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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직장에서 5년 동안 썼던 두툼한 명함 집, 새로운 사람들 것으로 채워 갈 자신이 있다. 왜냐면 나는, '술과 노래 사람, 그리고 글쓰기를 사랑하는 여자'니까.
전 직장에서 5년 동안 썼던 두툼한 명함 집, 새로운 사람들 것으로 채워 갈 자신이 있다. 왜냐면 나는, '술과 노래 사람, 그리고 글쓰기를 사랑하는 여자'니까. ⓒ 조혜원

'백수'가 된다는 것. 누구한테나 두려운 일일 테다. 나도 그랬다. 그래서 늘 마음 속에 이런 희망을 품고 일을 해왔다.

'옮길 곳을 정하지 않고는 아무리 힘들어도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다.'

하지만, 어디 사람 일이 마음먹은 대로 되나. 지난해 9월 말, 5년 동안 정 담뿍 들게 일했던 직장을 어쩔 수 없는 까닭으로 그만두면서, 마음 속 그 희망은 결국 이뤄내지 못했다. 갈 곳 없는 백수가 된 것.

나도 백수가 되고싶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백수가 된 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걱정부터 했다.

"왜 하필 이런 때에!"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로 경제는 갈수록 바닥을 친다는 지금, 너무 힘든 길을 택한 것 아니냐는 말들을 아주 잔뜩 들어야만 했다. 그런데 이를 어쩌지? 뜻밖에도 백수로 지낸 몇 달이 참 마음에 들어서, 그들의 걱정에 제대로 응답해 줄 수가 없으니 말이다.

"나? 괜찮아, 잘 지내. 진짜야. 회사 다닐 때보다 오히려 더 바빠. 집에서 편히 뒹굴 시간도 없다니까."

조그만 회사 전전하며 10년 가까이 직장 생활하다 보니 백수로 살아본 적, 당연히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다만 그 때와 달라진 게 있다면, 무척이나 즐겁고 신나게 보내고 있다는 사실! 전 같으면 하루라도 빨리 일자리를 구하려고 아등바등하거나, 아예 포기하고 비디오건 책이건 집에서 뒹굴며 보고 있거나 둘 가운데 한 길을 걸었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운이 좋은 건지 다시금 먹고 살 궁리를 덜어줄 일자리를 어느새 만나기는 했는데.

백수의 일기장 같은 오마이뉴스  백수로 보낸 시간들은 내 마음에 추억으로만 남아 있는 건 아니다. 모두 <오마이뉴스>에 고스란히 '기사'로 살아 있다.
백수의 일기장 같은 오마이뉴스 백수로 보낸 시간들은 내 마음에 추억으로만 남아 있는 건 아니다. 모두 <오마이뉴스>에 고스란히 '기사'로 살아 있다. ⓒ 조혜원

이번에 회사를 그만두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이랜드 일반노조 월드컵분회 노래패 '비상' 만들기였다(지금은 홈플러스 노조 노래패로 바뀌었지만…). 시간이 생기면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일이다.

직장 다니면서도 끈끈한 관계를 이어왔던 이랜드노조 언니들이랑 그렇게 '비상'을 만들고나서는 시간 될 때마다 상암 천막농성장을 들락거렸다. 그러다보니 이랜드 파업투쟁이 마무리되는 모습을 죽 옆에서 지켜보는 뜻밖의 경험까지 하게 됐다.

시간이 생기니까 저절로 발동한 오지랖은 기타 만드는 콜트콜텍 노동자들 앞으로도 나를 이끌었으니. 백수가 아니었으면 절대 만날 수 없었을 그분들, 대전 콜텍 공장까지 찾아가서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어디 그 뿐인가. 서울 교육청의 만행으로 파면된 구산초 정상용 선생님의 출근 투쟁도 가까이서 함께 치를 수 있었다. 회사를 다녔다면, 내가 어떻게 오전 8시에 구산초 앞으로 피켓을 들고 갈 수 있었겠으며, 그렇게 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글을 써서 <오마이뉴스>에 보낼 수 있었겠는가. 

직장인이었으면 절대 겪지 못했을 행복한 시간들

이 시간들은, 그리고 여기에 굳이 쓰지 않은 또 다른 많은 경험들은 내 마음에 추억으로만 남아 있는 건 아니다. 모두 <오마이뉴스>에 고스란히 기사로 살아있다.

<오마이뉴스>에 내가 쓴 기사를 잠시 살펴보는데 백수가 된 뒤로 남긴 글만 11개나 된다. 2001년 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가입한 뒤 지금까지 쓴 기사가 모두 24개라는 걸 보자면 이 짧은 시간에 내가 얼마나 즐겁게, 열심히 살았는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나는 겪은 일 가운데 쓰고 싶어서 견딜 수 없는 글, 그 가운데서도 꼭 여럿과 나누고 싶은 글을 <오마이뉴스>에 보내곤 했으니 그러고 보면, <오마이뉴스>는 내 백수 생활 3개월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일기장' 같은 존재가 된 것도 같다.

이렇게 지내다 보니 백수 생활 3개월을 꽉 채운 지금도 일을 구하지 못해 힘들거나 답답한 마음이 거의 들지 않는다. 왜? 돈벌이를 제대로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실업 급여 받아가며 굶어죽지는 않을 만하고, 직장인이었으면 절대 겪지 못했을 행복한 시간들을 내 방식대로 알차게 채워가고 있으니까.

대통령 잘못 만난 경제는 갈수록 바닥을 친다고 난리고, 서민들은 그저 살아남게만 해달라고, 청년 실업자들은 일자리만 구해달라고 울부짖는 이 때 이런 내 마음 상태가 너무 태평한 건 아닌지 아주 잠깐이지만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아주 잠깐에 그치고 마니, 이건 도대체 무슨 배짱이란 말인가.

얼마 전, 오랜만에 집에 있을 시간이 되기에 책상 정리를 했다. 몇 년 만에 해 본 건지 모른다. 지저분한 책상을 몇 시간에 걸쳐 정리하다가 까마득히 잊고 있던 '명함' 하나를 찾아냈다. 스물한살 즈음 삐삐회사에서 공짜로 해준다기에 만든 명함이었다. 명함 오른쪽 위에 '술과 노래,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는 여자'라는 작은 글자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아마도 자기를 가장 잘 표현하는 짧은 문구를 쓰는 자리였던 듯.

술과 노래,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는 여자  술과 노래,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는 여자라는 내 정체성은 지금이나 스무 살 때나 변함없다.
술과 노래,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는 여자 술과 노래,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는 여자라는 내 정체성은 지금이나 스무 살 때나 변함없다. ⓒ 조혜원

술과 노래,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는 여자

그 문장을 딱 보는데 처음엔 좀 놀랐다가 나중엔 아주 흐뭇해 죽는 줄 알았다. 술과 노래,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는 여자라는 내 정체성은 지금이나 그 때나 변함없으니 말이다. 지금보다 십년도 더 전인 그 때 어쩌면 그렇게 내 자신을 잘 파악하고 있었는지 스스로가 대견하기까지 했다. 모르긴 몰라도 저 정체성은 앞으로 내 나이 쉰·예순이 되어도 절대 바뀔 것 같지 않거든.

그렇게 흐뭇한 마음을 안고 잠시 마음을 가다듬는데 퍼뜩 떠오르는 생각 하나! 백수인 주제에 둘레 사람들한테 "나 지금 진짜로 잘 지내, 일자리? 걱정 안 해, 어떻게든 잘 될 거야, 난 늘 그래왔어,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그렇게 걷다보면 어느새 마음에 닿는 곳을 만났거든, 이번에도 아마 그렇게 될 거야"하고 자신있게 말했던 그 지나친 배짱의 근거를 알겠는 거다.

바로 스무 살 때부터 한 번도 바뀐 적 없는, 술과 노래,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는 그 마음이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니, 예전에 내가 썼던 이력서 내용들도 슬금슬금 생각이 나기 시작한다. 

"술과 노래 그리고 춤을 좋아합니다. 잘 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내 삶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을 통해 내 삶을 표현하고 가꿔간다는 점에서 음주가무는 내 삶 그 자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기타 치며 노래할 때 커다란 행복을 느낍니다."

사회생활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이력서 쓸 때마다 '성격'이나 '인생관' 란 제일 첫머리에 남겼던 저 글. 십 몇 년 전에 삐삐회사에서 만들어 준 저 명함 내용이랑 너무나 통하지 않는가.

그렇게 스스로 내 배짱의 근거를 만들고 나니 이젠 그 배짱이 더 두둑해져 버렸다. 하물며 지금 나한텐 새로운 정체성 하나가 늘기까지 했으니, 바로 '글쓰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지금 비록 '소속'을 알리는 명함은 없지만 '술과 노래 사람, 그리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여자'라는, 평생 간직하고 살 그 정체성만 있으면 어떤 삶도, 일자리도 너끈히 받아낼 수 있을 것만 같다.

나의 새로운 정체성, 글쓰기

내 명함만 담아 두던 나무 명함집  지금은 쓰지 않아 고무줄로 묶어 놓은 나무 명함 집. 고무줄을 풀고 새로 넣게 될 명함은 과연 어떤 것이 될까?
내 명함만 담아 두던 나무 명함집 지금은 쓰지 않아 고무줄로 묶어 놓은 나무 명함 집. 고무줄을 풀고 새로 넣게 될 명함은 과연 어떤 것이 될까? ⓒ 조혜원
2009년 1월로 백수 4개월차가 된 나. 실업급여가 평생 나오는 것도 아니고, 경제활동이 가능한 노동자로 살아갈 준비를 이제는 제대로 시작해야만 할 것이다.

노동의 가치는 (마음을 풍만하게 해주는) 보람과 (먹고 살아갈 수 있을 만큼의) 돈 두 가지를 모두 만족시킬 때 제대로 발현될 수 있는 걸 테니까.

하지만 새해를 맞아 10년 전 선견지명을 새삼스레 발견한 지금, 나는 일자리 찾으러 떠나는 길도, 조금 더 백수로 살아갈 시간도 그다지 두렵지 않다.

5년 동안 썼던 두툼한 명함집, 새로운 사람들 것으로 채워 갈 자신이 있다. 내 명함만 고이 담아두었던, 지금은 쓰지 않아 고무줄로 묶어 놓은 나무 명함 집도 물론이고.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오느냐고? 나는, '술과 노래 사람, 그리고 글쓰기를 사랑하는 여자'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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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실업#일자리#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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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기타 치며 노래하기를 좋아해요. 자연, 문화, 예술, 여성, 노동에 관심이 있습니다. 산골살이 작은 행복을 담은 책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를 펴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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