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한해가 저물었다. 365일전 1월 1일에는 희망과 가득한 소망을 가지고 한해를 시작한 것 같은데 막상 한 해를 뒤 돌아 보니 딱히 이렇다 할만 성과는 없었던 것 같다. 뭐 그렇게 큰 성과를 남기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큰 탈 없이 한해를 마감했으니 그럭저럭 만족할 일이다.
성과라고 한다면 지난 1년간 아내가 '사는 건 하층인데 입맛은 고급'이라는 타박을 일 년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면서도 나름대로의 식도락을 즐겼기에 이것만큼은 지난 한 해 동안의 성과라면 성과일 듯싶다. 31일, 무자년 마지막 날이니 제 버릇 남 주지 못한다고 그 즐거움을 다시 한 번 맛보고 싶었다.
싱싱한 수산물이 철마다 나오는 시흥시 '오이도'포구
하늘, 땅, 바다에서 나는 먹거리 중 개인적으로 즐기는 건 단연 물에서 나오는 먹을거리다. 그중 바다생선을 특히 즐기는 편이다. 바로 '생선회'다. 그렇게 즐기는 생선회 중에서 가장 선호하는 건 '병어회'다.
깻잎에 싼 병어회 한 점을 초고추장을 묻혀 마늘과 쌈을 싼 후 한입 깨물었을 때 입안 한가득 전해오는 그 담백한 생선 맛은 결코 놓칠 수 없는 식도락의 일미이기 때문이다.
병어는 성질이 급해 '치'자 생선에 속하는데 남도 쪽에서는 병어를 '병치'라고 부른다. 갈치 멸치 삼치 등 소위 성질이 급한 생선에 붙는 '-치'로 끝나는 생선이니 그 급한 성질을 익히 알 수 있을 터.
개인적으로 전국을 숱하게 돌아다녔지만 싱싱한 병어를 가장 싼 가격에 살 수 있는 곳 중 한곳이 바로 오이도가 아닌가 싶다. 그것도 남도땅 저 먼 곳에 있는 포구가 아닌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에서 고작해 십수분 거리에 있는 작은 포구가 바로 오이도이니 더 이상 바랄게 없는 셈이다.
보리누름이라 칭하는 5~6월 먼 바다에 있던 병어들이 산란철을 맞아 경기만으로 몰려올 때 이곳 오이도 포구도 병어가 지천에 널리곤 한다. 더구나 놀라운 일은 병어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사가지고 곧 바로 썰어서 그 싱싱한 살아있는 맛을 볼 수 있다는 데에 있다.
병어가 성질이 급하다고는 하지만 서너 시간은 살아있는 관계로 산지인 이곳 오이도에서는 살아있는 병어의 맛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봄에는 병어잡이 배에 동승해 살아있는 병어를 건져 올리는 어부의 생생한 그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적 있다.
어쨌든 이처럼 경기만에 몰려오는 각종 생선들이 팔려나가는 곳이 바로 오이도 포구다. 봄이면 꽃게, 광어, 병어로 시작해 가을이면 전어가 지천이요, 그 이외에 아귀, 서대, 주꾸미, 낙지 등 서해안에서 나는 온갖 갯것들을 맛 볼 수 있는 곳이기에 지난 한해 식도락을 위해 자주 찾았던 곳이기도 하다.
'해넘이' '해맞이' 준비로 바쁜 오이도 포구에는 싱싱한 해산물이 한 가득
무자년 해넘이와 기축년 해맞이 준비로 바쁜 오이도 포구에서는 한해가 저물어가지만 바쁜 손놀림이 여전했다. 오후 4시경 무렵이었다. 오이도 어촌계와 시흥시청에서 준비 중인 해넘이 축제준비 모습을 대충 둘러본 후 서둘러 수산시장 뒤쪽에 자리 잡은 좌판으로 향했다.
해넘이 축제를 지켜보기에는 시간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오이도 포구 인근에 있는 옥구공원에 들러 지난 2년간 시민기자로서 활동했던 시흥시청에서 발간하는 뷰티플시흥 2월호에 마지막으로 내보낼 '조각공원'관련 기사를 취재하고 넘어오는 길이었다.
막 도착했을 즈음 시장 좌판에는 오후 물때에 맞춰 물칸 한가득 잡아온 각종 수산물들을 소비자들에게 파느랴 분주한 모습이 펼쳐지고 있었다. 하지만 쌀쌀한 날씨 탓인지 그리 많은 사람들이 이곳 좌판을 찾지는 않는것 같다.
평소 보다 수산물이 많은 것 같았지만 좌판이 펼쳐지고 있는 이곳은 사람들의 발길이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옷깃을 사정없이 파고드는 추운 날씨 탓인 듯하다.
이제 막 배들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있는 듯 했다. 오이도 포구는 서해안에 위치한 포구인 탓에 물때에 맞춰 배가 들어오기 때문에 좌판이 열리는 시간은 일정치 않다. 조석간만의 차가 크기 때문에 보통은 시화방조제 중간쯤에 위치한 '중간선착장'에 배를 묶고 그곳에서 고기를 하역한 후 1톤 봉고트럭 뒤 칸에 커다란 물통에 고기를 담아서 10여분 거리인 이곳으로 옮긴 후 판매를 한다.
주로 선장내외로 이루어진 이곳 200여호 남짓 어촌계 어부들은 자신들이 직접 잡아온 온갖 고기를 도매상으로 넘기든지 아니면 이곳 좌판에서 관광객들을 상대로 직접 판매해 꽤 짭짤한 수입을 올린다.
열대여섯 분의 아주머니들이 오늘 장사를 시작하려는 준비에 분주하다. 가장 먼저 들어온 배에서 내려놓은 듯 늘어놓은 고기들의 신선도는 여전하다. 빨간 물통에는 살아있는 작은 농어들의 양이 유난히 많다.
단골로 찾는 노부부가 판매하는 좌판대 에도 각종 고기가 그득하다. 이들 노부부는 원래 자신들이 바다로 나가서 고기를 잡아 생계를 꾸려왔지만 지금은 두 아들들이 고기를 잡고 있다고 했다.
아들들이 잡아온 고기를 이들 노부부는 이곳 좌판대 에서 파는 등 그 역할을 나누어서 맡고 있는 것이다. 가까이 다가가자 눈에 띄는 생선이 바로 보인다. 바로 광주리 한가득 담겨있는 큼지막한 자연산 광어였다.
"광어는 얼마에요?"
"세 마리에 만원..."
회로 썰어먹을 거라는 주문에 주인 아주머니는 광어 아가미를 이리저리 열어보고는 그중 세 마리를 골라서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건넨다. 이거 세 마리면 오늘은 더 이상 다른 생선이 필요 없기에 다른 생선은 흥정을 하지도 않고는 곧 바로 자리를 떴다. 세 마리면 회로 썰고 매운탕을 끓여 낸다면 더 이상이 생선은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곧바로 만 원짜리 한 장을 건네고 받아든 검은 비닐주머니에 담은 생선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 지지난 주에도 이 시간대에 이곳을 찾아서 농어 2kg은 훌쩍 넘는 것을 만 원짜리 한 장에 사간 적이 있다.
물론 살아있는 농어가 아닌 죽은 지 얼마 안 된 '선어'다. 하지만 겨울철이고 하니 판매 하시는 아주머니들에게 미리 횟감으로 썰어 먹는다고 말하면 그중 싱싱한 걸로 건네주기 마련이다. 이렇게 구입한 생선은 직접 회를 썰 자신이 없으면 바로 옆에 위치한 고기만 횟감으로 썰어주는 가게에 맡겨도 된다. 한 접시에 5천원이니 그리 비싼 가격은 아니다.
무자년 마지막 날은 입에 또 한 번 호사를 하게 되었다. 사가지고 온 광어중 한 마리를 골라 제법 큼지막하게 회를 썰었다. 네 쪽으로 포를 떠 나온 광어살중 그 두쪽만 가지고도 접시 한 가득이다. 남은 광어살로는 전을 부치려고 마음 먹는다. 광어전은 그 이상 고급 반찬이 없다. 원래 예전 양반가에서는 잔칫날 '동태전'이 아닌 '광어전'으로 날을 치렀다고 한다.
흰살생선으로 광어 이상 가는 생선이 없을지니 회로 먹고 찌개로 먹고 또 남은 살로는 냉동실에 넣어 놨다가. 계란노른자위 묻혀 전으로 붙여내면 식탁을 또 한 번 풍성하게 만들 테니 말이다.
어쨌든 만원 한 장에 큼지막한 광어 세 마리 이 정도면 무자년 마지막 날 횡재한 것 아니겠수? 뭐 댁도 횡재 하고 싶다면 고기가 많이 나오는 바다물살이 빠른 '사리'물때에 맞춰 오후 네다섯 시쯤 오이도 수산시장 뒤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될 일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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