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6월 21일 새벽 5시, 아랍의 위성방송 알 자지라는 긴급 뉴스를 타전했다. 고 김선일씨의 이라크 무장단체 납치 소식이었다. 자국민 피랍은 남의 나라 일인 줄로만 알았던 한국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뉴스였다.
무장단체를 자극한 것은 나흘 전 발표된 대한민국 정부의 이라크 추가 파병 결정이었다. 이들은 김씨의 목숨을 담보로 한국군은 이라크를 떠나라고 요구했다. 고인이 된 김씨도 '프레지던트 노무현'을 애타게 부르며 살려달라고 울부짖었다.
하지만 국가는 처절한 호소를 외면했고 한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했다. 그로부터 3개월 후 제 나라 국민 목숨도 지키지 못한 국가는 전쟁에서 이라크인들을 살린다며 기어코 2800명의 군인을 추가로 이라크로 보냈다.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명분 없는 전쟁에 젊은이들을 사지로 몰아넣는다는 비판도 소용없었다.
그리고 4년 3개월이 흘렀다. 2008년 12월 19일 마지막으로 이라크에 보내졌던 자이툰 부대 9진 519명과 쿠웨이트에 파병된 다이만 부대 장병 102명 등 621명의 파병부대가 돌아왔다.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기 때문일까. 영하의 날씨 속 서울공항에 내린 부대원들의 얼굴은 밝았다. 어려움을 겪고 있던 이라크인들을 도왔다는 자부심도 내비쳤고 일부 장병들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데 철군하게 됐다며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재건지원대대 소속 장지용 상병은 "전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사람들을 돕고 봉사했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이라크에 있을 때는 우리나라가 그리웠는데 막상 비행기에서 내리니까 이라크가 그리워진다"고 소감을 밝혔다.
3성, 4성 장군 악수에 대통령 깜짝 출현까지
뜨거운 환영도 있었다. 사병들은 이상희 국방장관을 비롯, 군 생활 내내 한번 볼까 말까한 4성, 3성 장군 등과 악수를 하면서 환영을 받았다. 동료들은 뜨거운 포옹으로 이들을 맞이했고 재회의 기쁨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한승수 국무총리가 주관한 환영 행사에는 이명박 대통령까지 깜짝 출현해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라크 파병에 대해서도 찬사 일색이다. 한 총리는 "(자이툰 부대의 활약은) 해외파병이 대한민국의 이익과 세계 평화를 위해서 옳았다는 것을 입증해 냈다"며 "앞으로 이라크와의 경제협력에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한미 동맹 관계도 더 튼튼해졌다"고 평가했다.
언론들도 자이툰부대가 자이툰병원을 통해 현지인 8만8805명을 진료해 '신이 내린 선물'이라고 칭송받고 있는 등 30여개국 파병 부대 중 가장 모범 사례로 꼽히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쿠르드 정부 총리가 한국에 와서 자이툰 부대에 대해서 크게 칭찬하는 것을 보고 너무 자랑스러웠다"며 "(자이툰 부대의 활동은) 큰 외교적 성과"라고 칭찬했다.
하지만 명분 없는 침략 전쟁을 일으켰던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라크에서 기자회견 중 날아오는 신발을 피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미국인들도 그런 부시를 조롱하고 있다. 반면 신발을 던진 기자는 아랍권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중동 지역의 분위기는 이러한데 과연 미국과 보조를 맞춘 자이툰 부대 파병이 "해외 파병사의 한 획을 그었다"는 찬사를 서슴없이 해도 괜찮은 것일까. 아랍권 전체도 아니고, 이라크 전체도 아니고, 이라크 북쪽의 쿠르드 자치정부와의 관계를 돈독히 한 것을 놓고 파병이 옳았다고 주장해도 되는 것일까.
자이툰 활약 위안 삼기엔 '침략전쟁 일원' 오명 커
게다가 파병 찬성론자들이 주장했던 국익의 논리대로 따져보아도 이라크 파병으로 얻은 '국익'도 크지 않은 것 같다.
자이툰 부대가 이라크에 주둔하고 난 뒤 우리 정부는 테러 위협을 이유로 우리 기업인들의 이라크 내 활동을 억제해 왔다. 우리 정부가 쿠르드 자치정부와 유전개발 계획을 맺은 것도 이라크 중앙정부는 인정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라크 파병으로 한미 동맹이 돈독해졌다고 했지만 정작 군대를 보냈던 노무현 정부 시절, 이들은 한미동맹이 파탄났었다고 했다. 군대를 보냈던 정권에서 파탄났던 한미동맹이 군대를 철수하는 시점에 왜 돈독해졌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국가의 이익을 위해 명분 없는 침략전쟁에 손을 보탠 것 자체만도 비난받을 일이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현지에서 호평을 받은 자이툰 부대의 활동이다. 박선우 소장은 "무엇보다도 현지인들이 힘들 때 같이 울고, 기쁠 때 같이 웃는 마음을 함께 나눴다는 점이 무엇보다 큰 성과"라며 "'산 외에 친구가 없다'는 그들의 속담이 '산 외에 자이툰을 얻었다'는 말로 바뀌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이런 자이툰 부대의 활동은 침략전쟁의 일원이었다는 역사의 오명을 희석하는 데 약간 효과가 있을지는 몰라도 자기 나라 이익을 위해 미국과 손잡고 이라크 침략전쟁에 동참했다는 사실 자체를 가리지는 못한다.
환영받는 파병 부대원들을 보면서 4년 전 야만적인 죽음을 당한 자를 떠올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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