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과 함께 산 날보다, 자식을 가슴에 묻고 지낸 세월이 근 곱절이다. 그 곱절의 시간을 어미는 거리에서 광장에서 그리고 공장에서 보냈다. 그곳에는 아들 전태일과 같은 노동자가 있었고, 아들이 몸을 불살라 가면서까지 만들고 싶었던 세상을 위해 싸우는 사람이 있었다.
아들의 꿈을 대신 이루고 싶었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어미는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어미는 1970년 11월 "근로기준법 준수하라!"는 외침을 남기고 떠난 아들을 대신해, 2008년 12월 오늘도 "비정규직 철폐하라!"고 절규하고 있다. 죽은 전태일의 외침은 어미 이소선이 역사가 됐고, 살아있는 이소선의 절규는 전태일의 꿈이었다.
아들 전태일과 함께 숨 쉰 22년보다 훨씬 긴 38년의 세월을 노동자와 함께 살았다. 그녀의 이름 앞에는 '민주화운동의 대모' '모든 노동자의 어머니'라는 칭호가 붙었다. 그리 살다보니 어느덧 그녀의 나이 80이 됐다.
이소선의 팔순, 자식 가슴에 묻고 살아온 날이 어느덧 38년
모진 세월이 아니었으면 5일 오늘, 아들 전태일과 어미 이소선은 함께 덩실덩실 춤을 추며 서로의 '장수'를 축하했을지도 모른다. 죽지 않고 살았다면 전태일의 나이가 올해 환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잔칫상은 하나만 차려졌고, 주인공은 이소선 여사뿐이었다. 5일 저녁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이소선 여사의 팔순잔치와 책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오도엽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조선 질경이 이소선>(전태일기념사업회 펴냄)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팔순 잔치는 모든 이의 평등을 꿈꿔온 그녀답게 열렸다. 귀빈을 위한 '상석' 같은 건 없었고, 이런저런 곳에서 보내온 화환도 없었다. 대신 웃음과 축하의 말, 그리고 감사의 인사가 차고 넘쳤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도 '투쟁 조끼'를 입고 한 자리를 차지했고, 외국인 노동자들도 차별 없이 여럿 참석했다. 또 학자 최장집 교수가 왔고, 성직자 함세웅 신부가 왔으며, 도지사 김문수, 국회의원 이미경, 전 장관 김근태·이재정, '킹 메이커' 안희정, 전 국회의원 심상정·노회찬이 등이 왔다. 세종문화회관 행사장은 꽉 찼고, 더러는 일어 선 채 행사를 지켜봤다.
이소선 여사는 한시도 가만히 앉아 있지 않았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이 모든 이의 손을 잡아주고, 안아주며 등을 토닥여줬다. 그러면서 웃다가 울었고, 울다가 웃었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이들, 과거 전태일과 함께 일하고 싸웠던 청계천 피복 공장 여성노동자들은 이날 곱게 한복을 입고 참석했다. 이날 행사의 안내는 이들이 맡았다.
명색이 팔순 잔치인데, <어버이 노래>가 빠질 수 없다. 7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소선 여사와 함께 싸웠던 노동자들이 무대에 올랐다. 70년대 청계천 여성노동자, 이남신 이랜드일반노조 수석부위원장, 그리고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 이들은 전태일을 대신해 무대에 올라 <어버이 노래>를 합창했다.
"비정규직이 이렇게 많은데... 팔순 잔치, 두달 동안 반대"
앞자리에 앉아 있던 이 여사는 가만히 눈을 감고 있다가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노래에 이어 이 여사가 무대에 올랐다. 마이크가 주어졌지만 잠긴 목 때문인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대신 이 여사는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합창하자"고 했다. 이번엔 고 이한열씨 모친 배은심씨, 고 박종철씨 부친 박정기씨 등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관계자들도 무대에 올랐다. 노래를 합창하는 동안 많은 이들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아무리 목이 잠겨도 팔순을 맞은 주인공의 말이 빠질 수 없었다. 다시 이 여사가 마이크를 잡았다.
"사람들이 팔순 잔치를 하자고 해서, 제가 '주책이다' 그랬어요. 비정규직이 태반이고, 경제 위기 때문에 다들 어려운데 무슨 잔치냐고. 그렇게 제가 두 달을 반대하며 싸웠어요. 그런데도 이렇게 하게 된 것은, 제가 살다보니 이제 혈압도 오르고 당뇨도 생기고 그러데요.
그렇게 내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잠시 침묵) 인사도 못하고 죽을 것 같아서... 지금까지 고마웠던 분들 손도 잡아보고, 안아도 보고, 사랑한다고 말도 하고 싶더라고요. 난 지식도 없고, 논리도 없고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데, 참 고마운 사람이 많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인사도 못하고 죽을 것 같아서... 정말 고맙습니다."
이어 당신과 똑같은 처지인 유가협 회원들에게는 특별한 마음을 전했다.
"자식을 가슴에 묻고 오랜 세월 거리에서 울고, 싸웠던 우리 유가협 선생님들, 평생 잊을 수가 없습니다. 서로 손잡고 얼굴 맞대고 여기까지 왔는데, 정말 고맙고 사랑합니다. 우리 평생토록 같이 갑시다."
이전보다 더 큰 박수가 쏟아졌다.
사실 이날 행사에는 아들 전태일이 '특별한 모습'으로 함께 했다. 행사를 주최한 쪽이 전태일과 이소선 여사가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는 작은 동상을 만들어 무대 위에 놓은 것이다. 그 앞에는 작은 상이 차려졌고 그 위에는 술을 따를 수 있는 잔과 음식을 담을 수 있는 접시가 놓여졌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단결 투쟁'이 적힌 조끼와 기름때 묻은 노동자의 장갑이 있었다. 그 작고 세심한 '센스'는 바로 모자는 끝까지 노동자와 함께 간다는 걸 상징했다.
이날 이소선 여사는 아들 전태일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이소선이 말하고 오도엽씨가 2년 동안 받아 적어 세상에 나온 책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태일이 이야기 하면 사흘을 아파 누웠다"
"이야기를 하면서 아프기도 하고 좋기도 했어. 난 태일이 이야기를 하다 보면 미쳐 버리거든. 한번 이야기를 하면 사흘을 아파서 누워 있어야 해. 그래도 했어. 지금 해야지 지금 안 하면 다 잊어 버릴 것 같아서 별난 놈한테 속도 없이 별난 말을 다 했어. 그라고 가슴이 아프니까 찬송가도 부르고 기도도 많이 했어."
아마도 이소선 여사는 오늘 같이 좋은 날, "미쳐 버릴" 정도로 가슴 아프기 싫었을 것이다. 이날 그녀는 "고맙습니다"는 말을 수없이 반복했다. 그리고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에 적은 그녀의 인사말은 이렇게 끝이 난다.
"아무튼 모든 사람들 고맙습니다. 내 말은 이것뿐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고 이 시대는 '새끼' 전태일과 더불어 '어미' 이소선을 기억해야 할 듯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