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참, 자식이 웬수라더니, 꼭 그 짝이네."작고 마른 체구에 나이보다 더 늙어 보이는 베트남 아줌마 당티현씨의 사연을 들으며 나온 첫 마디였습니다. 56세의 당티현씨는 베트남 북부 하이증 출신으로 결혼중개업체를 통해 입국한 지 석 달이 안 된 중년 여성입니다.
그녀는 한국에 오고 싶은 생각이 없었지만, 말이 씨가 되어 한국까지 오게 된 기구한 사연을 갖고 있었습니다. 남편과 사별한 지 20년 넘게 어촌에서 그물 손질을 하며 두 아들을 키웠던 당티현씨는 변변한 직장 없이 빈둥대는 장성한 자식들 뒷바라지를 하며 속이 까맣게 타들어갔다고 합니다.
빈곤한 가정 형편으로 학업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했던 자식들은 툭하면, "한국에 가서 일하고 싶은데, 한국에 가는 수속비용 마련해 달라"며 어머니를 괴롭혔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촌에서 그물 깁는 일만 해 왔던 당티현씨에게 자식들의 출국 비용은 엄두도 못 낼 큰돈이었습니다. 베트남에선 1년 동안 해외 이주노동을 가는 노동자들에게 해당국 한 달 평균 급여를 요구한다고 합니다. 그런 현실에서 빚을 내기도 쉽지 않아 당티현씨는 "내가 어디 시집이라도 가야지"하며 자식들 성화를 견뎠다고 합니다.
맘에 없는 말이었지만, 뼈 빠지게 고생하며 키운 자식들과 말다툼할 기력조차 없었던 그녀에게 '시집이라도 가야지'라는 말은 자식들의 성화를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였습니다.
이주노동하려 어머니 재가 몰래 추진한 자식들그런데 자식이 웬수라고, 그 자식들이 자신들의 출국을 위해 어머니의 재가를 몰래 추진하였다고 합니다. 한국에 시집 가서 결혼중개업체를 하는 베트남 출신 여성을 통해 어머니의 결혼을 기정사실화하고 일이 다 진행된 후에 어머니에게 통보한 것입니다. 상대는 일흔이 넘은 할아버지였습니다.
상대방까지 다 정해진 상황에서 일의 진척을 안 당티현씨는 당연 거절하였다고 합니다. 20년 넘게 홀몸으로 지낸 터에 재혼을 한다는 것도 남우세스럽고, 말도 전혀 통하지 않는 외국인과 그것도 다 늙은 할아버지와 함께 산다는 것 자체가 납득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자 결혼중개업체에서 '이제까지 들어간 비용을 다 물어내라'며 협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당티현씨는 그 비용이 얼마인지 모르지만, 자식들까지 덩달아 '시집이라도 간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몰아세우는 통에 원치 않는 국제결혼을 하고 한국에 들어와야 했습니다. 웬수같은 자식도 자식이라고, 자신이 결혼을 하지 않으면 그 자식들이 빚에 쪼들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함께, 기회가 되면 자식들을 한국에 데려갈 수 있다는 결혼중개업체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당티현은 자신을 희생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한국생활은 고달픈 식모살이나 진배없었다고 합니다. 남편이라는 사람은 그 나이에도 구두수선을 하며 스스로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었는데, 아침에 출근을 할 때면 같이 따라 나서야 했고, 퇴근 역시 같이 했다고 합니다. 집에 돌아와서는 집안 청소와 식사, 설거지까지 당티현씨 혼자 몫이었고, 잠자리는 한 번도 같이 한 적이 없었습니다.
돈을 위한 수단 돼버린 결혼... 착잡합니다두 달 보름여를 그렇게 지내고 설움이 북받친 당티현씨는 성탄절을 앞두고 퇴근길에 남편과 동행하기를 거부하고 베트남으로 보내달라며 경찰서에 도움을 청했습니다.
이에 대해 경찰서에서 결혼중개업체측에 어찌된 사연인지를 묻자, 결혼중개업체 대표는 "잘 타일러서 같이 살게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나 몰라라 하였습니다. 그래도 당티현씨는 자식들에게 기별도 하지 않은 채 출국을 도와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했습니다. 당티현씨가 요구한 것은 이혼 서류와 출국 항공료였습니다. 하지만 결혼중개업체는 '남편에게 돌아가라'며 일관되게 무책임하게 대응하였습니다.
결국 졸지에 갈 곳이 없어진 당티현씨는 용인이주여성쉼터에 도움을 청했고, 자신의 기구한 사연을 눈물 뚝뚝 흘리며 털어내었습니다.
이것이 사람 사는 세상인가 싶은 당티현씨의 사연을 들으며, 신성해야 할 결혼이 돈을 위한 수단이 되어 버리고, 사람을 사는 도구가 되어 버린 비정한 현실에 깊은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런데도 당티현은 자신이 이혼하고 돌아가면 자식들의 꿈을 져버린 자신을 원망할까 싶어 두렵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자식이 웬수라는 말 그른 거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까요? 마냥 착잡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