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미술가 박진화(1957~)의 '발밑과 말展'이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반디에서 12월 14일까지 열린다. '(내 바닥 삶인) 발밑'은 자신이 사는 처지와 환경을, '(뜻이 담긴 한 마디) 말'은 우리 삶이 마주하는 꿈과 이상을 상징한다고 한다.
작가는 1981년 홍대를 졸업, 잠시 교사를 하다가 85년부터 민중미술에 발을 내디뎠다. 그는 이런 미술을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라 시대의 요청이었다는 것이 더 맞을지 모른다. 그 때 목판화로 만든 '아리랑연작'을 보면 밧줄에 감긴 사람의 목이 보기에도 섬뜩하다. 이에 항의하는 몸짓에도 전투신명이 넘친다.
90년대에 사회가 민주화가 되면서 이에 회의를 느껴 죽을 것 같이 고민한다. 그러다 고향인 전남 장흥에 내려가 돌파구를 찾으려 했으나 여의치 않자 다시 상경, 15년 전부터는 한반도 수난사의 현장이자 개화기 최후방어선이었던 강화도 북쪽 철책근처에 터를 잡는다. 거기서 분단의 상징인 철책을 바라보며 통일과 상생을 주제로 작품을 해왔다. 그래서 '민통선 작가'라고 불리기도 한다.
작가는 2006년에 출간된 작품도록 <붓의 이행-박진화(1985-2006)>서문에서 "붓을 통한 삶은 그래서 폭넓고 무섭다. 이 때문에라도 나는 내 붓이어야 하며 또 내 붓은 나여야 한다. 이건 각오가 아니라 당위이다. 마치 나무처럼 파도처럼 철책처럼… 젓갈과 밤처럼 그리고 당신처럼"이라고 속내를 터놓는다. 그림은 이렇게 작가의 분신이고 또한 목숨을 걸고 할 만한 대상인 것이다.
미술평론가 박응주는 그에 대해서 "그는 역사를 잘 망각하는 우리시대에 하위텍스트다. 그는 기꺼이 자신을 물화의 제물로 바치면서 자신을 지우고 있다"라고 평했다. 오직 몸으로 그림을 그리는 그의 등식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강한 원색과 입체적 표현주의로 화폭을 불태우다
우선 '서편'을 보면 붓질은 휘갈기듯 거침없고 화폭은 황적청의 강한 원색으로 불탄다. 표현주의와 입체파의 기법이 뒤섞여 있다. 그가 추구하는 작품세계에서 입체파를 열어 서양현대미술의 아버지가 된 세잔의 영향이 그에게 그리도 컸단 말인가.
그리고 표현주의 뭉크처럼 얼굴·눈·코·입 등을 적당히 뭉개져 있다. 마치 작가자신이 경험한 내적 고통을 뭉개버린 것 같다. 그 효과는 의외로 크다. 삶의 고단함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열렬히 사랑하는 자의 저력을 보여준 그림이라해도 좋을 것이다.
박응주는 또 그의 춤 연작을 보고 "기뻐서 추는 춤이 아니라 미친 세월을 자축하며 눈물마저 삼키는 춤"이라고 했지만 여기 서로 얼굴을 맞대고 절규하듯 서있는 사람들의 유토피아에 대한 갈망은 너무나 강력하다. 작가는 이를 진청색 코발트블루로 화폭에 담았다.
'나무에 기대서다'는 10년 전부터 작가가 그려온 연작이다. 여기 군상들은 삶과 일상에서 부딪치는 실패와 좌절, 번민과 갈등을 딛고 일어선 자의 모습이다. 그런 무게와 압박이 클수록 표정은 더 의연해지고 이를 극복할 의지는 더 커 보인다. 그의 이런 독특한 화풍은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나무에 기댄 그림'이라고 평하기도 했는데 나무가 안 들어간 작품이 드물다. 사람들 마음에 안식을 주는 나무는 예로부터 신목(神木)이라 칭하며 우리나라 사람들은 신성시하지 않았던가. 작가도 삶에 지친 사람들을 위로하듯 그런 소재에서 살다보면 그가 소중히 여기는 '연민(憐憫)의 정'을 진하게 우려낸다.
무언 속에서도 소통되는 이심전심의 세계
나무들의 모여 이룬 숲이 나타나고 그 속에 누드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비너스를 연상시키는 숲의 요정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한가운데를 수호신처럼 버티고 서서 숲을 지켜줌으로써 이 공간에 활기를 주고 나무의 그윽한 향기를 멀리까지 퍼지게 한다. 화가의 사회적 몫은 바로 숲의 요정과 같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여간 요정과 나무들은 이심전심의 세계라고 할까. 서로 무언의 밀어를 주고받으며 그 무엇과도 비교가 안 되는 높은 경지의 소통을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하긴 철책을 매일 눈앞에 보며 '불통'을 절감하는 작가로서 이렇게 자연과 인간의 원활한 소통을 작품의 소재로 삼는 것은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럽지 않은가.
드디어 '밤의 알림'을 전하는 전령사가 나타나고 축제는 그 열기를 더하고 분위기가 고조되어 금세 시끌벅적해진다. 천사의 날개를 단것 같은 그림 속의 주인공들은 움츠렸던 어깨도 활짝 편다. 낮에 잠들었던 밤의 정령도 깨어나고 새벽의 전조를 예고하며 주변의 모든 것을 다시 살아나게 한다.
여긴 앞의 푸른 색조와 달리 붉은 색조다. 그래선지 분위기가 더 뜨겁다. 혁명과 낭만의 기조마저 느껴진다. 불타다 못해 미쳐가는 색 같다. 사람들이 거침없이 이곳저곳을 분주하게 누빈다. 저마다의 상처를 부여안고 있으나 그마저 잊은 채 이를 노을처럼 붉게 태우며 몸과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 같다.
개인적 자아와 사회적 자아를 통합한 자화상
이 작가는 고흐처럼 자화상을 즐긴다. 그의 얼굴에 눈과 입이 없지만 그 어떤 자화상보다 강렬하다. 그림을 그리는 구도자로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내면의 번민과 갈등을 다스리는 것 같다. 시대의 정신도 훤히 꿰뚫어보면서 분열된 자아를 넘어 보다 통합된 자아로 나가려는 모습으로 보인다.
흔히들 남을 사랑하려면 먼저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없으면 남을 사랑할 수 없고 자신의 지혜와 재능을 발휘할 수 없고 그림을 그릴 수도 없다. 작가는 이런 자화상을 그림으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며 내적 성숙을 다지는 시간으로 활용하는지 모른다.
여기 자화상은 개인적 자아를 넘어 사회적 자아로 더 진일보한 것 같다. 자화상이라는 용어 대신 '자상(自像)'이라는 말을 쓰는 점도 흥미롭다. 시대의 터부와 역사의 어둠을 뚫고 동서와 남북의 모든 이들을 함께 품는 대승적 자아를 보이는 것 같다.
붓다처럼 가부좌를 틀은 이 자상은 한 사람이 아니고 여럿인 듯싶다. 그 앞에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철책이 놓여있다. '통일'과 '공존'라는 화두를 코앞에 둔 셈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한반도가 온전할 수 없음을 이 작가는 누구보다 잘 안다.
이 문제에 대해선 미술평론가 정승보와 나눈 인터뷰에서 더 확연하게 드러난다.
"제 작업실은 철책선 바로 앞에 있어요. 그래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분단'이나 '상생'이 제 화두가 되지요. 물론 제가 일상이나 개인의 내면을 등한시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여전히 분단 속에 살고 있다 보니 작가로서의 몫이 남아있는 것이죠"
일상의 고단함을 삶의 환희로 바꾸는 그림
이제 '모두 바다로 오세요'를 끝으로 그의 이야기를 마무리하자. 모두 바닷가에 모여 2년 전에 그린 '난장-별꽃'과 같은 축제를 벌이자는 것인가. 작가가 자란 곳이 바다니 이곳은 고향이자 이상향이리라. 여기 바닷가에 앉아있는 익명의 군상들은 삶의 축제주의자들로 고통의 바다에서도 삶의 환희를 건져내려는 사람들 같다.
그는 이제 80년대의 아픔과 90년대의 갈등을 넘어 2000년대의 후천개벽을 꿈꾼다. 출렁이는 바다의 마음을 품고 모든 이를 융합하는 그런 꿈자리, 별꽃자리를 만들고 싶은가보다. 그의 환상적 세계가 그래도 힘이 있는 건 그 밑바탕에 현실감각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하여간 그는 이렇게 근작에서 일상의 고단함(=발밑)을 삶의 환희(=말)로 바꾸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하여간 그의 근작인 '난장-별꽃'이나 '모두 바다로 오세요'를 보니 이 작가의 르네상스는 시작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이번 전이 바로 그런 발화점이 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