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에도 '4·19민주이념 계승한다'고 돼 있잖아. 근데 그걸 데모라고 하니…. 속이 터지지."
박진관(72) 옹은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머리에 남은 흉터를 보여줬다. 1960년 4월 19일 당시 24살의 나이로 동대문 경찰서 앞에서 벌어진 시위에 참여했다 경찰이 쏜 총에 맞은 흔적이라고 했다. 총알이 빗나간데다 서울대학 병원이 가까워 많은 출혈에도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내가 교육과학기술부에서 배포한 동영상을 봤는데 건물에 불 지르고 자동차 뒤엎는 장면만 나와. 마치 폭도들이 폭동을 벌인 것처럼 해놨더라고. 이걸 아이들이 봤다면 4·19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쁜 인식만 생기지 않겠어? 그러니 울분이 안 터질 수가 있나."
12일 '4·19혁명이념 수호를 위한 궐기대회'에 참석한 박옹은 "4·19혁명 역사 왜곡하는 자를 처벌하라", "4·19폄하 배후 건국60년 기념사업위원회 해체하라" 등의 구호를 힘껏 외쳤다.
안병만 교과부 장관이 '4·19 혁명'을 '데모'로 폄하한 영상교육자료 '기적의 역사'를 만들어 배포한 것에 대해 4·19혁명 관련 단체들에게 사과하고 영상물을 모두 수거해 폐기하겠다고 했지만 파문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건국60년기념사업위원회 해체해야"
4·19민주혁명회, 4·19혁명희생자유족회, 4·19혁명공로자회 등 관련 단체들은 '4·19혁명이념 수호 4·19인 총연대'를 구성해 본격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우선 총연대는 이날 낮 12시 서울 종로구 4·19혁명기념도서관 앞에서 궐기대회를 개최하고 정부를 강력히 성토했다.
이날 대회에는 머리가 희끗한 4·19의 주역들 200여 명이 자리를 함께 했다. 이들은 가슴에 "4·19혁명 폄하는 역사의 죄악이다"라고 적힌 띠를 두른 채로 "4·19를 데모로 폄하한 건국60년기념사업위원회는 혁명 영령들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총연대는 결의문을 통해 "4·19혁명을 데모로 폄하한 사건은 장관의 사과와 영상물 폐기 약속만으로 덮을 수 없다"며 "안병만 장관의 사퇴,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대국민 사과, 영상물 제작 배포를 담당한 공무원 파면, 역사 왜곡의 배후인 건국60년기념사업위원회 해체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4·19혁명은 이 땅에 진정한 자유와 민주주의를 뿌리 내리게 한 위대한 민주선언이며 우리 역사상 최초로 민권이 승리한 민중혁명으로 세계사에 빛나는 민주주의 기념비"라며 "그런데도 정부가 이를 폄훼한 것은 반민주 권위주의 시대로 회귀하자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교과부장관 해임 제청 요구할 것"
박윤석 4·19민주혁명회 회장은 "4·19혁명은 이승만 정권의 불의와 독재에 항거한 숭고한 학생혁명이었다"며 "이를 '데모'라고 폄하한 것은 헌법 정신을 전면 부정한 모순이자 역사적 퇴보"라고 성토했다.
그는 "이미 영상을 본 학생들에게 그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라도 안병만 교과부 장관이 책임지고 사퇴해야 한다"며 "요구사항이 관철될 때까지 투쟁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총연대는 또 이른 시일 내로 국무총리실을 항의 방문하기로 했다. 이들은 총리 면담이 성사될 경우 한승수 국무총리에게 교과부 장관 해임 제청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은 의견서를 전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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