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엔 빗방울 흩뿌리더니 새벽엔 바람이 펄럭펄럭, 이른 아침 잔뜩 흐린 하늘에서 눈발이 흩날리더니 오후엔 햇살이 반짝하고 났다. 비온 뒤 더 추워진 날씨지만 도서관 나들이를 나선다. 내가 사는 도시에는 집에서 걸어서 한 5분 거리에 서점이 있다. 머리를 식힐 겸,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도 할 겸 서점으로 가끔 가곤 하지만 책을 들었다 놨다하며 망설이다가 그냥 놓고 올 때가 더 많다.
읽고 싶은 책을 한 아름 사서 안고 집으로 간 날이 몇 날이나 될까. 요즘같은 불황엔 더 지갑을 열지 않게 된다. 서점에서 읽고 싶은 신간도서를 발견할 땐 가끔은 소장해 두고 싶어 사기도 하지만 대부분 메모해 두었다가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깍쟁이 아닌 깍쟁이가 되었다. 이렇듯 호주머니 사정을 생각해 서점 순례만 하고 돌아올 때가 더 많다.
대도시 대형서점들처럼 많은 책들과 사람들 사이에서 서점사람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책을 읽어도 될 만큼 마음이 편치 않아 자주 가는 것도 미루어지곤 한다. 그렇잖아도 요즘같이 책이 안 팔리는 불황에 매번 서점에서 그냥 나오는 것도 멋쩍고 뒤통수가 왠지 가렵다.
이 곳에선 하루 종일 책을 본다고 눈치 볼 일 없다
하지만 시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이자 책의 보고인 도서관은 다르다. 자주 가도 좋고 또 가끔 가도 좋다. 회원증을 만들면 언제든지 원하는 책을 대여해 볼 수 있고, 도서관 마칠 때까지 도서관에서 마음껏 책을 읽는다 해도 눈치 볼 일이 없다. 가끔 종합자료실에서 책을 빌려 나가며 복도 맞은편에 있는 디지털자료실과 어린이자료실에 가 보아도 언제나 어린 학생들이 독서를 하고 있거나 디지털 자료실을 이용하는 이용객들을 보게 된다.
이 도시에 살면서 내 발길이 가장 자주 닿는 곳이 아마도 도서관이 아닌가 싶다. 대도시만큼 그렇게 많은 책들이 있지는 않지만 아쉬운 대로 다양한 책들을 접할 수 있어서 좋다. 신간도서도 자주 들어오는 편인데, 좋은 책은 발 빠른 사람들이 항상 먼저 대여해 가기 때문에 좀처럼 원하는 신간도서가 내 손에 빨리 들어오지 않는다. 예약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고, 예약자가 워낙에 많아 한참을 기다리기도 하지만 그것마저 즐겁게 기다린다.
어쨌든 책을 읽는 시민들이 많이 있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닌가. 양산도서관은 지역주민들에게 다양한 정보제공과 문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좋다. 서예와 일어, 독서치료, 토요휴업일 프로그램, 독서교실과 같은 다양한 문화교양강좌를 매회 실시한다. 또한 매월 독서왕을 몇 명씩 선정해서 상품을 주기도 한다. 지난달에 남편이 독서왕이 되었다면서 책을 빌리러 갔더니 양산도서관 이름이 새겨진 가방을 하나 선물로 주었다.
남편은 "참 이상하다. 내가 왜 독서왕이 되었을까? 당신이 더 책을 많이 빌려보는데?"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글쎄요. 지난번에 책을 한 번 늦게 갖다 준 일이 있었던 것 때문일까요?'라며 우리 두 사람은 궁금하기도 했지만 아무렴 어떠랴. 내가 즐겨 찾는 종합자료실은 여느 자료실과 다름없이 정숙한 분위기 속에서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과 책장 사이를 오가며 책을 찾는 사람들을 언제나 볼 수 있다.
자동 대출, 반납 시스템이 도입되다
양산도서관은 지난 11월 17일부터 26일까지 도서관 업그레이드를 위해 임시휴관을 하였다. 열흘이 너무 길다. 언제 다시 도서관 문을 열까 하고 손꼽아 기다리다가 다시 문을 열게 된 첫날 양산도서관으로 달려갔다. 그동안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일단 출입문 안쪽 양쪽 가에는 도난방지용인 듯 장치가 있었고, 자료 검색기 옆에 새로 들인 기기가 보였다.
RFID시스템이라나. 이 시스템은 일정한 주파수 대역을 이용해 무선 방식으로 각종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자료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도서 대출이나 반납시, 동시에 여러권 처리가 가능하다고 한다. 이 시스템을 도입해 이용자가 자유롭게 대출하고 반납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처음으로 사용해보는 대출기기는 익숙지 않아 사서의 도움을 받아서 했다.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해 첫 사용해보는 날이라 이용객들은 거의 대부분 더듬거렸고 직원은 이래저래 바쁜 모습이었다. 정숙한 분위기 속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과 책장 사이를 오가며 책을 고르는 사람들이 보였다. 한번에 3권씩 빌려갈 수 있다. 고른 책 3권을 대출기기 위에 올려놓은 뒤 화면에 있는 '대출'을 손가락으로 누르고 바코드가 잘 찍힐 수 있게 카드를 올려놓았다.
내 핸드폰 번호 뒷자리가 뭐였더라?지난번에 갔을 때 한번 이 대출 자동기기를 이용해 대출을 해보았건만, 아직 손에 익숙지 않아서 몇 번을 더듬거려야 했다. 화면에는 비밀번호를 누르라고 적혀 있었다. 비밀번호는 자신의 핸드폰번호 뒷자리였다. 갑자기 머릿속이 하얗게 비면서 핸드폰 번호가 생각나지 않았다. 뭐였더라? 옆에서는 다른 사람이 순서를 기다리는데 내 번호가 생각날 듯 말 듯 한 게 아닌가.
진땀이 났다. 천천히 앞 번호부터 생각했다. 몇 초가 지나고 겨우 생각해내서는 번호를 눌렀다. 세상에! 내 핸드폰 번호가 생각나지 않다니! 다른 사람한테 전화는 하지만 내가 내게 전화할 일은 없으니 전화번호조차 가물가물했던 모양이다. 옆에 서 있던 사람이 쿡쿡 웃기까지 해서 민망해서 혼났네. 남편이 메모한 책들까지 함께 빌려서 여섯 권을 더듬더듬 겨우 대출을 했다. 천으로 된 큰 가방 가득 든 책을 들고 집으로 오는 길은 언제나 뿌듯하다.
한동안 내 손에 들려 읽혀질 책들이다. 경기가 얼어붙어 다들 힘들어하고 있는 이때, 가까운 곳에 도서관이 있어 서점에서 맘껏 읽고 싶은 책을 다 사서 볼 수 없는 그 아쉬움을 달랠 수 있어 좋다. 나라 안팎이 불황으로 인해 움츠려 있는 만큼 서점가도 위축되어 안타깝다. 어쩔거나, 사회 안팎으로 불황을 앓고 있으니 가정 경제인들 위축될 수밖에 없고 최대한 지출을 줄이려 애쓰게 되니 자연히 지갑을 잘 열지 않게 된다.
추운 겨울만큼이나 얼어붙은 경기, 봄눈 녹듯 할 땐 언제일까. 얼어붙은 경기침체의 시절 지나 해빙의 계절이 올 때까지, 시민들이나 학생들도 가까운 도서관을 더 자주 애용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