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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우협이 진짜 미워?"

 

4살짜리 손자가 먼저 묻는다. 난 대답은 하지 않고 되래 손자에게 물었다.

 

"그럼 우협이는 할머니가 진짜 미워?"

"아니. 안 미워."

 

손자가 먼저 대답을 한다. "할머니도 우협이 진짜 안 미워 많이 이뻐"라고 하면서 녀석을 끌어안아 주었다. 녀석도 못이기는 척하고 할머니 품 안에 안긴다.

 

지난주부터 이렇게 티격태격하면서 4살짜리 작은손자와 3개월 동안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큰 손자에 비해 좀 더 개구쟁이인 작은 녀석은 첫돌도 되기 전부터 어린이집을 다녀서인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 듯했다. 일치감치 독립 생활을 하는 게 좋은 점도 있지만 또 너무 일찍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부담감도 있을 터. 그런 탓인가? 작은 일에도 짜증을 잘 내고, 신경질적이고, 별일도 아닌데 울고 조르는 등 안정감이 없어 보였다.

 

하여 이번 겨울 동안에는 녀석을 내가 봐주기로 했다. 딸아이는 힘들지 않겠느냐고 걱정했지만 한번쯤은 내가 해주어야 할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금요일 오후에 데리고 가서 일요일 오후에 손자를 데리고 오기로 했다.

 

내가 둘째손자를 봐주기로 한 이유

 

그런 생각이 든 이유가 있다. 지난달에 친구아들 결혼식이 여의도에서 있었다. 그때 손자를 봐주던 친구가 손자를 데리고 결혼식장에 나타났다. 그의 딸은 초등학교 교사이다. 그날은 노는 토요일이 아니라 할 수 없이 데리고 왔다고 했다. 결혼식이 끝날 무렵 그의 딸은 친구와 손자를 데리러 결혼식장까지 왔다.

 

나도 그 자동차에 신세를 지고 그들과 동행을 하게 되었다. 그들을 보고 있잖니 딸아이한테 정말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저 딸은 엄마(친구)가 아이를 봐주니깐 마음 놓고 직장생활을 할 수 있으니 참 좋겠다'는 생각이 한동안 지워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친정엄마가 손자들을 안 봐주고 자신의 생활을 자유롭게 한다고 해서 마음이 편한 것은 절대 아닌 것이 사실이다. 항상 딸과 손자에게 빚을 진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마음이 떠나지 않고 있는데 딸아이가 그런 제의를 해온 것이다. 또 딸아이가 그런 부탁을 내게 해온 것은 내가 그런 부탁을 들어주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여 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러자. 기한이 없이 봐줘야 한다면 나도 미리 지치겠지만 3개월이니깐 한번 해보자"고 결정을 하게 되었다. 또 한 가지, 그동안 딸과 사위도 많이 힘들고 지쳤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마음 놓고 휴식 한 번 즐기지 못하고 아이들과 늘 피곤한 시간을 지내왔으니 잠시라도 그 애들에게 편한 휴식의 시간을 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11월 30일 작은 손자가 보따리 싸들고 우리집에 입성하다

 

11월30일, 녀석은 그동안 다니던 '어린이스포츠단'을 그만 두고  짐을 싸들고 우리 집에 왔다. 녀석에게 그런 안식의 시간을 주게 된 데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한 몫을 했다. 아이는 우리 집에 왔다 갈 적마다 "할머니도 빨리 엄마 차에 타~~ 얼른" 아니면 "나 할머니 집에서 자고 갈 거야. 엄마 혼자 가"라며 울고불고 하기가 일쑤였다.

 

그래서인가. 제 엄마가 작은 손자를 우리 집에 데리고 오자 녀석은 "엄마 빨리 일하러 가"라며 등을 떠밀다시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곤 제 엄마가 가는 것을 본 체 만 체 했었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제 엄마가 가고 본격적으로 우리 집 생활이 시작되었다. 일단 남편과 아들에게 우협이가 무엇을 해도 야단치지 말고, 원하는 것은 될 수 있으면  다 해주라고 부탁을 했다.

 

다음날 손자는 일찍 일어났다. 아마도 평소 습관 때문일 것이다. 평소대로 스포츠단을 가면 늦어도 7시40분에는 일어나야 한다. 대충 씻고, 밥 먹고, 옷 입고, 집에서 8시10분에 나서야 하니 정말 바쁜 아침시간이다. 그렇게 가면 어떤 때는 '스포츠단' 문을 열지 않아 그앞에서 기다린 적도 수차례라고 한다. 습관대로 일찍 일어났지만 아침을 먹으라고 재촉하지 않고 손자가 보고 싶어 하는 TV만화 프로그램을 틀어주었다.

 

얼마 동안 조용히 보더니 "할머니 배고파 죽겠어 밥 줘!"라며 소리를 지른다. 밥을 먹여주었다. 밥을 먹여 주는 일 역시 유치원이나 제 엄마가 바빠서 그런 적이 별로 없으니 손자는 마냥 좋아하는 듯했다. 그것은 아마도 나도 이렇게 보호를 받고 있구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닐런지. 밥을 배부르게 먹고 나더니 이젠 인터넷에서 동화를 본다고 한다. 그렇게 해주었다.

 

인터넷에서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보고난 다음 다시 TV를 틀어달라고 해서 "이번에는 할머니하고 놀이터 갈까?"라고 하니 펄쩍 펄쩍 뛰면서 좋아한다. 놀이터에 가서 1시간 반 정도 놀다가 집에 들어왔다. 일치감치 저녁을 먹이고 샤워를 시켰다. 잠시 퍼즐게임을 하더니 그대로 거실에 쓰러져 아주 곤하게 잠이 들었다.

 

방에 자리를 잡아 눕혔다. 잠도 어찌나 맛있고 깊게 자던지. 아침에도 지가 자고 싶을 때까지 자라고 깨우지 않았다. 가끔씩 잠자는 손자를 확인만 했다. 아침 10시가 되니 일어나서 슬슬 거실로 나온다. 기분이 아주 좋아보였다. 난 그런 손자에게 "스포츠단 친구들 안보고 싶어? 가고 싶지?" 하고 물었다. 손자는 "아니 안 가고 할머니네 있을 거야"라고 한다. "그래 그러자"고 하곤 그날도 다른 날과 비슷하게 시간을 보냈다.

 

조금씩 변해가는 작은 손자

 

며칠을 보내는 동안 때로는 작은 실랑이도 있었다. 될 수 있으면 작은 손자가 하고 싶은 대로 놔두기는 했지만 가끔은 그럴 상황이 아닐 때도 있었다.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지를 때도 있었지만 금세 '내가 이러면 안 되지'라고 얼른 평정을 찾고는 손자를 다독거려주었다. 그런 일이 거의 매일 일어나고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작은 손자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안아주었다.

 

며칠 동안 녀석과 여러 가지 경험을 했다. 가끔 버스를 타고 손자와 가까운 곳으로 외출도 나갔다. 자전거도 태워주고, 공원 산책도 나갔다. 같이 퍼즐게임도 하며 놀았다. 양치질도 같이 하고 얼굴도 씻겨주었다. 또 좋아하는 것 중에 홍시 감을 내가 숟갈로 먹여 주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그것도 빠트리지 않고 해주었다.

 

전에는 가끔 옷에 소변도 싸고 자신도 모르게 대변도 조금씩 지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우리집에 일주일 동안 있으면서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급해서 화장실로 달려간 적은 있었지만 옷에 실례를 하지는 않은 것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서였을까. 손자가 점점 안정되고 여유로워져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짜증도 덜 내고 보채는 횟수도 차츰 줄어드는 듯했다. 우리 집에 와서 이틀째 되던 날까지 하루에 한두 번 "엄마가 보고 싶다"고 했지만 난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그 후로 손자도 더 이상 그런 소리를 하지 않았다.

 

5일(금요일)딸이 작은 손자를 데리러 왔다. 손자를 보자마자 딸아이도 "어머 얼굴도 뽀얘지고 많이 점잖아졌네"라며 변한 모습을 빨리도 알아보았다.

 

손자는 빨리 집에 가서 형아 봐야 한다면서 제 엄마를 무척 반가워한다. 녀석을 제 엄마 차에 태웠다. 다른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할머니 두 번 자고 또 올게 안~녕"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인다. 

 

아이들도 가끔은 무조건 쉬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말로는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아이의 얼굴이, 행동이 말을 대신하고 있다는 것을 어른들은 빨리 알아차려야 할 것 같다. 녀석을 보내고 집에 들어오니 빈자리가 너무 크다. 녀석의 흔적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었다.


#손자 돌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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