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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년고도 경주하면 다들 신라시대 유적만을 많이 떠올린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역사와 함께한 유적들은 신라시대는 물론 조선시대까지 다양하게 남아 있다. 경주 시가지 중심에 경주읍성을 중심으로 골목길을 둘러보면 다양한 유적들이 보인다.

경주 읍성은 달라지고 있다

현재 경주읍성은 주변 정비를 통해 많이 달라지고 있다. 고려시대 때 축조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읍성은 동국여지승람과 동경잡기등에 기록이 남아 있다.  동쪽에 향일문, 서쪽에 망미문, 남쪽에 징례문, 북쪽에 공진문의 성문이 있었는데 그중 징례문에는 봉덕사의 성덕대왕신종을 달아 놓았다고 한다.

경주읍성 모형도 경주읍성 모형도 경주문화원 향토전시 자료관에 있다.
경주읍성 모형도경주읍성 모형도 경주문화원 향토전시 자료관에 있다. ⓒ 김환대

최근 일부 무너진 구간이 성벽을 보수하면서 많은 절터 관련 석재(탑, 기단석)들이 나왔다. 지금도 일부 부재는 성벽에서 볼 수 있다.

읍성 전경 경주 읍성은 경주 역 인근에 있다.
읍성 전경경주 읍성은 경주 역 인근에 있다. ⓒ 김환대

절터 관련 부재 읍성 성벽에 있던 절터 관련 부재 석조물
절터 관련 부재읍성 성벽에 있던 절터 관련 부재 석조물 ⓒ 김환대

현재 구간별로 복원 정비 사업을 추진 중에 있고, 성곽 방어를 위해 돌출시킨 치가 눈에 들어온다.

인근에 조선시대 유적

경주 읍성을 중심으로 인근 주변에는 다양한 유적이 남아있다. 경주 경찰서 맞은편에는 객사의 부속건물로 사신들과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가 머물렀던 객사의 서헌 건물인 동경관이 남아 있다. 이 건물은 8·15광복 이후 모두 헐리고 시가지로 바뀌면서 현재 서헌만을 옮겨다 놓은 것이라 한다.
동경관 주변 건물에 둘러싸여 입구 찾기가 어려우나 당시 객사의 서헌 건물만 남아 옮겨진 것이다. 한쪽은 맞배지붕, 한쪽은 팔작지붕이다.
동경관주변 건물에 둘러싸여 입구 찾기가 어려우나 당시 객사의 서헌 건물만 남아 옮겨진 것이다. 한쪽은 맞배지붕, 한쪽은 팔작지붕이다. ⓒ 김환대

원래는 양쪽 모두 팔작 지붕이었으나 옮기면서 한쪽은 맞배지붕으로 바뀌었다고 하나 원래 중간 건물이 없어지고 동헌이 없어지면서 이렇게 형태가 바뀌게 된 것이지, 특이한 형태의 지붕은 아니다.

1930년 건물 1930년 지어진 것으로 보이며, 당시에는 야마구찌 병원 건물이었다고 한다.
1930년 건물1930년 지어진 것으로 보이며, 당시에는 야마구찌 병원 건물이었다고 한다. ⓒ 김환대

바로 옆에는 일제 강점기의 건물로 1930년경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건물이 남아 있다. 당시에는 병원으로 이용 되기도 하던 건물이다.

경주경찰서에는 탑도 있다.

맞은편 경주 경찰서 내에는 입구 양쪽에 절터에서 옮겨다 놓은 각종 석부재와 1층 몸돌에 사방불이 새겨진 탑이 남아 있다.

탑신석 탑의 몸돌로 보이며, 특이하게 한쪽면만 감실 안에 불상을 새겨 놓아 주목된다.
탑신석탑의 몸돌로 보이며, 특이하게 한쪽면만 감실 안에 불상을 새겨 놓아 주목된다. ⓒ 김환대

또한 한 쪽 면에만 감실을 파고 불상을 조각한 특이한 형태의 탑 부재도 남아 있고, 사리가 나온 석함 등 다양한 석조물이 남아 있어 볼만하다.

경주여중은 집경전지 터

현재 경주여자 중학교내에는 집경전터로 추정된다. 경주여중 자체 제작 안내문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을 하고 있다. 집경전 구기(集慶殿 舊基) 이 자리는 신라가 고구려, 백제를 정복하여 태평성대를 누리던 시대의 이궁(離宮)으로 집경전이 있던 곳이다. 삼국통일을 이룩한 문무왕이 즉위식을 가졌고 뒷날 조선 태조 강헌대왕의 수용(晬容)(임금의 畵像, 御眞)을 모셨던 곳이다. 지금은 그 건물의 흔적은 찾아 볼수 없으며 "옛터엔 우리 학교가 들어서 있고" 조선 정조의 친필로 쓴<집경전 구기>란 비석 만 남아있다.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경주 읍성을 기점으로 동문과 서문이 만나는 지점이 아닐까 추측된다.

집경전 당간지주 부재 집경전지로 추정되는 석조물에 당간지주의 한쪽이 남아 있다.
집경전 당간지주 부재집경전지로 추정되는 석조물에 당간지주의 한쪽이 남아 있다. ⓒ 김환대

1930년대 말까지 일부 건물이 남아 있어 현 경주여중 일대가 다 집경전지로 추정되고 있다. 주변에는 석조물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일부 석재는 기둥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인근 계림초등학교 골목길 가에는 석재가 그대로 남아 있는데 여기도 집경전 관련 유적으로 보이는데, 사각형의 터널모양으로 축조하여 남북으로 관통된 내부공간을 마련하였고, 석재 중 일부는 당간지주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현장을 가 보지 않은 사람들과 가서도 확인 하지 않은 사람들은 착기가 어렵다. 바로 앞 계림초등학교 내에는 언제 어디서 옮겨다 놓은 탑이긴 하지만 고려시대 삼층석탑이 있다.

관아 건물지와 동헌

현재 KT&G(한국담배인삼공사) 자리는 조선시대 관아 건물터로 추정되는데 발굴결과에서도 이러한 사실이 밝혀졌고, 나온 건물 자리는 현재 그 자리 그대로 영구히 보존되어있다.

관아 건물지 현재 KT&G 자리이다.
관아 건물지현재 KT&G 자리이다. ⓒ 김환대

바로 옆 현 경주문화원 중심 건물도 당시 조선시대 동헌 건물로 이용되었고, 각종 석부재와 큰 은행나무가 남아 있다. 

신사 건물로 오인하기 쉬운 건물

한때 일본 신사(神社) 건물로 알려진 192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일제 강점기 건물이 또한 인근 주변에 남아 있다. 당시 불교 포교원으로 이용하던 건물이라고 하며, 현재 주변은 정비 공사 중이라 관람은 어렵다.

1920년대 건물 1920년대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건물인데 군데 군데 우리나라 건물에서 볼 수 없는 양식이 보인다. 주변은 공사 중이다.
1920년대 건물1920년대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건물인데 군데 군데 우리나라 건물에서 볼 수 없는 양식이 보인다. 주변은 공사 중이다. ⓒ 김환대

아직도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고 있는 이런 유적들은 신라시대 유적에 가려서 홀대받는 유적들은 아닌지 모르겠다. 주변을 둘러보면 조선시대 유적들도 오늘날 경주에 남아 있는 훌륭한 자원 유적으로 역사적인 사실과 기록이고, 또 일제 강점기인 1920-30년대 건물들도 한 역사를 증명하는 건물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역사적인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가치가 있다고 본다. 이외에도 경주 골목에는 근대 유적들이 만이 남아 있다.  2-3시간 도보로 이런 유적을 골목 탐방이라 하여 한 번 다녀 보는 것도 유익한 답사로 좀 더 경주를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경주 읍성#경주 골목길#동경관#경주 동경관#주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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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문화유적을 찾아 답사를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구석진 곳에 우리문화를 찾아서 알리고 문화관련 행사를 좀 더 대중에게 보급하고자 하며 앞으로 우리문화재의 소중함을 일깨워 나아가려고 합니다. 괌심분야는 역사유적, 석조조형물과 민속,고건축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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