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원만 더 얹어주라. 이 놈 먹인다고 얼마나 고생한 줄 알잖아.""나는 이 놈 몰고 가면 안 먹여도 되나? 마찬가지 아이가. 자, 여기 있다. 5만원 벌어 무라, 이 영감아. 내 인심 썼다."생후 6살 암소를 팔고 사는 60대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다. 파는 '영감'은 350만원 내놓으라고 하고, 사는 '영감'은 340만원 이상 더 못준다고 버텼다. 중매인도 흥정하다 말고 가버린다. 옆에 모여든 사람들이 거든다.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여야 한다고 한 옛말은 빈말은 아니다.
5만원을 더 얹어 줄 수 없다며 돌아서서 몇 걸음 옮긴 영감을 옆에 있던 사람이 팔을 붙잡고 다시 왔다. 담배도 한 대 권했다. 모자를 쓴 70대가 "소는 좋다"며 거들었다. 그러자 그 자리로 다시 온 영감이 "내 인심 썼다"며 지갑을 꺼낸다. 거래가 성사된 것이다.
20일 아침 경남 함안 가야읍 소재 함안우시장의 한 귀퉁이에서 벌어진 광경이다. 최근 미국산 쇠고기가 대형매장에서 판매되고, 사료값이 폭등하면서 소값이 내려간다는 소식을 듣고 우시장을 찾았다.
사료값 인상 행진 멈추지 않아사료값 인상 행진은 멈추지 않고 있다. 한우뿐만 아니라 젖소, 돼지, 닭 등 축산농가는 올라만 가는 사료값 때문에 울상이다. 지난 11월 전남 무안에서는 한 양돈농민이 사료값을 감당하지 못해 창고 천장에 목을 매달아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한국낙농육우협회 경남도지회(지회장 김기태)는 오는 23일 오전 경남도청 앞에서 낙농대책 수립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다. 낙농농가들은 "사료값 폭등, 송아지값 폭락에 대해 정부 대책마련을 요구하였지만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하며 수수방관하고 있어 낙농농가에 생업 포기를 강요하는 실정"이라 주장하고 있다.
축산농민들은 내년 초에 배합사료값이 또 한 차례 오른다고 보고 있다. 한 사료업체는 최근 1kg당 판매가격을 축종별로 48~60원씩 인상하는 안을 마련했으며, 다른 사료업체도 12월 중 비슷한 가격의 인상 계획을 세울 것으로 알려졌다.
축산농가에 따르면, 2006년 11월부터 최근까지 배합사료값은 모두 10차례나 올랐다. 올해 들어서만 1월, 3월, 4월, 7월, 10월에 이어 이번까지 6차례나 올랐다. 비육우용 사료 1포대(25kg 기준)의 경우(공장 출고가) 2006년 9월에는 6648원이었는데, 올해 10월에는 1만630원이었다.
대신에 소값은 폭락한다. 특히 젖소 송아지가 더 심하다. 축산업계에 따르면, 젖소 송아지(초유떼기) 값은 지난 3월과 11월을 비교할 때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많이 떨어졌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타결 전과 후의 차이다. 젖소 수송아지가 지난 3월에는 37만원선이었는데 11월에는 6만원 밑으로 떨어졌다. 암송아지는 25만원에서 4만원대로 떨어졌다. 지금은 1마리당 3만원선에 거래된다는 말도 있다.
소값이 개값만도 못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우도 사정은 비슷하다. 미국산 쇠고기가 대형매장에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소값은 10만원 안팎으로 떨어졌다. 현재 정부가 정한 송아지 안정기준가격은 165만원(두당)이다. 그런데 이날 함안 우시장에서는 생후 6개월된 수송아지가 111만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생후 5~6개월 수송아지가 대개 120만~147만원선에서 거래됐다. 160만원에 거래되는 송아지도 있었지만 매우 드물었다. 거의 대부분 안정기준가격 이하였다. 지난 달보다 최고 30만~40만원 가량 떨어졌다고 한다.
"왜 소 팔아요", "사료값 때문 아니요"
축산농민들의 한숨은 깊어만 가고 있다. 4년생 암소(600kg)를 몰고 와 겨우 흥정 끝에 385만원에 팔았다고 한 김찬식(의령)씨한테 "왜 소를 팔았느냐"고 묻자 단번에 "사료 때문 아니요"라고 대답했다.
"지금 사료값이 워낙 비싸 농민들 다 죽게 되었지요. 1년 전과 비교해 좀 심하게 말하면 100%나 오른 것 같아. 소 키워 봐야 적자라니깐요. 저런 소 한 마리당 50만원 손해 보는 거죠. 20마리 키우고 있는데, 합치면 1000만원 적자 아닝교. 소 주인은 조금이라도 남아야 할 건데, 적자니 안 키우는 게 상책이지요."옆에서 말을 듣던 이영중(합천)씨는 더 할 말이 많은 듯하다. 이씨는 "한 푼이라도 남아야 키울 것 아니냐"면서 "제일 큰 원인은 사료값이 폭등한 탓이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에서 사료에 대한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축산업은 망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어떤 대책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사료값 인상분만큼 정부에서 지원해 주어야 하고, 최소한 인상분의 절반이라도 정부가 보조를 해주어야 한다"면서 "정부에서는 특별구매자금을 쓰라고 하지만 조건이 까다로워 얻어 쓰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중개인 홍순만씨는 "오늘 보니 소는 많이 나온 편인데, 거래는 안되고 있다"면서 "사겠다는 사람은 적은데 팔겠다는 사람은 많다"고 말했다. 그는 "다들 사료값이 또 오른다고 하니 소를 안 키우겠다고 한다"면서 걱정했다.
진동에서 한우 20여마리를 키운다고 한 김아무개(57)씨는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허가를 해놓았지만, 우리 한우를 살리는 방안을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식당에서 단속한다고 하지만 제대로 안된다. 육우와 수입 쇠고기를 한우로 둔갑시켜 판매하는 식당이 많다고 하는데 정부 단속은 거의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남해에서 어미와 송아지를 몰고 팔러 온 양아무개(62)씨는 소뿔을 잡으며 "이 놈들이 너무 많이 먹는다"고 말했다. 그는 "새끼가 있어서 그런지 어미소가 너무 많이 먹어 감당할 수 없어 팔러 왔다"면서 "계속 오르기만 하는 사료값 때문에 소도 키우지 못할 판이다"고 덧붙였다.
뛰는 사료값, 주인도 누렁이도 끼니를 굶었다소 흥정 장면을 지켜보던, 흰 머리카락이 더 많은 60대는 "정부에서 지원해 주는 것도 좋지만, 축산농가가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지원금은 합치면 수백억원이라고 하지만 농가에 돌아오는 돈은 고작 10만원선이다. 매번 그렇게 할 수도 없다. 농민들이 어렵다고 하면 정부에서 어떻게 해주겠지 하는 생각만 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자립의지를 키워 주어야 한다."사람과 소가 한창 몰려들 때는 해가 뜨지 않았는데, 어느새 해가 나뭇가지에 걸렸다. 그래도 우시장 주변에 빈 트럭은 즐비하다. 담배꽁초를 발로 비비던 50대가 "아침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하자 옆에 있던 사람은 "아직 소도 못 팔았는데 밥은 무슨…"이라며 가만히 서 있다.
이날 새벽 함안우시장에 나온 소들은 높은 사료값 때문에 '아침밥'을 굶었다. 소주인들도 허기를 느끼면서도 끼니를 거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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