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을 친환경 재배하고, 단순히 포장지만 바꾸면서 그 우수성을 강조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이젠 농업도 농산업(Agro-Industry)으로 바뀌고 과학적 농산업 경영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전라남도 곡성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농산가공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농학박사 이동현(40·곡성군 곡성읍 장선리)씨의 얘기다. 제품의 질은 물론 가격과 가치에 합당한 과학적 자료를 제시하는 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농사경력도 중요하죠. 제품의 질도 물론 좋아야죠. 그러나 생산과 가공·유통과정에 대한 과학적 자료가 뒷받침돼야 합니다. 종자 선택에서부터 논 관리, 수확, 건조, 도정 그리고 보관, 가공에 이르기까지 모든 자료가 축적된 믿을 수 있는 제품만이 앞으로 경쟁에서 살아남을 것입니다.”
그의 얘기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농사이론으로 무장된 농학박사의 말이어서가 아니다. 현장에서 직접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이면서 부단한 연구·개발을 통해 가공과 유통산업에 뛰어든 농산업 경영자이기 때문이다.
이씨가 섬진강변에 둥지를 튼 건 지난 2006년 3월. 그 동안 배운 지식을 토대로 직접 농사를 지으며 농업과 농촌에 희망을 불어넣겠다는 결심을 하면서다. 아토피 피부염으로 고생하던 둘째 아이도 그의 귀농을 독촉했다.
순천대학교와 서울대학교에서 농생물학 학사·석사 학위를 받고 일본 큐슈대학교에서 생물자원개발관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농학박사였기에 주변사람들이 의아해 한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귀농이후 잠자는 시간을 빼곤 논밭과 연구실에서 살다시피 했다.
지금은 3㏊에 적미와 녹미, 흑향미, 발아현미, 찹쌀현미 등 다섯 가지 색깔의 오색미를 재배하고 있다. 지역농업인들이 생산한 유기농쌀을 사들여 판로도 찾아주고 있다.
농촌진흥청 작물과학원과 함께 300여 종의 벼를 시험재배하며 지역에 알맞은 기능성 벼를 선발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그 결과 지난해 1차로 친환경 재배와 발아현미용으로 적합한 30여 종을 찾아냈다.
그가 쌀을 2차 가공해 만들어낸 ‘발아현미’는 일반 현미에 적정한 수분과 온도, 산소를 공급해 1∼5㎜정도 싹을 틔운 쌀로, 현미의 영양과 기능을 극대화시킨 것이 특징.
현미의 영양소에다 옥타코사놀, 아라비녹살란, 감마오리자놀, 엽록소, 미네랄, 식이섬유 등이 더해져 기능성 식품으로 거듭났다. 혈압강하, 학습능력 향상, 아토피 피부염 개선, 혈당지수 저하 등에 효과가 커 ‘보약과도 같은 쌀’이다.
그는 이 발아현미를 삼색미, 오색미 등 12종으로 가공, 판매하고 있다. 쌀의 영양소를 그대로 유지하는 특수 저온건조법과 발아 때 생기는 시큼한 효소냄새를 제거하는 방법 등 새로운 기술도 개발, 적용했다. 이를 통해 식이섬유와 단백질, 칼슘 등 함량을 크게 높였다.
뿐만 아니다. 발아오색 떡(가래떡, 떡국떡, 절편, 꽃떡, 송편)과 분말(미숫가루, 선식)도 선보였다. 특히 발아오색 떡국떡은 유기농 쌀을 원료로 하고 특허출원중인 발아법을 적용해 엽록소가 집적된 기능성 쌀로 연두·주황·노랑·보라 등 다섯 가지 색의 떡국용 떡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것은 농협중앙회가 주최한 전국친환경농산물 품평회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소비자에게 안전성이 보장되면서도 맛 좋은 쌀 제품을 제공해야죠. 농업인들의 소득도 더 높일 수 있도록 연구·개발을 지속적으로 해나가겠습니다.”
이씨의 농업과 농촌에 대한 열정은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도시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며 농촌의 가치를 알리는 희망지기 역할도 하고 있다. 농촌에 희망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소비자가 누구보다 중요한 때문이다.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귀농일기를 쓰는 것도 이런 이유다.
농촌에 사는 농업인과 기업인, 공무원 등에 대한 교육과 산·학·연 교류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농사 지으며 연구·개발하랴, 여기저기 교육 다니랴 시쳇말로 눈코 뜰 새가 없을 정도다. 이 씨는 그 공로로 2007전남친환경농업대상, 2008자랑스런전남인상을 받기도 했다. 귀농 연착륙에 일단은 성공한 셈이다.
이씨는 “수입 농산물이 물밀 듯 밀려와도 토종 종자와 유기농 재배, 연구·개발을 통한 첨단기술과 농업의 접목을 통해 농업의 부가가치를 높이면 우리 농업과 농촌에도 희망은 있다”면서 “우리 농업인과 농업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농촌을 보람 있는 곳, 사는 재미가 있는 곳, 그리고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만들어 나가는데 일조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