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불 10년'.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년간 사회적 갈등을 무릅쓰고 한반도 시계를 거꾸로 돌리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촛불 탄압, 언론 장악, 좌파 적출, 우파교과서 만들기 등. 이 때문에 독재 회귀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오마이뉴스>는 그 전장을 진두지휘한 'MB의 남자들'을 집중 조명해봤다. 이 글은 최종회다. [편집자말] |
연말에는 누구나 마음이 바빠진다. 처리해야 할 일이 늘어서일 수도 있지만, 한 해를 '의미 있게' 마무리해야 한다는 강박 또한 한몫하는 것 같다. 남은 해를 의미 있고도 즐겁게 보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새해를 맞기까지 채 이틀도 남지 않았으니, 나도 누구 못지 않게 뜻 깊고 즐겁게 해를 정리하고 싶다. 대중문화와 언론에 관심을 가진 사람으로서 2008년을 마무리할 만한 적당한 이야깃거리가 있을까?
최근 나온 이소라의 7집 음반은 어떨까. 이제는 '상업화'라는 말이 도리어 어색할만큼 철저히 기획상품화된 한국대중음악계에 반가운 소식이 틀림없다. 음반을 내기 위해 만들어진 가수가 아니라, 노래하기 위해 가수가 된 사람이 오랜만에 낸 음반이니 말이다.
최근 개봉한 브라이언 싱어의 영화 <발키리>는 어떨까? 톰 크루즈가 히틀러 암살계획을 실행한다니 꽤 흥미로울 것 같다. 영화 이야기에 덧붙여, 온 국민을 기만과 파괴로 몰고간 히틀러의 대국민 라디오 연설을 한국적 상황에서 재해석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연말의 파트너, 다이애나 크롤? 최시중? 내년 3월 말 발매예정인 재즈 피아니스겸 가수인 다이애나 크롤의 새 음반 <조용한 밤들 Quiet Nights>은 어떨까?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와 '조용한 밤들'처럼 감미로운 브라질풍의 보사노바 리듬을 담을 예정이라고 한다.
인터넷 서점에 올라와 있는 음반 자켓을 보며 흐뭇해하고 있자니, 어떤 죄책감 같은 것이 마음을 짓누르기 시작한다. 언론을 연구하는 사람 처지에서 크롤이 즐겁기는 할망정, '가장 의미 있는 일'로 다룰만큼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지난 한 해 동안 한국에서는 언론과 관련해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몇 가지만 떠올려보기로 하자.
2008. 4월: 공정위, (언론의 공정경쟁을 위해 마련된) 신문고시 전면 재검토 표명2008. 7월: 구본홍 (전 이명박 대통령 언론특보) YTN 사장 취임 2008. 8월: 임기도 마치지 않은 KBS 정연주 사장 해임 후 이병순 사장 취임 2008. 8월: 광고주 불매운동 누리꾼 24명 형사처벌2008. 9월: 민영미디어렙 설립 공식화2008. 11월: 사이버모욕죄 발의2008. 12월: 신문방송겸영 허용을 위한 방송법 개정안 상정2008. 12월: 여야합의를 어기고 인터넷신문 지원예산 전액삭감2008. 12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공영방송 민영화 촉구 발언2008. 12월: 최시중 '우리에게 MB 있다는 것은 행운' 발언촛불시위가 뜨거웠던 때를 제외하고는 정부와 여당이 매달 굵직한 사고를 터뜨렸음을 알 수 있다. 국민들이 침묵할 때 정치권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여주는 교훈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한국의 언론상황이 영화나 음반보다 더 중요해 보이는 문제들이지만, 한 해를 마무리하기 위한 주제로 딱히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첫째 이유는 그 어디에도 즐거운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한국언론의 상황을 말하려면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태초에 최시중이 있었다이유는 또 있다. 앞의 사건들은 '마무리'는커녕, 앞으로 벌어질 일들의 서막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지난 한 해 동안 벌어진 언론 관련 사건들은 다양하고 복잡해 보이지만, 간단히 세 가지 동기로 요약된다.
언론의 영리기업화, 비판언론의 소외, 그리고 국민들의 발언 통제다. 이것은 정확히 이명박 정부의 언론정책과 일치한다. 그리고 이 정책의 중심에 최시중이 서 있다. 작년 이맘때까지만 해도 '최시중'은 국민 대다수에게 낯선 이름이었다. 이런 그가 갑자기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임명되면서 몇 달만에 '스타'로 부상한 것이다.
방통위 위원장이 어떤 자리인가. 방송통신 인허가권은 물론 KBS 이사와 방송문화진흥회 임원들의 임명권 등 막대한 권력을 지닌 '언론계의 대통령'에 해당하는 직위가 아니던가. 이런 자리에 무명의 (최근 젊은이들이 '듣보잡'이라는 전문용어로 표현하는) 인물이 임명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최시중 자신과 청와대는 신문기자와 갤럽 회장직을 지냈던 과거의 경력을 내세우며 그가 '통신·방송의 융합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적임자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인터넷'이라는 말도 생소하던 시절에 신문기자와 여론조사기관 임원을 지낸 것이 '미디어 융합시대의 언론수장'의 자격을 보장한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당연히 여론은 부정적이었다.
그러나 '최시중 방통위 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 이전부터 결정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과 동시에 방송위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직속기구'의 수장에 '직속인물'을 기용하는 결정을 내린 것은 별로 놀랄 일이 아니다.
대통령 시중들기 위해 임용된 방통위원장 미래의 언론환경에 관해서는 평가가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대통령의 측근 인물 가운데 최시중은 결코 '듣보잡'이 아니었다. 그는 대통령도 못 말리는 '대통령 형님' 이상득 의원의 학교 동기일뿐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을 정계에 입문시킨 은인이기도 하다. (어디선가 '도대체 왜 그러셨어요'라는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그는 한나라당 선거대책위원회 고문을 맡아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의 선두에 서기도 했다. 최시중은 자칭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적 조언자'기도 하다. 자신의 말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을 당선시키는 데 생을 걸었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 후에는 "물이 넘치려고 할 때 제방이 되어주는 것이 내 임무"였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감동적인 고백을 하기도 했다. 이 말로 평가하자면, 그는 미디어 융합시대의 언론보다는 홍수예방을 위해 한다는 '4대강 살리기' 책임자로 더 적합한 것 같지만 말이다.
자격여부를 떠나 흥미로운 것은, 두 사람의 언론관이 마치 두 목소리를 가진 복화술사의 한 입처럼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조언자'에게 언론관을 한 수 배운 것인지, 아니면 '제방'이 대통령의 견해를 수호하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두 사람의 입이 같이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복화술 : 최시중이 먼저냐, 이명박이 먼저냐이명박 대통령이 정연주 KBS 사장 해임안에 서명하기 석 달 전, 최시중 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이 정연주 사장 때문"이라고 주장했었다. 정연주 사장이 물러난 후 10%대의 지지율이 20퍼센트대로 올라섰으니 그의 말이 꼭 틀린 것 같지는 않다.
이런 우스개가 있다. 어떤 마을에 독특한 복화술사가 있었다. 혼자 농담을 하고 혼자 배를 잡고 웃는 것이다. 지나는 마을 사람들은 때로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때로는 딱하다는 표정으로 이를 지켜보곤 했다.
주민들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사내가 자신의 농담에 항상 같은 반응을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어떤 농담에는 폭소를 터뜨리지만, 가끔은 무덤덤한 표정을 짓는 것이다. 이를 본 마을 사람이 물었다. "자네는 왜 어떤 농담에는 웃지 않아?" 사내가 시답지 않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이미 들었던 거라서 그래."이명박 대통령과 최시중 위원장 사이에도 앞의 우스개와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상대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상대에게 다시 진지하게 '보고'하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3월 26일 최시중 위원장에게 임명장을 건네는 자리에서 "방통위원회 역할이 막중하다"며 "(방송이) 방송, 통신이 융합되는 새 시대에 신성장 동력인만큼 앞서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로부터 6개월 후 최시중 위원장은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방송과 통신융합산업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보고가 끝난 후 최 위원장은 "보고시간이 40분이었는데, 이명박 대통령이 '벌써 끝났냐'고 말했을 정도로 집중력 있게 잘 끝났다"고 자평했다.
언론과 정치권력의 독립성을 책임져야 할 방통위원회 위원장이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고 '잘 끝났다'고 자랑까지 한 것은 분명히 민망한 일이나, 어려운 시기에 웃음을 주는 것은 공직자의 미덕이라 할 만하다. 최시중 위원장은 최근에도 즐거움을 선사했다. 지난 12월 23일 이명박 대통령을 언급하면서 "경제적인 식견과 추진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운인지 모른다"고 말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주가조작 혐의를 받고 있던 후보시절에 "BBK를 설립하고..."라고 말하는 비디오가 발견된 적이 있다. 그때 한나라당 의원은 '설립하고' 앞에 '내가'라는 말이 없기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과 관련이 없다는 해명을 한 바 있다. 그 논리에 따라 해석하건대, 최시중 위원장이 말한 '행운' 앞에 오는 주어가 '국민'은 아닌 게 분명하다.
최시중 위원장, "이대로" 나가주세요2003년 10월, 당시 여론조사기관인 갤럽 회장이었던 최시중 위원장은 한 강연회에서 노무현 정부를 혹독히 비판했다. "여론조사 기관에서 볼 때 지지율 40%선은 국민이 통치자를 걱정하는 수준"이라고 운을 뗀 그는 출범한지 일 년도 안 된 정부를 향해 "지금은 정권 말기적 현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시중 위원장은 현 정부의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미네르바도 침묵하던 시절부터 그는 '달러' 문제를 정확히 예견했기 때문이다. 최 위원장은 노무현 정부를 향해 '폐허 속에서 아이들이 달러를 구걸하게 된 캄보디아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고는 "과연 20년 후 우리나라의 모습은 어떻게 될지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최시중이 이명박 대통령의 '시중'을 열심히 들어왔다는 사실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다. 그러나 그가 '20년 후 우리나라의 모습이 우려스럽다'면, 그 시중이 누굴 위한 것인지 잘 생각할 일이다. 대통령에게는 최고의 시중꾼이 국민들에게는 최악의 시중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가장 걱정해야 할 대상은 본인일 것이다. 그것도 '20년 후'가 아닌 4년 후에 말이다.
한 사회의 의식을 반영하고 규정하는 방송과 통신을 기껏 '경제논리로 풀자'는 대통령, 그리고 그 앞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업무보고를 하는 방통위원장을 두고 무슨 기대를 할 수 있을까? '민영방송이 다루기 쉽다'는 말로 구설수에 올랐던 그는 MBC 민영화를 촉구하는 발언으로 또다시 구설수에 올랐다.
최시중 위원장은 독특한 구호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술자리에서 "이대로"라는 선창을 요구한 후 "나가자"라는 건배사를 외치는 것이다. 국민들도 한마디 하자. 비록 축배를 들 상황은 아니지만 말이다. 언론이 기껏 정권의 홍보수단이라고 믿는다면 그만 이대로 나가주시라고.
[최근 주요기사]☞ 김형오 의장, 7번째 경호권 발동자 되나☞ 술 권하는 사회, 뼈다귀 해장국 예찬☞ 대운하 찬성 단체, 4대강 정비 착공식엔 왜 왔나☞ [엄지뉴스] 미포 굴뚝에서 내려온 바구니 뺏는 경비대☞ [E노트] '아무도 찾지 않는~' 정부 홈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