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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반도를 일순간에 망쳐 놓은 태안기름유출사고가 벌써 일 년을 맞이하고 있다.

삶의 터전인 바다를 잃어 버리고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충남 태안군민들의 삶은 어떻게 변하고 있을까. 이번 사고의 최대 피해 지역인 충남 태안군의 어항, 포구와 해수욕장을 지난 4일 돌아봤다.

[근흥면 신진항] 강영식 선장 "출어가 곧 적자입니다"

태안군의 1종 어항으로 서해안에서 가장 큰 위판장과 어획량을 자랑하는 태안군 근흥면 신진항은 찾은 오후 1시, 사람들의 발길은 끊어지고 선원들과 상인들만이 간간이 보이는 가운데 스산한 바람만 불고 있었다.

 썰렁한 신진도 수산물 상가
썰렁한 신진도 수산물 상가 ⓒ 신문웅

서산 수협 위판장 한 구석에서 수산물을 정리하는 강만호 강영식 선장(48)를 만났다. 강씨는 "38t급 멸치잡이로 배로 8명의 선원이 이틀 동안 조업을 하고 왔지만 기름 값도 못 건지고 들어왔다"고 긴 한숨을 쉬고 있었다.

멸치잡이 배가 왜 위판장에서 복어, 물메기 등 잡어를 정리하고 있을까. 이상한 생각이 들어 물어보자, 강씨는 "이거라도 팔아야 적자가 덜 나지요"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기름사고 이후 어획량이 형편 없어졌고, 기름값은 끝없이 오르고 있지요. 여기에 지난해 보다 kg당 5000원 정도 내린 멸치 가격 때문에 아예 출어하는 순간 적자라고 봐야 맞습니다. 하지만 출어를 포기할 수는 없지요, 언젠가는 많이 잡히겠지요. 그래도 저희처럼 큰 배를 가진 사람은 먼 바다라도 조업을 하지만 맨손 어업으로 연명하던 분들은 걱정이네요."

 강영식 선장
강영식 선장 ⓒ 신문웅
그나마 이달 중순이면 사살상 휴어기에 들어가는데 걱정이라는 강씨는 씁쓸한 표정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었다.

위판장을 나와 중도매인들이 장사를 하는 수산가게로 발길을 돌렸다. 지난해 이맘때면 평일이여도 유람선을 타러 온 관광객과 횟집에 온 손님들이 필수적으로 이곳에 들러 양손에 수산물을 사가는 것이 일반화된 모습이지만, 이날은 달랐다.

기름유출사고이후 1인 시위로 유명해진 바다21 수산 최근웅씨를 만났다.

최씨는 요즘 손자 손녀 봐주는 낙으로 산단다. 지난 여름 반짝 손님과 가을철 꽃게 손님이 조금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손님의 발길이 끊긴 상태란다.

"최근 언론에 '서해안에 꽃게가 풍어'라는 기사를 보았는데, 마치 기름사고 이후에도 오히려 더 잘 잡힌 것 같은 뉘앙스로 받아들였다"는 최씨는 "사실 올해가 지난해보다 많이는 잡혔지만 최근 2년간 어획량이 최악이다가 올해가 작년보다 늘어난 것일 뿐 매출은 형편이 없다"고 말했다.

이같은 상황은 인근의 수산 가게도 마찬가지라는 것이 최씨의 말이다.

[소원면 파도리] 황토캐슬 정조영씨 "이자 감당 어려워 배를 팔려고요"

바다가 선물한 지역의 자랑인 해옥으로 유명한 소원면 파도리 해수욕장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해변에서 '황토캐슬'이라는 펜션을 운영하는 정조영(31)씨. 그가 집 앞에서는 청구서 봉투가 쌓여 있었다.

 수북한 각종고지서를 보고 있는 정조영씨
수북한 각종고지서를 보고 있는 정조영씨 ⓒ 신문웅
거실에 들어서자 정씨는 더 많은 청구서를 살펴보면서 한 숨만 쉬고 있었다. 지난주 정씨는 가족회의를 통해 어려운 결단을 했단다. 어민들에게는 꿈과 같은 배를 감척(구조조정사업) 신청하기로 결정했다.

"아버님께 죄송하지요. 평생 이루어 놓으신 배인데... 어쩔 수가 있나요. 도저히 이자 감당이 안 되는데 어떻게 합니까. 기름유출 1년이 우리 부모님과 가정에 결국 이런 결정을 하게 만드네요."

하지만 정씨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배 감척은 그리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기름유출사고이후 태안군이 2008년에 30척의 감척 예산을 세웠는데 경쟁률이 워낙 높아, 2009년도에는 최대 책정 예산을 65척으로 잡아놨다.

"현재 아버지 배 수준으로 보면 허가증까지 합쳐 8-9,000만원은 써야하지만 경쟁이 심하면 낮은 가격이라도 감척을 해야 할 실정입니다. 그래야 그나마 빚을 일부 갚아 이자 부담을 덜 수 있으니..."

정씨는 지난 2006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부인을 설득해 아파트 등 있는 재산을 다 정리해서 고향에 내려와 아버지와 공동 투자금과 2억원이 넘는 돈을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아서 2007년에 펜션을 지었다. 지난해 겨우 본격적인 펜션 운영에 들어가 단골손님들도 생기고 대기업을 통해 고정 고객까지 생기는 등 빚을 갚을 날이 멀지 않다는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7일 발생한 기름유출사고는 정씨의 희망을 절망으로 바뀌어 놓았다. 정씨는 이 마을에서 몇 안되는 젊은 사람이다. 그래서 사고이후 소원면 대책위 사무국장으로, 파도리해수욕장 번영회 총무로 지역주민들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지난해에 비해 올해는 실질적인 손님은 10% 수준으로 떨어졌고, 그나마 대기업들이 태안살리기 캠페인을 벌여 겨우 40-50%를 채울 수 있었다고 한다.

"올해와 내년은 어떻게 버텨보겠지만, 저희 또래들이 걱정하는 것은 3년 이후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겁니다. 낙향한 젊은 친구들이 다시 상경하려는 움직움을 보이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지난 9월 이후 손님을 받아보지 못했다는 정씨는 "기름유출사고가 나처럼 부모님과 고향을 지키려고 돌아온 젊은이들의 '귀향'을 잘못된 선택으로 만들었다"며 "젊은이들이 고향을 계속지킬 수 있도록 장기적인 생계 안정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씨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파도리 도로변에 펼침막이 휘날리고 있었다.

"기름으로 멍든 가슴 두 번 죽이는 송설재단은 각오해라."

가장 큰 생계의 터전을 잃어버린 파도리, 모항리 주민들의 유일한 호구책은 논농사다. 정부가 기름 피해 지역 주민들의 생계유지를 위해 지난 11월 381억원의 사업비로 농촌 용수 개발 사업을 발표해 기뻐했으나 이도 잠시, 이 땅의 소유자인 송설재단이 이 땅을 전부 매각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경작 주민 150여명은 지난주 송설재단이 있는 경북 김천시로 충남도청으로 1박2일 원정시위를 다녀왔지만 좀처럼 이견을 좁히고 못하고 있다.

[소원면 모항항] 반도회관 김성회씨 "행사를 위한 행사에 주민만 또 죽습니다"

모항항은 이번 기름피해의 직격탄을 받은 지역 가운데 최대 규모의 항구이다. 어선들과 낚시배들 50여척이 서로 엉켜 있었다. 사고 이전에 이 항구에는 횟집이 6곳, 수산가게를 겸한 횟집이 6곳 등 12곳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횟집 가운데 두 집은 아예 문을 닫았고 한 집은 횟집을 접고 수산 가게만 하고 나머지들은 수산 가게만 운영하고 있다. 문이 열려있는 반도회관을 들어섰다. 문을 열자 식당 안에는 김씨와 김씨의 어머니가 고구마를 먹으며 신문을 보고 있었다.

입구에는 5일 날 자원봉사의 날에 50%로 할인한다는 작은 펼침막이 보였다. 손님 많이 예약이 많이 되었느냐는 질문에 40명이 8천원짜리 식사를 예약했단다.

김씨는 "군에서 나온 공무원들이  50% 할인 펼침막을 붙이고 갔다"고 말했다.

지난해 같으면 주말이면 학생 아르바이트 2-3명을 쓰고 평일에도 저녁 아르바이트 만 따로 써야 장사가 되었지만 사고 이후에는 주중에는 거의 손님이 없는 실정이란다. 기자가 찾은 오후 3시까지 손님은 한 팀도 못 받았다고 한다. 보일러 기름값을 절약하기 위해 작은 난로로 추위를 견디는 김씨는 이렇게 말했다.

"기름 피해를 돕기 위한 각종 행사를 하지만 실제로는 큰 도움이 안 되지요. 행정 기관이 자신들의 실적만을 높이기 위해 참여를 독려하고 있어 마지 못해 참여는 하지만 실질적인 도움은 안 돼요. 모항항이 살아야 횟집들도 살아요. 하루 빨리 배가 출어를 해야하는데 사실상 출어도 끝나고 막막합니다. 작년에 비해 매출이 30%도 안 되니 순수익은 10%도 안 됩니다."

[만리포 해수욕장] "자원봉사대회도 규탄대회도 나가야지요"

5일 자원봉사 사은 행사가 열리는 만리포 해수욕장은 무대를 꾸미고 곳곳에 자원봉사들을 환영하는 펼침막을 펼쳐놨다. 한승수 국무총리를 환영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만리포 슈퍼에서 만난 김복자씨는 "내일 자원봉사 감사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정성껏 맞이하고 모레 열리는 규탄대회에도 참가해 우리의 요구를 전달하겠다"고 말한다.

대화 도중 손님이 들어왔다. 그러자 김씨는 "찾아주셔서 고맙고 물건까지 사주니 정말 더 고맙습니다"라고 말한다. 그 손님은 라면 5개와 작은 김치를 사고는 계산을 하려고 하자 김씨는 "젓가락도 필요하지요"라며 젓가락도 챙겨줬다.

 백리포에 위치한 한 민박 집이 썰렁하게 비어있다.
백리포에 위치한 한 민박 집이 썰렁하게 비어있다. ⓒ 신문웅

자원봉사 대회에 한창인 만리포를 지난 백리포 해수욕장에 들어섰다. 총 10가구가 사는 이곳은 고요함 그 자체였다. 민박집에 가보니 인적이 끊긴지 3-4개월은 족히 돼 보였다.

펼침막에 있는 전화로 전화를 하자 주인은 "지난해 큰 돈을 들여 고치고는 장사를 하려고 했더니 사고가 나 장사를 못했다. 본격 추위가 오기 전에 보일러에 기름이 채워서 보일러나 안 터지게 하는 게 현재로서는 최선"이라고 말했다.

[소원면 의항리] "이번 겨울나기도 어렵다"

백리포를 나와 의항리에 가니 아직도 기름 방제 작업을 펼치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의항리 해수욕장 번영회 이생규 회장은 "올 겨울 의항리에 끼니 걱정할 사람들도 많다. 방제 작업도 일주일 후면 끝나죠. 남의 굴 까는 것도 넉넉하지 않지요. 살길이 없다"고 말했다.

 태배에서 방제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태배에서 방제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 신문웅

실제로 의항리 사람들은 다른 해 같으면 자신들의 굴 밭에서 하루에 14-15만원을 벌수 있었다. 하지만 기름유출사고로 유일한 생계 수단인 굴 밭이 망가져 지난 여름에 아예 제거해 버렸다.

"그나마 지난 겨울은 늦게 나오기는 했지만 방제비용과 생계비로 근근이 살았는데, 12일 방제 작업마저 끝나면 정말 돈 나올 곳이 하나도 없습니다. 대학생을 둔 부모들은 휴학시키고 군대를 보내고.. 큰 걱정입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한숨을 쉬고 있었다. 기자가 내년에 "국립공원에서 생태계 복원 사업을 계속 한다"는 얘기를 하자 일제히 박수를 칠 정도였다. 이들에게 방재 활동은 거의 유일한 생계 수단인 셈이다.

의항리를 나와 소근리 해안도로를 들어서자 하우스에 고추를 말리는 할머니를 만났다.

"지난해 같으면 이 하우스에서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서 굴 까기에 여념이 없어야 하지만 굴 밭을 빼앗기고 이제는 고추를 말리는 신세가 되었다"며 "내 생전에 다시 굴을 까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가는 길에 한 무더기의 일회용 화장실은 일년간 자원봉사자들의 체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것 같았다.

그리고 아직도 수확 못한 고추밭에는 태안에서만 볼 수 있는 방제복을 입은 허수아비가 지나가는 이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을 뿐이었다.

 허수아비
허수아비 ⓒ 신문웅

 규탄대회 포스터
규탄대회 포스터 ⓒ 신문웅

기름 유출사고 1년을 맞아  한국자원봉사협의회와 행정안전부가 공동 주관하는 전국 자원봉사 대회가 '서해안의 기적 - 국가 재난극복과 자원봉사' 주제로 5일 오후 1시부터 태안문예회관 대강당에 한승수 국무총리와 전국의 자원 봉사자 7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어 서해안유류사고 자원봉사 감사 행사가 소원면 만리포 해수욕장에서 한승수 국무총리와 전국의 자원 봉사자 1만 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릴 예정이나  폭설과 강풍으로 행사가 취소됐다. 충남도는 이 행사를 준비하는 회사로 삼성가(家)인 CJ미디어에 선정해 지역 주민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처럼 지역 주민들의 정서와는 동떨어진 자원봉사 대회를 1주년 기념행사로 준비한 충남도의 구상에 반기를 지역 주민들은 사고 당일인 오는 7일 태안신터미널 인근에게 '삼성 및 대정부 규탄 범군민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규탄대회 준비위원회는 지난 1일부터 방송 차량 2대를 동원해 태안군 8개 읍.면을 순회하며 지역 주민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가두방송을 펼치고 있다.

태안문예회관에서는 자원봉사대회를 하고, 밖에서는 규탄 대회 참여를 독려하는 가두방송이 흘러나오는  태안읍의 모습은 지역 주민들과 정부의 현격한 시각차를 보여주는 단적인 현실이다.

가두방송을 하려 나가는 규탄대회 준비위 감한국 위원장은 "물론 태안을 살리기 위해 전국에서 달려오신 자원봉사자들에게 감사하고, 행사가 필요하다고 보지만,  자원봉사 사은 행사로 사고 1년을 마무리 하려는 것은 행정 편의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사고 1년을 맞아 향후 대책이나 사고 이후 죽음을 선택하신 분들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필요하고, 아직도 성의를 보이지 않는 삼성의 책임을 묻는 것이 기념행사보다 더 중요하다는 게 지역주민들 대부분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5일 강풍과 폭설로 자원봉사 사은 행사 모두 취소되고 자원봉사 전국대회만 진행된 가운데, 지역 주민들이 참여할  7일 열리는 범군민 규탄대회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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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기름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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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시대를 선도하는 태안신문 편집국장을 맡고 있으며 모두가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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