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눈부신 존재였으나 혼자였다
.. 그러나 숲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나무가 필요했으나 톨스토이는 혼자였다. 눈부신 존재였으나 혼자였다 .. 《로맹 롤랑/장만영 옮김-톨스토이》(신구문화사,1974) 152쪽
“만들기 위(爲)해서는”는 “만들려면”이나 “이루려면”으로 다듬습니다. ‘필요(必要)했으나’는 ‘들었으나’나 ‘있어야 했으나’로 손봅니다.
┌ 눈부신 존재였으나 혼자였다
│
│→ 눈부신 톨스토이였으나 혼자였다
│→ 눈부신 사람이었으나 혼자였다
│→ 눈부시기는 했어도 혼자였다
│→ 눈부셨으나 혼자였다
└ …
사람이름 ‘톨스토이’를 한 번 더 쓰면 됩니다. “톨스토이는 혼자였다. 눈부신 톨스토이였다. 그러나 혼자였다.”처럼. 사람이름을 되풀이한다는 느낌이 들면 ‘사람’이라는 말을 넣으면 됩니다. 이렇게 넣는 일이 달갑지 않으면, “눈부셨지만 혼자였다”처럼 단출하게 쓰면 돼요.
ㄴ. 법과 질서가 존재하는 곳
.. 여자 둘이 사는 집이라고 만만히 봐선 곤란해. 엄연한 법과 질서가 존재하는 곳이다 .. 《기선-게임방 손님과 어머니 (1)》(서울문화사,2006) 57쪽
‘곤란(困難)해’는 ‘안 돼’로 손봅니다. ‘엄연(儼然)히’는 ‘버젓이’로 다듬어 줍니다.
┌ 법과 질서가 존재하는 곳이다
│
│→ 법과 질서가 있는 곳이다
│→ 법과 질서로 움직이는 곳이다
│→ 법과 질서를 지키는 곳이다
│→ 법과 질서를 따르는 곳이다
└ …
법이나 질서는 퍽 무게가 있고 딱딱합니다. 때때로 무섭기까지 합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있다’라 하기보다는 ‘존재한다’라는 말을 써야 어울린다고 느끼는구나 싶어요. 규칙이나 법칙이나 규정을 가리킬 때에도 ‘있다’보다는 ‘존재한다’가 자주 쓰입니다. 아무래도 우리 말을 너무 한쪽으로만 바라보거나 느끼거나 받아들인다고 해야겠지요.
보기글에서는 먼저 ‘있다’라는 말로 다듬습니다. 다음으로, 뜻을 살려서 ‘움직이다’이든 ‘지키다’이든 ‘따르다’를 넣고 토씨를 고쳐 봅니다. “법과 질서가 있는” 곳이라면,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법과 질서를 지킨다”거나 “법과 질서를 따른다”고 할 수 있어요. 이런 곳은 “법과 질서로 움직인다”고 해도 어울립니다.
조금 길어지지만, “법과 질서에 따라 사는 곳”이라고 풀어도 괜찮습니다. 말굴레 하나만 벗어던지면, 저마다 자기 말씨나 느낌을 한껏 살릴 수 있습니다.
ㄷ. 시효 따윈 존재하지 않아요
.. 피해자의 마음엔 시효 따윈 존재하지 않아요! .. 《히데키 아키야마/김영신 옮김-곤충감식관 파브르 (4)》(서울문화사,2006) 52쪽
“피해자의 마음”은 “피해자 마음”이나 “피해입은 사람 마음”으로 풀어 보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어머니의 마음”보다는 “어머니 마음”으로, “사랑의 마음”보다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쓰면 한결 낫다고 느낍니다.
┌ 시효 따윈 존재하지 않아요!
│
│→ 시효 따윈 있지 않아요!
│→ 시효 따윈 없어요!
│→ 시효 따위가 어디 있어!
└ …
있지 않으니 ‘없’습니다. 없기 때문에 “어디에 있느냐”고 따집니다. 이 자리에서는 “시효 따윈 있을 수 없어요!”라든지 “시효 따위가 무슨 말이에요!”라든지 “시효 따위가 있으리라 생각해요?”라든지 “시효 따윈 아무 쓸모가 없어요!”처럼 써 보아도 퍽 어울립니다.
┌ 시효 따윈 있을 수 없어요!
├ 시효 따윈 생각할 수 없어요!
├ 시효 따윈 있을 턱이 없요!
└ …
느낌을 살리면서 말투를 조금씩 손봅니다. 많이 아프고 힘들 때에는 많이 아프고 힘들다는 느낌을 담으면서 말투를 가다듬습니다. 그지없이 괴롭고 버거울 때에는 그지없이 괴롭고 버겁다는 느낌을 실으면서 말투를 추스릅니다. 아픔은 아픔 그대로 담고, 눈물은 눈물 그대로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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