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웃들의 잔잔한 삶의 이야기를 전해주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인간극장을 보며 울고 웃습니다. 인간극장이 드라마나 영화와 다른 점은 서민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밀착 촬영하여 보여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극장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일상생활 모습은 평소의 모습 그대로 100% 리얼(real) 촬영일까요? 결론부터 말한다면 휴먼다큐멘타리라는 인간극장은 100% 리얼이 아닙니다.
요즘 1박2일이나 패밀리가 떴다, 무한도전 등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대한 대본 공개로 리얼리티 논쟁이 뜨겁습니다. 그러나 방송을 조금 아는 사람은 다 아시겠지만 예능 프로그램의 100% 리얼리티란 없습니다. 시청자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주기 위해 어느 정도 설정과 연출이 필요하다는 얘깁니다.
물론 모르고 보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이를 아는 사람들은 조금 유치하게 보이고, 뭔가 속는 느낌마저 들지 모릅니다. 방송 3사 예능 프로의 대본 공개후 '가짜 리얼리티에 속았다.'고 흥분하는 것은 방송의 속성을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뉴스 화면 촬영도 리얼리티도 있지만 미담기사나 기업 뉴스는 사전 협조하에 준비된 화면을 찍어서 내 보내는 세상인데, 예능 프로를 100% 리얼리티로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볼 때는 주인공의 일상 생활을 카메라가 따라 다니며 있는 그대로 촬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주인공의 일상생활을 아무 연출 없이 찍으면 인간극장 만들 수 없습니다. 너무 밋밋하고 재미와 감동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전에 작가, 카메라멘, 주인공 등의 협의 하에 촬영 내용을 정하고 그 계획에 따라 주인공이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것처럼 연출하는 것입니다.
인간극장 출연자는 방송국에 직접 제보에 의한 경우도 있고, 제작진이 섭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연예인의 경우는 대부분 제작진이 섭외를 하고 일반 사람들은 제보에 의해 출연합니다. 인간극장 홈페이지 게시판이나 전화나 편지로 사연을 보내면 작가와 섭외 담당자가 직접 주인공과 접촉하여 여러가지 전후 사정을 들어 보고 출연 여부를 결정 합니다.
이 과정에서 출연자를 자세하게 조사하지 못하면 작년 '사채부부' 파문처럼 출연하지 말아야 할 엉뚱한 사람들이 출연하기도 합니다. 최초 출연자 섭외과정부터 꼼꼼하게 챙겨야 한다는 겁니다.
출연자의 촬영에 따른 보수는 제가 방송쪽에 잠깐 일했던 3년전에 약 100만원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이 금액보다 더 올랐을 겁니다. 약 한달 정도 촬영을 하는데 비하면 너무 적은 액수라 생각됩니다. 물론 출연자는 돈을 바라고 찍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의 삶을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은 사람도 있고, 또 어려움을 호소하여 도움도 받고자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실제로 인간극장에 출연하여 도움을 받고 재기하는 주인공들도 많았습니다. 시청자들의 따뜻한 눈물이 온정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요즘 방송국에서 직접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은 뉴스나 생방송 토론 등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대부분의 프로그램들은 외주제작업체가 맡아 촬영, 편집까지 마쳐 KBS, MBC 등 방송국에 납품을 합니다. 인간극장을 제작하는 외주제작업체는 <제3비전>입니다. 최초 인간극장의 기획자는 <리스프로>라는 업체이며, 이 프로덕션이 '인간극장' 이름의 판권까지 소유하고 있습니다. 리스프로는 현재 제작에 참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제작업체 사장은 대부분 방송국에서 일하다 퇴직한 사람들이며 이들 업체는 통상 6개월 단위로 계약을 하고 있습니다. KBS의 인간극장 책임CP는 총괄적인 책임만 질뿐 제작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습니다. 외주업체에서 제작해온 프로그램을 보고 문제될 것이 있는지 없는지만 확인 후 방송에 내보내게 됩니다.
우리가 중국집 위생문제를 알고 나면 자장면 먹을 맛이 떨어지듯이 방송의 비밀을 다 알게되면 그만큼 방송의 감동은 떨어집니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되서는 안될 것이 인간극장 프로 하나를 만들기 위해 제작업체는 수많은 아이템 회의와 밤샘 작업을 하며 한달 동안 찍어온 화면 하나 하나를 가지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다큐 시리즈 하나를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제작진의 그런 땀과 노력으로 우리는 매주 인간극장을 보며 감동을 받습니다. 여기에 인간극장 시청자들의 성원이 더해져 감동은 더 크게 번져 갑니다. 감동은 나눌수록 더 커집니다. 바로 이것이 인간극장이 장수하면서 사랑을 받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패밀리가떴다, 1박2일, 무한도전 등의 예능 프로에도 작가가 있습니다. 작가가 할 일은 대본을 쓰는 것입니다. 물론 예능 대본은 드라마처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출연자가 그대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상황 설정은 해주어야 합니다. 유재석과 강호동 등 유명 MC들은 예능 프로에서 사실 대본이 필요치 않습니다. 특정 상황으로 리얼하게 전개해 나가달라고 하면 그대로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에겐 대본이 유명무실 합니다. 그러나 게스트 등 다른 출연자와의 호흡도 중요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상황설정과 어떤 내용으로 전개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라인 차원에서 대본은 필요합니다.
이러한 가이드라인조차 없다면 예능 프로는 중구난방으로 촬영이 되어 줄거리도, 핵심도 찾을 수 없습니다. 예능의 본질인 재미와 오락을 위한 최소한의 대본은 그래서 필요합니다. 물론 리얼리티 환상에 빠진 시청자들에겐 대본 공개로 불쾌한 감정이 있겠지만, 이젠 방송을 이해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