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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각 작품들이 있는 아담한 마당과 고풍스런 외모를 지닌 미술관
조각 작품들이 있는 아담한 마당과 고풍스런 외모를 지닌 미술관 ⓒ 김종성

공공 미술관 중 하나인 서울시립미술관은 입장료가 무료이거나 저렴한데다 의미있는 전시회를 자주해서 일반 시민들에게 팍팍한 삶에서 느끼는 예술과 문화에 대한 갈증과 욕구를 풀어주는 좋은 곳입니다.

 

그런 고마운 서울시립미술관이 시내에 세 군데나 있다고 합니다. 본관은 제가 종종 찾아 갔던 정동에 있는 미술관이고 경희궁과 사당역 부근 남현동에 분관이 있었네요.

 

이번에 제가 찾아 간 곳은 전철을 타고 사당역에 내리면 바로 앞에 닿을 수 있는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 분관입니다. 미술관이 있는 동네 이름은 남현동이고 서울의 남쪽에 있다고 해서 그렇게 이름 지은 것 같은데, 이 미술관의 외형이나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딱딱한 관공서 같은 이름이라 좀 아쉽습니다.

 

누구나 그런 아쉬운 생각을 할 만한 것이 낡고 바랜 미술관이지만 아담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마치 오래된 흑백사진속의 친구처럼 정감있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전철역에서 내려 몇 걸음을 내딛자 길가의 대로변에 숨은 듯 평범하고 자그마한 마당을 가진 범상치 않은 건물이 나타납니다. '아름다운 비상' '생명의 나무'의 이름을 가진 상상력을 자극하는 조각작품들이 마당의 잔디위에 낮게 혹은 높게 서서 손님을 반깁니다.

 

산책할 만큼 넓은 마당은 아니지만 예술작품들 앞에 멍하니 서서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자니 미술관 입구의 경비 아저씨가 저를 조각작품 보듯 쳐다보시네요. 이윽고 미술관에 들어가려하니 마당의 조각작품들만큼이나 미술관의 외관 또한 예술적입니다.

 

미술관은 2004년 개관했지만 건물은 백년이 넘은 1905년 벨기에 영사관이 그 모체라고 합니다. 지하 1층, 지상 2층의 작은 몸체를 지닌 이 미술관은 벨기에 영사관에서 일제 치하에는 일본 요코하마 보험회사의 사옥으로 일본 해군성의 관저로도 사용되기도 했고, 해방 후에는 해군 헌병대가 자리를 잡았으며 마지막으로 상업은행을 거쳐 1977년에 국가 사적으로 지정된 우리 근현대사의 역사책 같은 건물이네요.

 

서양의 건축양식은 잘 모르지만 이 미술관은 붉은 벽돌과 화강암을 재료로 지어진 르네상스식 건물이며, 입구와 건물 좌우측에 서있는 큰 돌기둥도 그리스,로마의 고전주의 양식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미술관 마당에는 '아름다운 비상'도 있고 '꿈꾸는 나무'도 있습니다.
미술관 마당에는 '아름다운 비상'도 있고 '꿈꾸는 나무'도 있습니다. ⓒ 김종성

 미술관 계단을 오르다보면 삐걱거리는 우리의 근현대사를 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미술관 계단을 오르다보면 삐걱거리는 우리의 근현대사를 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 김종성

 백년전엔 벽난로로 쓰였을 곳에 예술작품이 어우러져 있네요.
백년전엔 벽난로로 쓰였을 곳에 예술작품이 어우러져 있네요. ⓒ 김종성

마침 미술관에서는 내년 2월 15일까지 '오래된 미래 (Ancient Futures)'라는 철학적인 제목의 전시회를 하고 있네요. 부제인 "인류의 미래를 위한 길은 오직 자연이 가지고 있는 위대하고도 영원불멸한 힘을 이해하는 것뿐이다-페어필드 오스본" 도 마음에 닿는 글귀입니다.

 

입구에 들어서니 직원들이 친절하게 전시회 안내장을 나눠주며 안내를 하고 있습니다. 2층부터 감상하면서 내려오기로 하고 계단을 올라가는데 갑자기 '삐걱 삐걱' 하는 발소리가 나는게 아니겠습니까! 그러고 보니 복도부터 시작해서 계단까지 다 나무로 되어있고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발을 내디딜 때마다 삐걱대는 소리가 나네요.

 

하지만 그 소리가 왠지 불안하게 들리지 않고 오히려 고풍스럽게 다가오는 건 이곳이 오랜 역사를 가진 건물이기 때문이겠지요. 눈 내린 날 쌓인 눈을 뽀드득 뽀드득 밟으며 걷는 것과 비슷한 기분을 느끼며 복도를 지나 2층 계단을 오르자 영화에서나 보았던 샹들리에들이 천정에서 부드럽고 따듯하게 불을 밝혀줍니다.

 

나무로 된 복도와 전시장 바닥을 걷는 기분이 참 푹신하고 계단을 오를 때와는 또 다른 나무결 울리는 소리가 매우 이채롭습니다. 어떤 여성 관객은 자기 발소리에 작품 감상을 하는 다른 사람한테 방해가 될까봐 까치발로 걷던데 그 모습이 한 마리의 작은 새처럼 참 귀엽고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여기도 직원들이 상주하며 작품에 대해 부연설명도 해주고 우문을 해도 친절하게 응답해 주네요.  

 

미술관에는 과거에 다양한 용도로 썼을 열두개의 작은 방들이 전시실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것을 넓게 트지 않고 작은 방마다 각기 성격이 다른 예술작품들을 배치해 놓아 감상하기가 지겹지 않고 작은 미로를 다니는 것 같아 재미있습니다. 작품들도 각 방마다 '신기루''사라짐''공생'의 제목으로 미술에서 사진, 조각과 조형, 비디오 아트까지 다양합니다.

 

특히 지구 온난화로 바다 수면이 높아져 50년 후에는 지도상에서 사라질 운명의 투발루라는 섬에 대한 현실감 있는 비디오 아트 작품은 그 앞에서 오랜 시간 보고 생각하게 하네요.

일상에선 잘 쓰지 않는 뇌의 상상력 부위를 찌릿찌릿 하게 하는 곳입니다.

 

인간이 좀먹고 있는 지구의 오래된 미래는 어떤 세상일지 생각하게 하는 예술작품도 감상했습니다. 역사와 시간을 삐걱거리는 발소리로 느껴볼 수 있는 고풍스러운 미술관이 소중한 보물처럼 느껴집니다.

 

 '오래된 미래'를 주제로 다양한 예술작품들이 머리와 가슴을 흔듭니다.
'오래된 미래'를 주제로 다양한 예술작품들이 머리와 가슴을 흔듭니다. ⓒ 김종성

 지구 온난화로 수면이 높아져 50년후 사라진다는 '투발루'란 섬에 대한 비디오 아트작품도 독특하고 사색적입니다.
지구 온난화로 수면이 높아져 50년후 사라진다는 '투발루'란 섬에 대한 비디오 아트작품도 독특하고 사색적입니다. ⓒ 김종성

덧붙이는 글 | ㅇ 찾아가기 : 전철 2,4호선 사당역 6번 출구 앞 대로변에 위치
ㅇ 관람시간 : (평일) 오전10시 ~ 오후8시  (주말, 공휴일) 오전10시 ~ 오후6시 
ㅇ 매주 월요일 휴무  
ㅇ 관람요금 무료


#서울시립미술관#남서울분관#사당역#남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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