 프로그램 편성과 내용에서 긴장감을 찾아보기 힘들다. 재미도 없다. 이병순 체제의 한계가 프로그램에서 가장 먼저 나타나고 있다. 경직된 관리체제의 부작용은 앞으로 드라마 등 프로그램 전 분야로 확산될 개연성이 크다. 한마디로 KBS 전체가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망가질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그런 고민의 하중이 KBS의 독립성과 공영방송으로서 정체성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집중될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이들은 이를 방어할 힘과 수단이 없고, 이를 저지할 방안도 현재로서는 마땅치가 않다.
KBS의 분열과 내부 갈등은 앞으로 더 격화될 개연성이 커 보인다.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일이겠지만, 아마도 '사원행동'은 이병순-강동구 체제 하에선 KBS 노조와 결별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적지 않다. 같이 가기에는 이미 너무 빗나가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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