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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농사 대풍이란다. 잇따른 식품사고로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관심도 급증했다고 한다. 정부나 지자체가 '친환경'을 입에 올리는 일도 올해 부쩍 늘어났다. 그럼에도 농민들 얼굴에 드리워진 먹구름은 좀처럼 걷히지 않고 있다.

핵심은 역시 '가격'이고 그래서 유통 문제다. 생산자나 소비자 모두 '제값'에 가까워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현실에서는 다반사로 일어난다. 지난 일요일(7일),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중계점을 방문한 것도 그래서다. '문제 현장'이어서가 아니라, 주목할만한 '사례'가 숨어있기 때문이었다.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중계점… '아무래도 가격 그리고 때깔'

 지난 7일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중계점 친환경농산물 매장
지난 7일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중계점 친환경농산물 매장 ⓒ 이정환

저녁 찬거리를 사러 나온 주부들이 많은 오후 4시, 친환경농산물 매장 앞은 다소 한산했다. 불황 때문인지, '눈요기'에 머무르는 일도 잦다. 인근 아파트에 산다는 주부 정아무개(여·46)씨에게 이유를 물었다. 먼저 "아무래도 비싸니까"란 답이 돌아왔다. "벌레 먹은 자국이 있으면 아무래도 구입을 망설이게 된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이와 함께 "친환경농산물이라고 무조건 믿을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말도 했다. 주부 김아무개(여·43)씨도 비슷한 말을 했다. "친환경농산물도 믿지 못한다는 식의 방송보도를 본 적이 있는데, 그 다음부터는 신뢰도가 떨어지게 되더라"는 이야기였다. 그만큼 '가격'은 더 커 보이게 마련이다.

주부 김미영(여·40)에게도 1순위는 '가격'인 듯 했다. 다만 그는 "친환경농산물이라면 벌레 먹은 구멍이 있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것 아니냐"면서 "친환경 마크 등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구입하는 편"이라고 했다. 적어도 '때깔'이 '2순위'는 아니란 대답이다.

"양평 친환경농산물 20∼30% 저렴"… 변수는 양평지방공사

 양평지방공사의 산지유통센터 전경
양평지방공사의 산지유통센터 전경 ⓒ 이정환

이제 왜 주목할만한 '사례'인지 이야기할 차례다.

하나, 이곳에서 팔리는 친환경농산물은 싸다. 지역 단위 친환경농업 특구로는 전국에서 유일한 경기도 양평군이 바로 '산지'다. 홈플러스 직원 박경옥(여·48)씨는 "품질 등 다른 건 몰라도 가격이 20∼30% 정도 싼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매장을 순회하는 직원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고 운을 뗐다.

박씨는 이어 "올해 10월부터 양평군 친환경농산물을 팔기 시작했는데, 기존 거래처보다 가격이 많이 낮아졌다"면서 "그전에는 한 망에 2,980원이던 양파가 지금은 1,908원, 한 봉지에 1,980원하던 쌈채류도 1,480원에 팔고 있다"고 소개했다. "친환경농산물은 비싸다는 생각에 소비자들이 이런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아쉬움'도 덧붙였다.

둘, 이렇듯 저렴한 가격의 비밀은 사실 단순하다. 유통단계가 3단계, 농민-양평지방공사-홈플러스, 딱 그 뿐이다. 중간도매상, 도매시장, 이런 '그림'이 없다. 양평지방공사는 유통센터 역할을 하는 양평군 공기업. 현재 160여 개에 이르는 친환경농산물 및 가공품을 유통하고 있으며, 올해 110억 원 정도 매출을 달성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헌데 약하다. '양평지방공사가 뭘 하는 곳이냐'는 궁금증에 대한 답으로는 영 재미없고 '불친절'하다. 매장에 있는 양평군 친환경농산물 '하나'를 찍었다. 생산자는 양평군 농민 이명석씨, 유기농산물 스티커에 있는 주소 및 전화번호가 또렷하니 '역추적' 단서 또한 확실했다. 홈플러스 중계점에서 양평지방공사로, 거기서 다시 이명석 농민으로, 거꾸로 거슬러 가보기로 했다.

[4단계 :  물류] 입고부터 매장까지 '16시간 사이클'

 상차중인 물류팀
상차중인 물류팀 ⓒ 이정환
'역추적 4단계'에 걸린 시간은 생각보다 짧았다. 청량리역에서 양평역까지 기차를 타고 46분, 다시 택시를 타고 이동한 시간 10분. 1시간 만에 양평지방공사에 도착했다. 여기에서 이명석씨가 생산한 농산물이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중계점에 가기까지 거치는 곳은 홈플러스 물류기지 뿐이다.

이른바 '16시간 사이클'이란 말이 실감났다. "늦어도 오후 6시까지 입고를 마치고, 아침까지 각 매장이나 학교식당에 하차시켜, 오전에 장을 보는 주부들이 점심시간에 양평 농산물로 조리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황규남(남·41) 영업팀장의 설명이었다.

현재까지 양평지방공사가 '뚫은' 거래처는 모두 562개소. 이중에는 학교급식 거래처도 361개교나 된다. 서울은 물론 강원, 충청, 제주 지역까지 분포하고 있다. 이들 거래처와 '16시간 사이클'로 소통하는 첨병은 물론 물류팀이다. 관내 농민과 '고객'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숨가쁘게 입고와 출고를 반복한다.

마침 지게차 운전대를 잡고 있던 오광석(30·남) 물류팀장은 "저희 부모님도 양평에서 농사를 짓고 있어, 상차나 하차에 좀 더 신경이 쓰이기 마련"이라며 "적재를 잘못해 무게에 눌려 농산물이 망가지는 일이 없도록 세밀하게 분류한다"고 했다. 내 고장 농산물에 대한 책임감이 엿보이는 말이다. 현재 양평지방공사 임직원은 70명. 대부분 '양평군민'들이다.

[3단계 : 보관·포장] 깻잎 10장 중 3장 폐기… 아깝다, 아까워

 양평지방공사 입출고실, 분류 및 포장 작업이 진행중이다
양평지방공사 입출고실, 분류 및 포장 작업이 진행중이다 ⓒ 이정환

다음은 창고를 돌아봤다. 창고 한 두 개 정도면 되는 줄 알았는데, 몰라도 한참 모르는 '서울 촌놈' 생각이었다. 현재 양평지방공사에는 출하대기창고, 사과 등을 보관하는 과채류 저온창고, 양파나 당근 등을 넣는 근채류 저온창고, 차압 예냉실 등 7개 창고를 가동하고 있다. 이명석씨의 '모듬쌈'은 출하 시점에 따라 엽채류 저온 창고에 보관한다.

"사실 엄청 예민한 것이 농작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창고 보관을 담당하고 있는 박영근(26·남)씨는 "특유의 가스를 내뿜는 사과나 양배추 등과 다른 농산물을 함께 보관할 경우, 숨이 죽어 변색되거나 선도가 빨리 떨어지는 등 다른 작물을 망가뜨릴 수 있다"면서 "주부들이 냉장고에 있는 다른 과일들과 사과를 격리 수용하는 것과 같은 연유"라고 설명했다.

창고를 돌아보고는 먼저 '바람'을 맞아야 했다. '입출고장'에 들어가려면 '에어샤워 클린룸'을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입고 농산물을 분류·폐기하고 포장해서 '바깥'에 내놓는 일이 이뤄지는 곳이다. 입출고장에 들어서자 깻잎 냄새가 코끝에서 진동한다. 위생 복장을 갖춘 직원들이 한참 깻잎을 포장하고 있다.

그리고 버린다. 열 장이면 세 장 정도 '폐기 처리'다. 어렴풋하게나마 친환경농사 짓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다. 아깝다. '그 놈의 때깔' 때문이라고 한다. 검품·생산팀 김귀자(47·여)씨는 "내 고장에서 나는 농산물이다 보니 소중함이 남다른데, 아깝기가 이루 말 할 수 없다"면서 "그냥 출고하고 싶어도 소비자 관점은 우리와 다르지 않느냐. 다 눈으로 먹지 않느냐"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2단계 :  검수·구매] "농가로부터 유통수수료 등 일체 받지 않아"

 유기농산물과 무농약농산물은 차이가 있다
유기농산물과 무농약농산물은 차이가 있다 ⓒ 이정환

이제 검수와 구매만 둘러보면 된다. 일단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농약잔류검사실'. 언뜻 납득이 가지 않았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인증을 거친 친환경농산물인데, 다시 검사를 한다? 현재 양평지방공사는 친환경인증을 취득한 농가라 하더라도, 신규 입고의 경우 자체적으로 농약 잔류 여부를 검사한다. 검수 기록을 확인하니, 특히 과일에 대한 농약 잔류 검사를 자주 실시하고 있었다.

정영구(33·남) 검품·생산팀장은 "바람을 타고 농약 성분이 과수원으로 날아올 수 있기 때문에, 사과 같은 과일은 인증 여부와 상관없이 집중적으로 검사한다"면서 "또 신규 인증 농산물의 경우 별도로 표본을 추출해 정밀검사를 실시한다"고 소개했다. "자칫 '하자'가 발생하면, 공기업으로서 그 여파가 배가되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이와 같은 '공기업'으로서의 특징은 친환경농산물을 구매할 때도 나타난다. 현재 양평지방공사는 "별도 판매대행 수수료나 유통수수료를 전혀 받지 않고 있다"고 한다. 결국 그만큼의 이익을 농가에 보장해주는 셈이다. 그 대신 유통단계를 줄여서 소비자가 보다 싸게 구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중계점을 통해 이미 확인한 바다.

보통 하루에 3∼4번 관내 농가를 방문한다는 구매팀 최영선(30·남)씨는 "안정적인 최저가를 보장해주는 것이 기본 목표"라며 "또한 시장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고 있는 만큼, 작목 전환을 권유하여 보다 많은 농가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 농가 반응은 어떨까. 이제 '농민' 이명석씨를 만날 차례다.

[1단계 : 이명석 농민] "소비자가 찾아주고 농민에게 혜택이 돌아가야 친환경"

알고 보니 이명석(54·남)씨는 양평군에서는 소문이 자자한 '친환경농민'이었다. 양평 지역에서 가장 먼저 친환경농산물을 단지 형태로 재배했고, 가축 분뇨를 자연 정화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박테리아나 미네랄 등을 비료로 사용하는 BMW 농법을 도입하여 관내에서는 최초로 무농약 인증을 받기도 했다. 그는 대뜸 하소연부터 시작했다.

"처음에 미친놈이란 소리까지 듣고 시작했는데… 갈수록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유기농산물 재배하려면 얼마나 힘든데요. 농약 성분이 0.01%라도 검출되면 안돼요. 화학비료도 쓸 수 없고, 유기농 비료 제일 좋은 거 써야죠. 그런데도 '관행농산물'과 가격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 것 같아요. 제값을 못 받는 것 같다는 말입니다. 유통업자가 이익을 많이 취하는 구조도 여전하잖아요. 풍년이면 오히려 농민들이 다 죽는 구조니… 이거, 참."

농민 위한다는 농협, 양평지방공사 사례 거울삼아야

 이명석씨는 사진 촬영을 한사코 거부했다. 대신 샐러리를 어떻게 하면 맛있게 먹을 수 있는지를 한참동안 설명해줬다
이명석씨는 사진 촬영을 한사코 거부했다. 대신 샐러리를 어떻게 하면 맛있게 먹을 수 있는지를 한참동안 설명해줬다 ⓒ 이정환

그래서 양평지방공사에 대한 소회도 남다른 듯 했다. 그는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출발한 지방공사가 수수료도 받지 않고 너무 고맙다"면서 "가격 등락폭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란 점도 높게 평가했다.

물론 아쉬움도 털어놨다. "지방공사에서 소화하는 물량이 기대치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는 것. 공사 매출 규모가 더욱 커져야 한다는 주문이다. 그래서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아무리 좋다고 해도 친환경농산물, 지금 누가 인정해요? 보기에 예쁜 것만 찾는 소비자가 많잖아요. 친환경농산물을 눈으로 먹는단 말야. '금테' 두르면 뭘 하나, 야채 먹는 벌레가 있어야 유기농이고, 좋은 거지. 지금 너도나도 친환경, 친환경 하는데… 소비자가 찾아줘야 친환경이고, 농민에게 혜택이 돌아가야 친환경이지. 그래야 농민들도 더욱 열심히 하지 않겠어요?"


서울 중계동에서 양평군 용문면까지 '역추적'한 결과, 친환경농업 발전을 위해서는 유통구조 개선 못지 않게 소비자들의 인식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모두 정부의 구체적인 노력이 필요한 대목이다. 그래야 양평지방공사의 '도전' 또한 합당한 '제값'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양평지방공사는 '생산자는 돈을 더 받고 팔고, 소비자는 더 싸게 구입할 수 있도록 하자'는 구호를 내걸고 있다. 그리고 유통단계를 줄여 소비자 가격을 낮추고, 농민에게 수수료를 받지 않는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농민을 위한다는 '농협'이 거울로 삼아야 하는 사례임이 분명하다.


#친환경#유기농#무농약#양평#공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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