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들이 경기도 용인의 중학교 2학년인 학부형이다. 12월 23일 '중학교 전국연합 학력평가(이하 일제고사)'를 실시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이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아들과 토론를 해 보려 했지만 연말 바쁜 와중에 흘려 버렸다. 며칠이 지난 성탄절 휴일, 모처럼 함께하는 여행길에 운전하는 어깨 너머로 아들이 일제고사 이야기를 꺼낸다.
"아빠 아빠! 일제고사 문제중에 이상한 게 하나 있었어요."
일제고사 이야기에 흥미가 동해 라디오 음악소리를 낮추고 귀를 쫑긋 세운다.
"그게 뭔데."
"국어 문제 중에 인터넷 악성댓글을 법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문제인데 그게 좀 이상했어요."
"객관식이야 아니면 주관식이야?"
"당근 객관식인데, 답은 뻔한 거지만 내가 생각해도 뭔가 좀 의도하는게 있는 것 같애."
"어떤 내용인데? 좀 자세히 얘기해 봐."
"하여튼 5개중에 4개는 악성 댓글을 규제해야 한다는 쪽이고 다른 하나는 자유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는 그런 내용이었어요"
"그거야 지금도 의견이 분분한 문제인데 그런걸 어떻게 국어문제로 출제할 수 있니, 그 문제에 대해 친구들은 뭐라고 하든."
"다들 뭐 이상하다면서 우리를 세뇌시키려는 게 아닌가 그런 말들을 해."
어떤 문제길래 궁금하기도 해 문제를 찾아보았다. 경기도교육정보연구원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친절하게도 PDF파일로 변환된 문제지와 정답해설지가 게시판에 실려 있다.
1교시 국어문제 중 7번 문항이다. 실제 내용을 보자. 있는 그대로 보면 '악성 댓글, 법적 규제 강화해야'라는 주제로 토론을 했는데 서로 다른 5개의 의견이 있었다. 이들 중에 입장이 다른 의견 하나가 어떤 것인가를 묻는 질문이다. 단순하게 보면 변별력을 판단하는 문제로 보이지만 중학생이 아닌 누가 풀어도 뻔한 답을 유도하고 있다. 객관식의 일부 문항들을 보면 지문을 보지 않아도 다른 하나를 골라낼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문제에 대한 정답해설지의 내용을 보자.
출제의도가, '토론한 내용을 바탕으로 주제와 관련 있는 내용을 선정할 수 있는지를 묻는 문제이다'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더욱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출제 의도만을 보면 모두 다 정답이 될 수 있다. 5개 항 모두가 주제와 관련된 토론이고 단 하나만이 나머지 넷과는 다른 의견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설명을 보면 더욱 모호해진다. 옮겨보면, '토론한 내용으로 글을 쓸 때에는 글의 주제에 맞게 의견을 재구성해서 써야 한다. 토론 과정 중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더라도 주제에 맞지 않는 글은 쓰지 않는다'라고 되어 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토론 과정에서 다른 의견을 들었다 하더라도 그 의견은 무시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러면서 제시된 정답은 반대하는 입장인 ④번이라고 안내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다양성의 사회이고 그 다양성을 서로 인정하는 사회로 교육되어 왔다고 믿는다. 다른 남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는 대립과 경쟁을 구도로 시기와 질투 편가름이 일어나고 뒤떨어진 사람은 심지어는 자살로 내 밀릴지도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 초래되기도 한다. 중학교 일제고사에 출제된 이 문제 하나에 너무 집착해 확대해석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참으로 다행인 것은 자라나는 아이들은 일부 바보같은 어른들처럼 나에게 좋은 글은 '선플' 나쁜글은 '악플'로 분류하는 오류는 범하지 않는다. 이미 그들은 인터넷에 대해서만큼은 어른들보다 더 경력이 많고 모두가 말할 수 있는 권리속에서 진실이 무엇인지 걸러낼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들이다. 그 아이들의 가치관을 우회적인 방법으로 손상시키지 말았으면 한다. 아니 그들은 이미, 그 문제에 내포된 노림수가 무엇인지도 읽을 정도로 영특한 우리의 미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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