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원망의 눈초리
.. 나와 자전거는 본의 아니게 원망의 눈초리를 받고 말았다 .. 《김세환의 행복한 자전거》(헤르메스미디어,2007) 41쪽
“본의(本意) 아니게”는 “뜻하지 않게”나 “나도 모르게”로 손봅니다.
┌ 원망(怨望) : 못마땅하게 여기어 탓하거나 불평을 품고 미워함
│ - 원망의 눈초리 / 원망에 찬 얼굴 / 원망을 사다
│
├ 원망의 눈초리를 받고 말았다
│→ 원망스런 눈초리를 받고 말았다
│→ 미운 눈초리를 받고 말았다
│→ 밉살스러운 눈초리를 받고 말았다
└ …
미움을 받았다는 소리입니다. 못마땅해 하는 눈길을 받았다는 이야기고요. 이런 느낌을 살리며 보기글을 다시 쓴다면, “나와 자전거는 뜻하지 않게 바늘방석에 앉고 말았다”라든지 “나와 자전거는 뜻밖에도 가시방석에 앉은 꼴이 되었다”쯤으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나와 자전거는 내 뜻과 달리 따가운 눈초리를 받고 말았다”나 “나와 자전거는 어느새 따가운 눈초리를 받고 말았다”로 다시 써도 잘 어울립니다.
┌ 원망에 찬 얼굴 → 미움에 찬 얼굴 / 못마땅해 하는 얼굴
└ 원망을 사다 → 미움을 사다
국어사전에도 “원망의 눈초리”가 실려 있습니다. 아예 국어사전은 ‘원망 + 의’를 쓰라고 부추기는 셈입니다. 우리들은 한자말 ‘원망’을 쓰고 싶다면 쓰고, 그대로 두고 싶다면 그대로 둘 수 있지만, ‘원망하는’이나 ‘원망스러운’이나 ‘원망이 가득한’처럼 적어야 알맞아요. 알맞게 쓸 말투는 알맞게 추스르면서 한자말 ‘원망’을 넣어야 합니다.
아니면, 한자말 ‘원망’을 탁탁 털어내고 ‘미워하는’이나 ‘못마땅해 하는’이나 ‘싫어하는’ 같은 토박이말을 넣어 줍니다.
ㄴ. 원망의 눈길
.. 이사 얘기가 나오자 지혜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원망의 눈길로 제게 말했습니다 .. 《탁광일-숲과 연어가 내 아이를 키웠다》(뿌리깊은나무,2007) 15쪽
‘이사(移徙)’는 ‘집 옮긴다는’이나 ‘집 옮기는’으로 다듬습니다.
┌ 원망의 눈길로
│
│→ 미워하는 눈길로
│→ 밉다는 눈길로
│→ 못마땅하다는 눈길로
│→ 못마땅해 하는 눈길로
│→ 싫다는 눈길로
└ …
얼굴빛이 달라지지 않으면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여느 사람들은 자기 느낌이나 생각이 자기 얼굴에 서리기 마련입니다. 좋다면 좋다는 느낌이, 싫다면 싫다는 느낌이 얼굴에 깃듭니다. 반가우면 반갑다는 느낌이 스치고, 못마땅하다면 못마땅하다는 느낌이 감돕니다.
입으로 말하지는 않아도 눈으로 얼굴로 몸짓으로 말합니다. 입으로 읊지 않아도 눈으로 얼굴로 몸짓으로 이야기합니다. 입으로 생각을 나타내지 않아도 눈으로 얼굴로 몸짓으로 생각을 드러냅니다. 따뜻함이 그대로, 차가움이 고스란히, 넉넉함이 꾸밈없이, 쌀쌀맞음이 남김없이 드러납니다.
┌ 달갑지 않다는 눈길로
├ 반갑지 않다는 눈길로
└ …
말 한 마디 애써 꺼내놓을 때 좀더 따뜻하면 좋으련만, 좀처럼 따뜻함을 담지 못하는 우리들이 아니랴 싶습니다. 가만히 보면, 따뜻함뿐 아니라 알맞고 손쉽고 곱게 여미어 내는 말과 글을 나눌 수 있을 텐데요.
글 한 줄 애써 쏟아낼 때 좀더 넉넉하면 좋으련만, 어인 일인지 넉넉함을 싣지 못하는 우리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찬찬히 살피면, 넉넉함뿐 아니라 즐겁고 반갑고 고맙게 엮어 내는 말과 글을 선사할 수 있을 텐데요.
┌ 짜증스럽다는 눈길로
├ 짜증만 난다는 눈길로
├ 짜증이 가득한 눈길로
└ …
말에 담기는 삶이기 때문에, 우리 삶을 튼튼하고 빛접게 꾸리지 않는다면 말 또한 튼튼하거나 빛접을 수 없습니다. 나 혼자만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생각이라면, 말이고 글이고 나 하나만 생각하는 말과 글이 되고 맙니다.
글에 실리는 삶이기 때문에, 우리 삶을 싱그럽고 아름답게 북돋우지 않는다면 글 또한 싱그럽거나 아름다이 손볼 수 없습니다. 나 하나만 배부르고 내 밥그릇만 챙기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라면, 글이고 말이고 아무렇게나 지식 자랑을 하면서 콧대가 높아지는 글과 말이 되어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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