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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형상화하다

 

.. 우리가 마땅히 써야 할 주제들을 회피하지 않고 성실한 태도로 형상화할 때 비로소 해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  《이오덕-삶ㆍ문학ㆍ교육》(종로서적,1987) 130쪽

 

 나서지 않거나 잔꾀를 부리거나 슬쩍 꽁무니를 빼거나 나 몰라라 하는 일을 가리켜 ‘회피(回避)’라고 합니다. 보기글에서는 ‘멀리하지 않고’나 ‘꺼리지 않고’나 ‘기꺼이’나 ‘스스럼없이’ 같은 말로 다듬어 주면 어떨까 싶습니다. “성실(誠實)한 태도(態度)로”는 ‘부지런히’나 ‘힘껏’이나 ‘애써서’로 풀어내 봅니다. “있을 것이라”는 “있으리라”로 손질합니다.

 

 ┌ 형상화(形象化) : 형체로는 분명히 나타나 있지 않은 것을 어떤 방법이나

 │    매체를 통하여 구체적이고 명확한 형상으로 나타냄

 │   - 황진이의 이미지는 쓰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형상화는 되지 않았고 /

 │     이별의 슬픔을 시로 형상화하다 /

 │     작가의 체험이 작품에 어느 정도 형상화되어 있느냐에 따라

 │

 ├ 성실한 태도로 형상화할 때 비로소

 │→ 부지런히 그려낼 때 비로소

 │→ 힘껏 담아낼 때 비로소

 │→ 애써서 펼쳐 보일 때 비로소

 └ …

 

 “형상으로 나타내다”, “형상이 되게 하다”를 뜻하는 ‘형상화’로군요. 여기에서 ‘형상’이란 뚜렷하게 보이는 무엇, 또는 눈으로 헤아릴 수 있는 무엇을 가리킵니다. 이리하여, ‘형상화’를 한 마디로 풀이해 본다면 “눈에 보이도록 무엇을 한다”나 “눈에 보이는 무엇이 되도록 한다”입니다.

 

 ┌ 황진이의 이미지는 쓰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형상화는 되지 않았고

 │→ 황진이 느낌은 쓰려고 하면 할수록 제대로 그려지지 않았고

 │→ 황진이 모습은 쓰려고 하면 할수록 제대로 나타나지 않았고

 ├ 이별의 슬픔을 시로 형상화하다

 │→ 헤어지는 슬픔을 시로 그려내다

 │→ 헤어지는 슬픔을 시로 담아내다

 │→ 헤어지는 슬픔을 시로 써내다

 ├ 작가의 체험이 작품에 어느 정도 형상화되어 있느냐에

 │→ 글쓴이 체험이 작품에 어느 만큼 담기느냐에

 │→ 글쓴이 삶이 작품에 어느 만큼 녹아나느냐에

 │→ 글쓴이가 자기 삶을 작품에 어느 만큼 실어내느냐에

 └ …

 

 뚜렷이 보이지 않는 무엇을 뚜렷하게 보고 싶을 때에는 ‘그린다’고 합니다. 그림을 그리듯, 눈으로 그릴 수 있게끔 한다고 합니다. ‘보여주는’ 일이고 ‘나타나’거나 ‘드러나’도록 하는 일입니다.

 

 누군가 글을 써서 나타나도록 한다면 ‘쓴다-써내다-그려내다-담아내다-녹아내다-실어내다’ 같은 낱말을 넣을 수 있습니다. 이야기 흐름에 따라서 ‘빚어내다-만들다’ 같은 낱말을 넣어도 어울립니다. 또는 ‘선보이다-이루어내다’ 같은 낱말을 넣으면서 우리 느낌과 생각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ㄴ. 요새화하다

 

.. 패전 후 일본의 재출발에 즈음해서는 오끼나와를 떼어내어 요새화함으로써 ‘평화 일본’의 출발을 축하하였던 것이다 ..  《아라사끼 모리테루/김경자 옮김-오끼나와 이야기》(역사비평사,1998) 129쪽

 

“패전(敗戰) 후(後)”는 “전쟁에 진 뒤”나 “싸움에서 지고 나서”로 다듬습니다. “일본의 재출발(再出發)에”는 “일본이 다시 일어설”이나 “일본이 다시 머리띠를 동여맬”로 손봅니다. “평화 일본의 출발을 축하(祝賀)하였던 것이다”는 “평화 일본 첫걸음을 기렸던 셈이다”로 손질해 줍니다.

 

 ┌ 요새화(要塞化) : 어떠한 적이 쳐들어와도 물리칠 수 있도록 튼튼한 요새로 꾸림

 │   - 군사 진지의 요새화 / 러시아는 새로운 진지를 요새화하였다

 ├ 요새(要塞)

 │  (1)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에 튼튼하게 만들어 놓은 방어 시설

 │  (2) 차지하거나 달하기 어렵게 되어 있는 대상이나 목표

 │

 ├ 요새화함으로써

 │→ 요새로 삼으면서

 │→ 요새로 만들면서

 └ …

 

 국어사전을 뒤적여 ‘요새’와 ‘요새화’가 무엇을 뜻하는지 찾아봅니다. ‘요새’는 “튼튼하게 만든” 방어 시설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요새화’는 “튼튼한 요새로 꾸밈”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그러면 ‘요새화’란 “튼튼한 방어 시설을 튼튼하게 꾸밈”을 뜻하는 셈입니다. 국어사전 말풀이가 이러합니다.

 

 ┌ 군사 진지의 요새화 군사 → 진지를 튼튼히 만듦

 └ 새로운 진지를 요새화하였다 → 새로운 진지를 튼튼히 꾸렸다

 

 앞뒤가 어긋난 국어사전 말풀이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짜증이 납니다. 아니, 짜증보다는 한숨이 납니다. 아니, 한숨보다도 두려움이 앞섭니다. 이와 같은 국어사전은 바로 우리들 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이 나라에서 손꼽히는 대학교에서 어깨를 으슥대는 학자님께서 만드셨는데, 이 국어사전을 보면서 낱말뜻을 살피는 아이들이 무엇을 배울까 두렵기 그지없습니다. 얄궂고 어긋난 국어사전을 보면서 ‘그러면 내가 참말 알맞고 훌륭한 국어사전을 만들어야지’ 하고 생각하며 꿈을 키우는 아이들이 있을까요. ‘그래, 우리 말은 형편없다구’ 하면서 국어사전을 내팽개치며 아무렇게나 말하고 글쓰는 아이들이 많지 않을까요. 아니, 처음부터 아예 국어사전이라곤 펼치거나 뒤적여 보는 일 없이 대충대충 살고 있지는 않을는지요.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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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외마디 한자말#우리말#우리 말#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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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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