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오후 생활용품 구입을 위해 구성동에 소재한 홈플러스 천안점을 가던 김성규(39)씨는 난감한 상황에 직면했다.
지체 1급 장애인 김씨는 외출시 전동휠체어를 이용한다. 지난 10월 홈플러스 천안점을 찾았을 때 김씨는 마트 앞에 있는 육교 양측에 설치된 승강기를 이용해 홈플러스를 손쉽게 다녀갔다.
11일은 승강기가 작동되지 않았다. 승강기 문에는 "관리주체(동남구청, STS개발)가 결정되지 않아 미준공 상태인 관계로 부득이 (승강기) 운행을 중단합니다"라는 안내문만 부착되어 있었다. 승강기가 가동되지 않으면 계단만 있는 육교 이용은 김성규씨에게 불가능한 일. 사용 중단된 승강기를 원망하며 김씨는 불편을 감수한 채 수백미터 떨어진 횡단보도를 찾아야 했다.
김씨는 "멀쩡히 잘 사용하던 승강기를 이용할 수 없다니, 안내문만 보고는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교통약자 편의시설인 육교 승강기, '그림의 떡'
지난 8월 15일 홈플러스 천안점이 문을 열었다. 대지면적 9012㎡, 지하 3층, 지상 4층에 연면적 2만664㎡로 문을 연 홈플러스 천안점. 국도 1호선인 천안대로와 근접해 들어선 홈플러스 천안점이 개장하며 매장 앞 구성삼거리 인근에는 육교가 만들어졌다.
육교의 시공은 홈플러스 건축주인 (주)STS개발이 맡았다. 홈플러스 앞 국도 1호선상의 육교 설치는 건축허가 당시부터 강제된 조건이었다. STS개발은 육교 설치를 조건으로 홈플러스 매장 건설을 위한 교통영향평가와 건축물 준공을 위한 인·허가 과정을 밟았다. 시는 설치자가 육교를 관리토록 하는 조건을 달아 2007년 8월 28일 홈플러스 건축을 허가했다.
STS개발은 10억원이 넘는 돈을 들여 홈플러스 개장 후 얼마안가 육교를 완공했다. 길이 32m, 폭 4m의 육교 양측에는 계단과 함께 각각 승강기 1대씩이 설치됐다. 장애인이나 노인, 임산부 등 교통약자들은 승강기를 이용해 육교를 건너 홈플러스를 이용했다.
문제는 지난 11월 11일 STS개발이 육교의 관리권과 관련해 천안시에 문제를 제기하며 촉발됐다. 시에 접수한 민원에서 STS개발은 천안시에 육교의 무상귀속을 요청했다. 구청 개청과 함께 육교의 관리 업무는 각 구청으로 이관됐다.
동남구청 건설교통과는 11월 18일 STS개발에 회신한 공문에서 무상귀속 요청을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공문에서 동남구청 건설교통과는 "(육교)의 유지관리주체는 건축주인 STS개발로써 육교 및 승강기 유지관리를 위한 업체 등을 선정해 성실히 관리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STS개발은 수차례 제기한 무상귀속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11월말부터 육교에 설치된 승강기 두 대의 운행을 중단시켰다.
관리권 떠 넘기기에 교통약자 불편 가중
STS개발이 육교를 천안시에 무상귀속하려는 까닭은 몇 가지가 있다.
건축허가 조건의 이행으로 육교 설치는 했지만 사실상 도로에 부속된 공공시설물인 육교를 민간사업자가 계속 관리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것. 사고 발생시 책임 소재를 놓고도 논란이 빚어질 수 있다. 경비의 부담도 있다. 보통의 육교들과 달리 승강기가 두 대 설치된 홈플러스 앞 육교는 승강기 유지관리비용만 매달 30만원 정도 지출된다.
STS개발 윤성식 팀장은 "홈플러스 앞 육교는 누구나 타인의 제한 없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으므로 국가에 무상귀속되는 공공시설물로 봐야 한다"며 "홈플러스 건축 때문에 만들어진 육교라 해서 민간 사업자에게 유지와 관리 의무까지 짐 지우는 것은 무리한 처사"라고 말했다. 무상귀속 요청이 거부되자 STS개발은 무상귀속 요청이 거부되자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했다.
동남구청은 국민권익위원회의 판단을 지켜보겠다는 입장. 김진섭 동남구청 도로정비팀장은 "건축허가시 육교는 설치자가 관리토록 되어 있다"며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이 접수된만큼 결과가 나오면 처분사항을 검토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권익위원회의 판단이 늦어지거나 처분결과에 STS개발, 천안시 모두 이의를 제기할 경우 홈플러스 앞 육교의 승강기 사용 중단은 자칫 장기화 될 수도 있다. 승강기 사용이 중단되는 동안 장애인과 임산부, 어린이, 노인 등 교통약자의 불편은 불가피하다.
일각에서는 천안시의 적극적인 행정행위를 주문했다.
이명근 천안시의회 의원은 "천안시가 유지관리하고 있는 육교의 대부분에 편의시설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며 "설치된 편의시설인 승강기도 이용 못하는 환경을 천안시가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대형마트측이 육교 설치의 실질적 혜택을 누리는 만큼 홈플러스가 육교를 유지·관리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라고 밝혔다.
장애인단체의 불만은 높다. 장애인단체들은 홈플러스 건너편에 설치된 육교 승강기의 입구와 도로 사이에 안전펜스가 없는 등 정비 문제도 거론했다. 천안시장애인편의시설센터 박상희 편의시설담당은 "관리권 떠 넘기기에 교통약자의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며 "불편 해소를 위해 양측 모두 해결책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천안지역 육교, 교통약자 이용에는 '험난' 16개 육교 가운데 편의시설 설치된 육교 5개소에 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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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천안시가 시의회에 제출한 제124회 임시회 시정질문 답변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말 기준해 천안시에 소재한 육교는 동남구 8개소, 서북구 8개소 등 모두 16개소.
이들 가운데 경사로나 승강기 등 교통약자를 위한 편의시설이 설치된 육교는 일봉육교, 충무육교, 영성육교, 서부육교, 동서인도교 등 5개소에 불과하다. 승강기가 설치된 육교는 동서인도교 한 곳. 홈플러스 육교의 승강기는 자료 작성 이후에 설치됐기 때문에 포함되지 않았다. 홈플러스 육교를 빼면 전체 육교의 68.75%는 편의시설이 전혀 없는 실정.
이처럼 많은 육교에 편의시설이 없는 이유는 설치년도가 오래된 탓. 편의시설 설치가 법적으로 강제된 1997년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과 2005년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 제정 이전에는 편의시설을 갖추지 않더라도 육교 설치가 가능했다. 현재 편의시설이 부재한 육교들은 97년 이전에 만들어졌다.
편의증진법, 이동편의증진법 제정 이후에 설치된 육교도 문제를 안고 있다. 육교에 편의시설로 마련된 경사로가 형식적이어서 장애인 등 교통약자의 실제 이용은 어렵다. 시정질문 답변에서 이재당 건설도시국장은 장애인들의 이용 편의를 위해 승강기 설치 등을 검토해 보겠다고 밝혔다.
한쪽에서는 승강기 설치를 검토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설치된 승강기의 이용 활성화도 기피하는 상황. 2008년 천안시 행정의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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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천안지역 주간신문인 천안신문 507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윤평호 기자의 블로그 주소는 http://blog.naver.com/cnsi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