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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들의 겨울살이 광양 옥룡 천에서 겨우살이를 하는 새들을 영상에 담았습니다.
ⓒ 조도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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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중 밤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동지(21일)가 지난 지 나흘이나 됐다. 한해 액운을 막아준다는 동지 팥죽 한 그릇 얻어먹지 못했는데, 올해가 지나갈 모양이다. '시간이 있으면 시장 팥죽집에서 한 그릇 사먹지' 생각했는데 벌써 오늘이 아기예수가 탄생한 크리스마스다.

 

유년시절 어머니는 찹쌀과 멥쌀을 곱게 갈아 만든 하얀 가루에 물을 조금 부어 말랑말랑하게 반죽했다. 새알을 만들기 위해서였는데, 물을 너무 많이 넣으면 쌀가루가 손에 달라붙어 새알이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

 

조금 뻑뻑하고 되게 반죽을 하여 큰 덩어리로 뭉쳐진 반죽을 조금씩 떼 손 안에 넣고 비비다 보면 작은 새알처럼 된다. 어머니 곁에서 작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만드는 새알은 소꿉장난처럼 재미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동지팥죽이란 말보다는 '새알죽'이라고 불렀다.

 

날씨가 매섭다. 찬바람이 제법 거세다. 햇볕이 쨍쨍한데 간간이 눈발이 날린다. 듬성듬성 지나가는 먹구름이 흩뿌리고 지나가는 눈인 모양이다. 가끔씩 찾아가는 시골집 가는길. 구름이 끼여 음침한 날이나 오늘처럼 찬바람 부는 날이면 아버지가 보고 싶어진다.

 

아버지는 고향이다

 

 시금치
시금치 ⓒ 조도춘

 

아버지는 고향이다. 항상 보고 싶고 보고나서 헤어지면 다시 보고파지는 고향이다. 흰머리가 많아지고 주름이 늘어나는 모습을 나는 늘 부정했다. 그러나 가끔씩 찾아뵐 때마다 '정말 주름이 많네!' '정말 흰머리가 더 많이 늘어나네!'라는 메아리가 마음 속에 울린다.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점점 더 아버지는 그리운 고향이 되어가고 있다.               

 

옥룡천을 따라 난 길로 접어들자 바람이 더 거세진다. 까마귀가 때를 지어 하늘로 비상한다. 때를 지어 나는 새들로 하늘이 온통 까맣다. 녀석들은 바람의 타고 이리저리 흩어지 듯 다시 모이면서 방향을 잡아 날아간다. 착지점을 찾고 있는 모양이다.

 

어렸을 때 어른들은 '녀석이 울면 사람이 죽는다', '녀석이 아침에 울면 재수가 없다'라는 말씀을 하곤 했다. 그래서 지금도 까마귀는 흉조라고 생각이 늘 마음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오해를 풀기 위해 녀석들과 좀 더 가까운 거리에서 만나고 싶은데 어렵다. 차가운 겨울하늘을 떼지어 나는 모습을 보는 것도 겨울에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인 것 같다.

 

 물총새
물총새 ⓒ 조도춘

 

시냇물 옆 작은 나뭇가지에 물총새가 앉아있다. 녀석은 조용히 앉아있다. 녀석의 행동이 궁금하여 잠지 지켜보았다. 조용히 앉아있던 녀석은 갑자기 흐르는 물속으로 뛰어든다. 너무나 빠른 몸놀림에 녀석의 모습을 놓쳐버렸다. 시간이 조금 흘렀다. 녀석은 제법 살이 통통하게 오른 물고기를 잡아 건너편 바위 위에서 맛있게 먹고 있었다. 조용한 침묵은 명상의 시간이 아닌 물고기사냥을 위한 긴장의 순간이었던 것이다. 녀석은 프로물고기 사냥꾼이었다.

 

겨울 찬바람을 버티고 있는 시금치

 

거센 바람에 마른풀숲은 일제히 한쪽 방향을 향해 허리를 굽힌다. 바람은 폭군처럼 느껴진다. 폭군 앞에 납작 엎드린 풀숲에서는 커다란 소리가 난다. 알 수 없는 소리에 귀를 기울려 보았자 우리는 더 알 수가 없다. 숲이 우는소리를 우리는 바람소리라고 한다.

 

시골집 공터에 고추가 널려있다. 붉은 고추는 철지난 가을을 느끼게 한다. 품질이 상품인 고추는 벌써 시장에 내다팔고 팔지 못한 질 떨어진 고추는 집에서 해먹기 위해 밖에 내다 널어 논 것이라고 한다.

 

찬바람에 아랑곳없이 시금치가 싱싱하다. 진한녹색에서는 벌써 따스한 봄이 느껴진다. 아버지와 민주엄마는 김장한 배추도 있지만 싱싱한 저녁 찬거리를 만들기 위해 시금치를 솎아 가며 채취하고 있다.

 

짧은 겨울햇살을 의지 삼아 용케 살아가고 있는 시금치가 대단하다. 시금치는 추위에 강하다고 한다. 주로 나물로 무쳐 먹는 시금치는 철분과 비타민이 풍부하다고 한다. 민주엄마는 오늘 채취한 시금치는 된장국으로 끊여 먹을 예정이란다. 기대가 된다.

 

빈 밭 듬성듬성 배추가 보인다. 김장에서 제외된 배추들이다. 사실은 못난이라고 버림을 받은 거나 다름없다. 그러나 따돌림을 무색하리만큼 제법 속살이 꽉 차있다. 시금치 밭고랑 위에는 매화나무가 추위를 버티고 있다. 찬바람에 작은가지는 오들오들 떠는 양 흔들리고 있다. 겨울의 차가운 시련을 꿋꿋이 이기고 있는 작은 꽃봉오리가 애처롭게 보인다. 녀석은 봄을 제일 먼저 알려 줄 것이다.

 

옥룡천에서 겨우살이를 하고 있는 새들

 

 옥룡천 새들의 겨우살이
옥룡천 새들의 겨우살이 ⓒ 조도춘

 

백로가 영역다툼을 한다. 천천히 우아하게 걷는 모습이나 하얀 깃털을 가지고 있는 녀석의 외모로 보아서는 천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을 만도 한데 갑자기 행동이 전투적으로 돌변한다. 먹이사냥을 하고 있는 한 녀석 근처로 또 다른 녀석이 착지를 하였다.

 

그런데 녀석은 먹이사냥을 그만두고 동료 백로를 신경질적으로 쫓아버린다. 녀석은 분이 덜 풀렸는지 도망가는 녀석을 한 번 더 쫓아가 더 멀리 쫓아버린다. 아마도 보석을 발견하려는 찰나에 녀석이 방해를 한 모양이다. 녀석이나 우리나 화를 내는 모양새는 비슷하다.

 

 백로
백로 ⓒ 조도춘

 

청둥오리들이 떼지어 시냇물에 앉아있다. 녀석들이 찾아왔다는 것은 먹을거리가 풍부하다는 뜻일 것이다. 백운산 자락에서 흘러나오는 옥룡 천은 깨끗하기로 소문난 곳이다. 여름 피서 철이면 사람들이 점령을 한다. 겨울이 되면 다시 철새들이 주인이 된다.

 

옥룡초등학교 교가도 ;옥룡천 맑은 물에 은어가 뛰고…'로 시작한다. 1급수에서 산다는 은어가 많은 곳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은어'가 사라졌다. 은어가 살 수 있는 환경이 되지 않은 것이다.

 

 청둥오리
청둥오리 ⓒ 조도춘

 

그러나 최근 들어 은어가 다시 돌아온 모양이다. 은어를 낚는 강태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겨울이면 청둥오리를 비롯하여 많은 새들이 이곳에서 겨울을 지내고 있다. 철새인 백로와 왜가리는 이곳 터줏대감처럼 살기로 작정을 하였는지 겨울바람이 쌩쌩 불어도 떠날 줄을 모른다. 다시 살아나는 옥룡천의 모습이 아름답다.

 

 백로
백로 ⓒ 조도춘

덧붙이는 글 | u포터에 송고했습니다.


#새들의 겨우살이#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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