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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서야, 요 근래 편지를 써 본 적이 있니? 한번도 없어요. 그래? 네 얘길 듣고 보니 나도 마찬가지다. 요즘 세상은 문자메일로 대화하는 게 일상화되어 버렸어. 그러니 진득하게 앉아서 글을 쓰는 사람이 없어. 하지만 인서야. 정성이 담긴 편지를 읽으면 그 사람의 따뜻한 마음결이 오롯이 전해져 좋아. 그렇지만 선생님, 편지를 쓰는 게 쉽지 않아요.

 

근데 인서야, 생활하면서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했을 때, 정말 억울해서 얘기하고픈 게 너무나 많은데 그걸 문자메일이 다 감당할 수 있을까? 나의 온전한 마음을 다 담아낼 수 있느냐 말이야. 물론 그럴 수 있겠지. 그러나 나의 절절한 속마음을 드러내 보이는데 편지만한 게 또 없어.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이 있잖아. 그런 편지라면 그 어떤 아픔이나 슬픔도 함께 나눌 수 있을 거야. 네 생각은 어떠냐?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편지는 서로의 마음을 따뜻하게 전해주는 메신저다

 

어제 저녁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아빠가 혀를 끌끌 찼어요. 왠지 알아요. 서울 청운초등학교 6학년 4반 아이들이 지난번에 실시한 일제고사를 보지 않고 체험학습을 갔었는데 그것 때문에 담임선생님이 파면됐대요. 전 파면이 무슨 뜻인지 몰라 아빠한테 여쭈어보았더니 엄마가 그랬어요. 이제 선생님 못한대요. 그게 파면이래요. 그 반 선생님이 왜 그런 대접을 받는지 이해가 안된대요. 지난번에 보았던 일제고사 때문인가요?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제 생각에는 우리 반 시험보다 훨씬 수준이 낮았어요. 그것 때문에 야단을 피우는 거예요?

 

손피켓팅을 하고 있는 청운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 담임 선생님의 부당한 징계를 항의하는 청운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이 '파면 취소해 주세요'라 적인 손피켓을 하고 있다.
손피켓팅을 하고 있는 청운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담임 선생님의 부당한 징계를 항의하는 청운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이 '파면 취소해 주세요'라 적인 손피켓을 하고 있다. ⓒ 유성호

응, 물론 생각하기에 따라 달라. 서울시교육청 입장에서는 일제고사를 거부했다는 것만을 문제 삼았고, 선생님과 학생들, 학부모들은 일제고사에 대한 의미를 그다지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거야. 양자의 생각 차이가 커. 교육청 입장에서는 교사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책무성과 실정법을 위반했다는 것이고, 해당 교사나 학생들, 학부모 입장에서는 점수로 서열화하고 한 줄 세우기 교육을 하려는 교육당국의 처사가 불만스러웠던 거지. 나 역시도 너희가 시험을 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교육자로서 내 양심과 소신은 그게 아니었어.

 

일제고사에 대한 양자의 입장 차가 너무 커

 

어떻게 생각하면 참 비굴한 모습이지.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가려야 했음에도 난 그러지 못했다. 전국 단위 일제고사는 경우에 맞지 않은 것이지만 단지 문제 삼지 않고 싶었어. 뭐랄까. 정녕 어떤 문제이기에 그토록 전국적으로 실시하려고 하느냐는 마음이 있었어.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까 그렇게 색다른 게 없었어. 빛 좋은 개살구였다고나 할까. 그런 것쯤으로 주접을 떨게 뭐 있었느냐 싶었다.  

 

그런데 선생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동안 선생님이 알뜰하게 가르쳐 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열심히 공부했잖아요. 그리고 그 결과를 시험을 통해서 알아보는 것도 당연한 게 아닌가요. 우리 엄마아빠는 제가 시험치는 것에 무척 관심이 많아요. 점수를 많이 받거나 적게 받아도 괜찮대요. "단지 서로가 소통하는 방법이 문제야"라고 아빠가 말씀하셨어요. '소통'이란 서로 마음이 통하고 이야기가 되는 것 아닌가요? 늘 선생님이 얘기하셨잖아요. 서로 말문이 트여야 한다고.

 

"단지 서로가 소통하는 방법이 문제야"

 

그래, 인서야. 어른들이 네만도 못하구나. 서로 제 것만 옳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일이 제대로 풀릴 까닭이 없어.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고 얼굴 붉히는 것 자체가 아집이고 독선이야.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이란 뜻이다. 이번 사태 크게 잘잘못을 가릴 것 없어. 어느 한쪽도 내세워 잘한 게 없으니까. 문제는 그동안 우리 교육내용이 너무 획일적이고 경쟁을 통한 방식으로만 치달았다는 데 있어. 협동과 소통의 방식이 경쟁보다 훨씬 더 효과적인데 말이야. 우리가 사는 세상, 살아가는 데는 모두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협동하는 것이 중요한 가치야. 이거 내 말이 너무 어려웠나 보네. 미안해.

 

부당징계를 항의 하고 있는 교육시민단체 교육시민단체들이 일제고사 거부로 인하여 파면 해임 당한 교사들의 부당징계를 철화하라고 외치고 있다.
부당징계를 항의 하고 있는 교육시민단체교육시민단체들이 일제고사 거부로 인하여 파면 해임 당한 교사들의 부당징계를 철화하라고 외치고 있다. ⓒ 권우성

아니에요. 선생님, 저 그 정도는 알아들어요. 그런데 선생님, 그저께 파면된 선생님들은 이제 선생님 못해요? 그 반 아이들이 너무 속상할 것 같아요. 선생님이 가르쳐 준 사자성어 가운데 '역지사지'가 생각나네요. 서로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하면 충분하게 이해될 텐데 말예요. 이럴 땐 어른들이 바보 같아요. 이 다음에 어른이 되어도 난 그런 사람이 되지 않을 거예요. 선생님들도 국회의원들이 하는 것과 똑같아요. 서로 조금만 양보하면 안 되나요?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다시 공부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오, 과연 인서답다. 그래야지. 어느 선생님들이나 서울시교육청 분들도 다 마찬가지야. 지금 당장에는 서로 왕왕거리고 있지만 머잖아 좋게 해결될 거다. 믿어보렴. 양자 모두 올바른 교육을 하자고 하는 과정에서 생긴 일이니까 반드시 올바른 방향으로 마무리 될 거야.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번 일을 깔끔하게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안은 '좋은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난 그런 생각을 가진 쪽이라면 어느 쪽이든 환영한다. 네 말처럼 파면된 선생님들 모두 아이들 곁으로 다시 서야 한다는 것을 전제하면서 말이야.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안은 '좋은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파면 당한 정상용 교사  일제고사 문제로 파면 당한 정상용 교사가 발언하고 있다.
파면 당한 정상용 교사 일제고사 문제로 파면 당한 정상용 교사가 발언하고 있다. ⓒ 권우성

그래요. 선생님 말씀을 듣고 나니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또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좋은지 알 것 같아요. 우리 아빠 말씀처럼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사랑하는 열정이 컸고, 교육청은 교육청대로 책임이 컸던 것 같네요. 다 잘 해결되겠죠? 선생님, 저도 이만하면 선생님과 대화할 만하죠? 제가 누구 제자인데요. 헤헤헤.

 

이게 참, 내가 인서한테 용케 한방 얻어맞았구나. 그래도 기분은 좋아. 간혹 '요즘 교사들이 왜 그러느냐'는 핀잔 아닌 다그침이 있지만 난 믿어. 이번 일로 '작지만 큰 변화가 있다'고.
 
그래서 서로 욕심을 내서 빡빡하게 돌아가던 우리 교육현장이 더 좋게, 보다 원만하게 돌아갈 것이란 확신이 들어. 좀 더 지켜보자꾸나.
 
인서 네만도 못한 어른들이지만 지금껏 살아온 이력이 있으니까 반드시 좋은 방향으로 해결할 거야.

 

 

"선생님들이 서야 할 곳은 아이들 곁이 아닌가요?"

 

그리고 인서야, 이번 일로 파면 당한 아빠를 둔 네 또래아이가 <오마이뉴스>에 보낸 편지글을 읽어보렴. 너와 똑같은 생각을 얘기하고 있어. 짬나면 이번 기회에 그 친구한테 편지를 써 보는 거 어때? 얼굴도 모르는 친구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오죽하겠니? 편지를 읽으며 친구의 마음을 잘 헤아려보려무나. 인서야, 넌 특별하단다. 사랑해.       

 

저는 우리반 아이들과 1주일에 한 번은 꼭 '토론마당'을 엽니다. 이번엔 일제고사 문제로 파면 당한 교사를 주제로 잡았습니다. 미리 뽑아서 아이들 의견을 수렴한 후에 아이들 사회로 두 시간 가량 진행했습니다. 토론에서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이 기사를 썼고, 조금 첨삭을 했습니다. 여기서 '인서'는 실제 아이가 아니라 가상인물입니다.


#부당징계#파면#해임#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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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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