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순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오늘 하루도 무사히 끝냈다' 라는 안도감?
나의 개인적인 일과 삶이 있건만, 나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참가하게 된 2008년 남극 마라톤. 더욱이 나 자신보다 남의 안전을 먼저 챙겨야 하는 상황에서의 하루 하루 레이스.
'나는 결코 천사가 아니다. 아니, 그렇고 싶지도 않다.' '내가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고 있나?' 라는 물음을 내 자신에게 수도 없이 던졌다.
사람이 살다보면, 인생에 있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슨 일인가 해야만 할 때가 생긴다.
그럴 때 만약 그것이 나쁜 짓만 아니라면 역으로 그냥 즐기는 것도 고난을 헤쳐나가는 길 일 수도 있다.
남에게 잘 보이려 포장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이 더욱 정정당당하다. 다시 한번 말한다, 나는 결코 천사가 아니다. 단지 나에게 주어진 임무를 최선을 다해 수행했을 뿐이다.
그런데 마음을 비워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남의 즐거움이 나에겐 더욱 커다란 즐거움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 스테이지 3를 마친 후의 일기 중에서
아무런 계획에도 없던 또 한번의 남극 레이스
나의 12번째 오지 레이스는 계획에도 없이 어느날 갑자기 찾아왔다(남극 마라톤 대회는 2008년 11월 24일부터 12월 4일까지 펼쳐졌다 - 편집자 주). 그리고 대회가 끝난 후 한 달간 망가진 무릎 인대 재활 치료와 자외선에 노출되어 팍삭 노화된 피부 재생으로 시간을 보내야 하는 후유증을 남겼다. 무슨 이유인지 현지에서 이틀간 잃어 버렸던 오른쪽 눈의 시력은 완전히 정상을 찾아서 다행이다.
남극은 분명 낭만이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남극은, 오고 가는 길이 너무 힘들고, 작년 대회 때 경험한 고생과 스트레스로 인해 일반 사막 레이스와는 다르게 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별로 안 드는 곳이다.
더욱이 이번의 경우, 3주간의 시간을 비우는 부담은 기본이고, 시각장애인 송경태님의 도우미로 모든 과정을 책임져야 하는 또 다른 부담감 때문에 선뜻 나서고 싶지가 않았다. 물론 작년에 갔다 왔으니 굳이 내가 가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도 동기 유발이 안 되는 첫번째 문제였다.
그래도 100% 완벽할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처음부터 마무리까지 임무 수행 완료. '다행이다'라는 말로 스스로 위로한다.
갑자기 결정된 참가, 그리고 사하라 사막 레이스 마치고 급작스러운 준비 후 2주만에 떠난 장거리 여정이라 피로가 2중 3중으로 밀려온다. 내 몸이 무슨 용가리 통뼈도 아니고 이젠 완전 파김치다. 대회가 끝난 후 지금까지 오로지 잠자고 먹고 쉬어야 한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벌써부터 쇄도하는 해외 대회 주최측들의 2009년 참가 요청에 답변을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가 아프다. 일단 이번 주까지 무조건 쉬자, 그리고 생각하자.
바보야,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휴식이란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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