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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지팥죽 한 그릇
동지팥죽 한 그릇 ⓒ 조찬현

작은 설날인 동지(21일)는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날이다. 예전엔 동지를 사실상 새해의 시작으로 여겼다. 나이만큼 새알심을 빚어 먹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동지가 지나가고 나면 낮이 다시 길어져 태양의 기운이 새롭게 회복된다.

동짓날 쑤어먹는 동지팥죽의 붉은빛이 액을 쫓아 준다고 한다. 우리 조상들은 일 년 중에서 해가 가장 짧은 동짓날에는 음의 기운이 강해 귀신들의 활동이 활발해진다고 믿었다. 그래서 팥죽을 쑤어 담장과 대문, 집안 곳곳에 귀신이 싫어하는 붉은 동지팥죽을 뿌려 귀신을 쫓아내는 풍속을 행해왔던 것이다.

 새알심은 나이만큼 빚어낸다.
새알심은 나이만큼 빚어낸다. ⓒ 조찬현

 삶은 팥을 믹서에 곱게 갈아 팥물을 팔팔 끓여낸다.
삶은 팥을 믹서에 곱게 갈아 팥물을 팔팔 끓여낸다. ⓒ 조찬현

동지팥죽을 찾아서 5일마다 장이 열리는 재래시장인 전남 장성 황룡장을 찾았다. 파장 무렵 이어서일까. 황룡장의 풍경은 스산하기 짝이 없었다. 현대식 장옥으로 잘 단장됐지만 아직은 전통장의 모습들이 군데군데 남아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그 옛날, 장날이면 잔칫날처럼 왁자하던 풍경은 오간데 없고 어둠이 내리자 점포는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한다. 시장 상인들은 요즘은 넘치는 인정과 왁자한 장터 풍경은 먼 옛날이야기라며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팥죽집 주인아주머니에게 동지팥죽을 먹을 수 있겠느냐고 하자 일손을 멈추고 흔쾌히 준비해주겠단다. 사실은 동지팥죽의 진정한 참맛을 찾아 이곳 장터까지 물어물어 찾아들었다. 하루 장사를 끝내고 물건을 정리하고 있던 상인에게 어떤 집이 잘하느냐고 물었더니 다 고만고만하다고 대답한다.

 장터 팥죽집답게 팥죽과 동지팥죽, 국밥, 국수 등 서민적인 음식을 팔고 있는 윤정이네 팥죽집이다.
장터 팥죽집답게 팥죽과 동지팥죽, 국밥, 국수 등 서민적인 음식을 팔고 있는 윤정이네 팥죽집이다. ⓒ 조찬현

황룡장의 장터에는 4곳의 팥죽집이 있다. 그중 첫 번째 집을 선택했다. 윤정이네 팥죽집이다. 장터 팥죽집답게 팥죽과 동지팥죽, 국밥, 국수 등 서민적인 음식을 팔고 있었다. 동지팥죽을 주문하기가 무섭게 삶은 팥을 믹서에 곱게 갈아 팥물을 팔팔 끓여낸다.

손님에게 동지팥죽 맛을 물어봤더니 깔끔하고 맛있다며 손가락을 추켜세운다.

"이집 동지팥죽 맛있어요?"
"깔끔하고 맛이 좋아요."

동지팥죽이 다 끓자 소금 간을 해서 내온다. 취향에 따라 설탕을 넣어 먹으란다. 찬은 파장이라 다 떨어지고 없다는데도 잘 발효된 배추김치, 달래를 함께 넣어 향기가 그만인 상추와 미나리겉절이, 초고추장에 버무린 시금치무침이 나왔다. 보기만 해도 맛이 절로 느껴진다.

"동지팥죽 한 그릇에 얼마예요?"
"3천원이에요. 장성에서 아마 제일 쌀 거예요."
"반찬이 맛있네요."
"원래 반찬은 다섯 가진데 파장이라 더 드릴래도 다른 찬은 떨어지고 없어요."

 잘 발효된 배추김치는 보기만 해도 맛이 절로 느껴진다.
잘 발효된 배추김치는 보기만 해도 맛이 절로 느껴진다. ⓒ 조찬현

 동지팥죽에서 우리 고유의 소박한 맛과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동지팥죽에서 우리 고유의 소박한 맛과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 조찬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동지팥죽이 정말 맛깔스럽게 생겼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동지팥죽이 정말 맛깔스럽게 생겼다. ⓒ 조찬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동지팥죽이 정말 맛깔스럽게 생겼다. 국내산 팥만 고집하는 주인장의 심성 때문인지 동지팥죽에서 우리 고유의 소박한 맛과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찹쌀가루로 반죽을 오래오래 해서일까, 뜨끈한 새알심은 유난히도 부드럽다.

새알심 하나에는
정겨움이
새알심 하나에는
고향의 푸근함이
또 다른 새알심 하나에는
포만감이 담겨있네

나이만큼 빚어낸 
새알심과 조잘조잘
세월을 지껄이다보니
동지팥죽 그릇은 어느새 텅 빈 바닥
빈 숟가락은 여전히 내손에 붙잡힌 채로.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동지팥죽#새알심#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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