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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일요일(1월4일)은 유성오일장이었다. 작정한 건 아니었지만 늦은 점심을 먹고 배낭을 둘러멨다. 날씨는 맑고 포근했다. 마침 동네에서 유성장까지 곧장 가는 마을버스가 있다. 대전시내버스노선이 전면 개편되어 중간에 시내버스를 갈아타는 경우였다면 장에 가는 길은 꽤나 번거로웠을 것이다.

 장날에 꼭 사오는 품목중에 하나. 묵이다. 묵파는 아주머니도 변함없이 꼭 그 자리에서 묵을 파신다.
 장날에 꼭 사오는 품목중에 하나. 묵이다. 묵파는 아주머니도 변함없이 꼭 그 자리에서 묵을 파신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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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치미와 순두부를 파는 곳에도 손님들 발길이 계속 이어진다.
 동치미와 순두부를 파는 곳에도 손님들 발길이 계속 이어진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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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저씨가 따뜻한 모자를 고르고 아주머니는 열심히 설명해준다.
 아저씨가 따뜻한 모자를 고르고 아주머니는 열심히 설명해준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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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여있으니 빛깔이 더 고운 고무장갑. 한 켤레 1,000원, 두 켤레 1,000원 짜리가 있다.
 모여있으니 빛깔이 더 고운 고무장갑. 한 켤레 1,000원, 두 켤레 1,000원 짜리가 있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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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 서는 날이면 가뜩이나 좁은 2차선도로가 더 복잡해진다. 차들이 다니는 길 한쪽에는 바구니마다 당근이며 달래, 버섯, 양파 등을 파는 아주머니들이 무릎담요를 걸치거나 스티로폴 박스에 앉아 장사를 한다. 따뜻한 날씨에 주말이어서 그런지 유난히 사람들이 많았다.

유성장이 설 때마다 길이 막히는 건 예삿일이다. 사람들은 급하게 서두르지 않는다. 장날이니까 그저 그러려니 한다. 이런 느긋함과 진한 생활현장을 만나고 싶다면 유성장에 와보시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동심에 젖는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힘을 얻고 위로를 받는다.

 늙은 호박, 엄나무, 식칼, 참게 ...모두 어디에서 와서 유성장에 모였을까요?
 늙은 호박, 엄나무, 식칼, 참게 ...모두 어디에서 와서 유성장에 모였을까요?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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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으로 들어서는 골목엔 과일이나 생선, 생필품 등 온갖 다양한 물건들이 손님들을 기다린다. 뜨끈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손두부는 더 먹음직스러워 보이고, 팥죽을 쑤는 아주머니 손놀림이 더 바빠지는 장날. 어려워진 경제 때문인지 사람들은 싸고 양이 많은 물건 등에 몰린다. 동네마트에서 한 개 2,400원 하는 단호박은 같은 값에 두 개를 사고도 400원이 남는다. 큼지막한 손두부 한모가 1,000원, 한바구니 가득한 시금치 한 근도 1,000원이다.

 멸치 한됫박을 사면 덤으로 따라오는 멸치도 솔찮히 많아요.
 멸치 한됫박을 사면 덤으로 따라오는 멸치도 솔찮히 많아요.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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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가지 골라 담아 한근에 무조건 3,000원! 다양한 맛을 즐겨봐요.
 여러가지 골라 담아 한근에 무조건 3,000원! 다양한 맛을 즐겨봐요.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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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을 세워놓고 직접 과자를 굽는 곳에는 사람들이 바구니 하나씩을 들고 서 있다. 김이 들어간 센베이, 두부과자, 밤만쥬, 꽈배기, 생강과자 등 종류별로 열 가지도 넘는 과자를 늘어놓고 마음대로 골라 담아 한 근에 무조건 3,000원에 살 수 있는 과자코너인 것이다.

 부부가 함께 일하는 '뻥튀기 아저씨네' 인기만점이에요.
 부부가 함께 일하는 '뻥튀기 아저씨네' 인기만점이에요.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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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곡물들. 이름표가 꽂혀있다.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곡물들. 이름표가 꽂혀있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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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곡물을 튀겨주는 ‘뻥튀기’ 아저씨네는 손님이 계속 이어진다. 아저씨는 일이 밀렸다고 서두는 법도 없다. 한 깡통(한방) 튀겨주는 데는 3,500원이다. 콩이나 쌀, 옥수수 말린 것이 수북이 담겨있는 깡통 속엔 이름표가 하나씩 꽂혀있다.

유성장의 뻥튀기 아저씨는 뻥을 맛나게 잘 튀기기로 소문이 났다. 충남 공주에서도 유성장의 뻥튀기 아저씨를 찾아온다. 부부가 같이 일하는 ‘뻥아저씨네’는 잠시라도 쉴 짬이 없다. 사람들은 자기 차례를 기다리면서 난롯가에 오종종 모여 사는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장을 보고 나면 배가 출출해진다. 단골 국밥집에 가서 다 먹을 때까지 따끈한 국밥을 먹어야 마무리가 되는 유성장. 난 이 국밥을 먹으려고 유성장에 갈 때도 있다.
 장을 보고 나면 배가 출출해진다. 단골 국밥집에 가서 다 먹을 때까지 따끈한 국밥을 먹어야 마무리가 되는 유성장. 난 이 국밥을 먹으려고 유성장에 갈 때도 있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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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어렵다고 다들 아우성이다. 신나고 희망찬 뉴스를 듣기는 참 어려운 시절이다. 새해는 기축년(己丑年)이 아니라 긴축년(緊縮年)이라는 말로 어려움을 표현하기도 한다. 사람들로 북적대는 유성장 한 가운데 있으니, 시장사람들의 기운이 왠지 모를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것 같다.  

“뻥이요~”

한 깡통 담았던 옥수수 알갱이가 ‘뻥이요~’ 하자마자 다섯 배 크기까지 부풀었다. 강냉이 ‘한 짐’ 짊어지고 가는 아주머니 얼굴이 환하다. 우리네 희망도 뻥처럼 커다랗게 부풀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sbs u포터에도 송고합니다.



#유성장#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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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가면을 줘보게, 그럼 진실을 말하게 될 테니까. 오스카와일드<거짓의 쇠락>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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