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랄하고 깜찍했다.
오전 10시, 전국연합 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를 거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체험학습'을 떠났던 청소년들이 오후 4시 종로 보신각 앞에 다시 모였다. 기온이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청소년들과 학부모, 교사들까지 모이기 시작해 오후 5시 무렵에는 500여 명으로 불어났다.
청소년들은 이 자리에서 '체험학습 발표회'를 열었다. 오늘 이들의 체험학습은 '덕수궁 미술관' 관람에만 국한되지 않았었다. '일제고사 메롱'이라고 쓴 대형 깃발을 만들고 그 곳에 '어른들에게 날리는 한마디'씩을 적었다. 삼각 소형 깃발에 쓴 글에는 청소년들의 재기가 그대로 묻어났다.
"다른 친구들의 불행을 전제한 나의 행복은 존재할 수 없어!!!''몹쓸 교육!! 청소년이 바꾼다''담배보다 더 해로운 일제고死''조금만 우리를 이해해 줄 순 없나요?"청소년들은 이 깃발들을 'N' 'O'라고 쓰인 대형 스티로폼에 꽃았다.
일제고사는 '학생주임'이다
'일제고사는 □다'의 '□'을 채우는 일도 체험학습 과정이었다. 청소년들의 마음이 잘 드러난다.
'일제고사는 '학생주임'이다. 보기만 해도 짜증이 팍팍 나니까~''일제고사는 '대문'이다. 박차고 나가고 싶어지니까~''일제고사는 '출근길 지하철'이다. 갑갑하고 숨막히니까~''일제고사는 '가면'이다. 앞에는 그럴 듯 한데 뒤에는 '경쟁'이 숨어있다.''일제고사 반대 부당징계 철회 공정택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 사회는 이영주 교사와 청소년 꽥쉰네(인터넷 아이디)가 맡았다. 이들의 진행도 경쾌했다. 그동안 봐왔던 '고만고만한' 자유발언 대신 이들은 즉석에서 한 핸드폰 번호를 공개하고는 '문자발언'을 받았다. 순식간에 '마음을 보탠다'는 수십 통의 문자가 쏟아졌다.
'공정택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일제고사 밀어붙이는 똥~덩어리''돈보다 삶이 더 중요합니다''일제고사에 반대하는 건 청소년들의 권리와 의무입니다' '한 예비교사입니다. 미래의 내 아이들을 위해서... 힘을 보탭니다'"청소년들이 전교조 선동하고 있다"오늘 등교를 거부했다는 한 청소년은 마이크를 잡자 쑥스러워 하며 몸을 배배 꼬다가도 금세 목소리에 힘을 넣는다.
"늘 생각만 하고 행동하지 못했는데 작은 힘이 모여 큰 힘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오늘 참가했습니다. 일제고사는 우리 청소년들의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막아야 합니다. 학생들의 권리를 지켜내야 합니다."
참석자들의 박수가 쏟아지자 다시 여린 청소년으로 돌아간다.
"근데 어떻하죠?..내일 학교...(가면 혼날 텐데)"참석자들이 더 큰 박수로 격려했다.
이영주 교사는 "자꾸 전교조가 청소년들을 선동한다고 하는데 오늘 자리를 보니 오히려 청소년이 전교조를 선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연도 이어졌다. 가수 조약골씨는 "해임 파면 교사들 힘 내시고, 울지 마시라"면서 'NO WOMAN NO CRY(노 우먼 노 크라이)'를 개사한 'NO TEACHER NO CRY(노 티쳐 노 크라이)'를 불렀다. 공연 내내 "선생님을 아이에게로, 일제고사는 공정택에게로" "무한경쟁 강요하는 일제고사 꺼져줄래~"등의 구호와 'say no~일제고사' 'say no~ 줄세우기' 등의 노래가 울려퍼졌다.
박수영 교사 "오늘 아이들과 마지막 수업"
이번엔 일제고사 선택권을 인정했단 이유로 해직된 거원초등학교 6학년 9반 박수영 교사가 마이크 앞에 섰다.
"개인적으로 서글픈 날입니다. 공식적으로 아이들과 마지막 수업을 했습니다. 일주일 동안 거리 수업을 했지만 내일부터 방학입니다. 이번 일을 겪고 제가 무지 행복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함께 수업하겠다고 나선 아이들, 추운 아침부터 교문을 지켜준 학부모님들을 보면서 '이게 교육이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개학하면 다시 아이들 곁으로 갈 것입니다. 그리고 같은 순간이 와도 저는 다시 그 길을 가겠습니다."집회의 마무리는 '푸른학교' 청소년들이 확실히 책임졌다. 이들은 역동적인 율동과 노래를 선보여 많은 박수와 환호를 이끌어냈다. 참석자들은 휴대폰 액정을 열고 흔들거나 어깨를 들썩거렸다.
'푸른학교' 청소년들의 공연으로 집회를 마무리한 참석자들은 저녁 7시 서울시 교육청 앞에서 열릴 예정인 '촛불문화제' 참석을 위해 이동했다.
한편, 경찰은 횡단보도 구역을 제외한 보신각 앞 모든 인도를 10여 대의 전경버스로 둘러 차도에서 이 집회현장을 전혀 볼 수 없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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