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는 기축년, 소띠해이다. 소는 예부터 짐승이 아니고 한 집안 식구이며 가정의 분신 대접을 받아왔다. 소는 노동력과 운송수단이었으며 목돈과 뭉칫돈을 안겨주는 재산목록의 일부이다. 소는 우직, 성실, 인내, 온화함의 상징이며 12가지나 되는 덕을 갖고 있다.
도교에서는 유유자적함으로 선을 닦아 도를 깨닫고 마음을 수련하는 순서로 소를 등장시키고 있기도 하다. 소는 용감하여 주인이 위험하다 싶으면 호랑이와도 사투를 벌여 주인을 살려내기도 한다. 경상도 상주 낙동에 의우총(義牛塚)이 그것이다.
특히 성실, 근면, 검소, 정직, 인내, 책임감들은 암소만이 갖고 있는 성품이다. 평생 주인에게 충복을 다해 송아질 낳아 기르고 결이질(밭 갈기)을 하다 천명이 다하면 죽어서도 모든 것을 인간에게 바친다. 몸뚱이는 물론, 뿔은 안경테로, 다리는 족발로, 하다못해 뼈다귀까지 사골국물을 우려내 사람의 기를 살려낸다.
그러나 정말 내가 소를 좋아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사색을 반추(反芻)할 줄 아는 짐승이기 때문이다. 걸으면서도 생각을 하고 누워서도 사색을 한다. 걸으며 사색을 하자니 걸음이 느려야하고, 누워서 생각을 하려니 반추를 할 수밖에 없다. 시큼한 음식을 위 속에서 다시 꺼내 되씹어내는 넉넉함은 소 같은 짐승만이 갖고 있는 여유로움이다. 눈을 스르르 감고 어기적어기적 씹어내는 참을성에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나는 소를 닮아 행동이 굼뜨다. 벼락이 치고 소나기가 퍼부어도 어지간해선 뛰기를 싫어한다. 길을 가다가도 남들은 어떻게 사나 두리번거리고, 등산을 가도 맨 뒤꽁무니에 처지기 일쑤며, 여러 사람들과 식사를 할 때도 물 한 잔 따라 놓고 목을 축일라하면 밥도 못 먹고 일어서기 바쁘다. 행동거지가 느리다 보니 어린 시절 운동회 때 뜀박질 상을 타본 기억이 없고, 군대에 가선 선착순을 하느라 땀 깨나 쏟아냈다.
지금도 소가 좋아 소처럼 느림보 생활을 하고 있다. ‘천천히-더 느리게’란 하찮은 생활신조로 세상을 살아가며 명상과 사색으로 거듭 태어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저 외양간에서 들려오는 암소 울음소리를 오래도록 들으며 인생을 더 곱씹고 반추해 내었으면 참 좋겠다.
고향 산촌에서 맞이하는 또 한 번의 새해, 소 같은 마음으로 올 한 해를 살아볼 참이다.
소처럼 우직하고 어리석게, 좀 밑지는 장사를 하며 살아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언제 보아도 새롭고 정다운 고향 산을 바라보며 맞이하는 또 한 번의 새해, 새해엔 황소 같은 마음으로 산촌을 마주 보며 변함없이 사랑하고 인내하는 또 한 해를 살아 보련다.
산촌에서 가진 것은 없지만, 소처럼 어진 눈, 엄숙한 뿔, 슬기롭고 부지런한 성품으로 살아보련다. 올 한해 어려운 농촌살림이 되겠다는 암울한 소식이지만 황소장세를 고대하며 새해를 맞이해본다.
덧붙이는 글 | 다음카페 '북한강이야기' 윤희경 수필방과 농촌공사 웰촌포탈 전원생활, 북집네오넷코리아, 정보화마을 인빌뉴스에도 함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