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살겠다 정말. 정부가 7달째 밀린 월급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도로를 점거하고 시위를 하는 사람들은 뿔이 나 있었다. 하지만 시위라고 해서 징소리 내고, 화염병 던지고, 과도한 선동으로 군중을 이끄는 모습은 전혀 없었다. 그들의 시위 방법은 단지 메시지를 적은 현수막을 세우고 도로 점거 하는 것일 뿐.
인적없는 길을 따라 심심한 라이딩 도중 차량들이 길게 늘어서 있는 것을 보았다. 사고일 거라 지레짐작하고 가 보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아예 도로 한 가운데 천막을 쳐 놓고 시위 중이었다. 이 때문에 차들은 옴짝달싹 하지 못하고 있었다. 과열 분위기는 아니었으므로 의도가 궁금해 넌지시 그 이유를 물어봤다. 시위대에서 비교적 젊은 층인 자넷(Janet)은 툭툭 끊어지는 영어로 속사정을 얘기했다.
도로 점거했는데 불평은 전혀 없네
"여기 사람들 모두 선생님입니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제각각이죠. 근데 정부에서 7달째 월급을 주지 않아 길거리로 나오게 된 겁니다. 돈이 없으니 생활은 점점 어려워져 가는데 정부가 제시한 약속은 계속 미뤄지고 있어요.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집단행동을 하는 수 밖에요."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도로를 점거하는 시위인데도 불구하고 갈 길 바쁜 멕시칸들이 전혀 불평이 없더라는 것. 우리나라 같으면 시위의 취지고 뭐고 쌍욕부터 나오거나 당장 경찰이 출동했을 터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경찰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일부 버스는 아예 그대로 차를 돌려 가기도 했다.
"이런 식이라면 시민들이 좀 짜증내지 않나요? 벌써 30분짼데."
“아뇨, 전혀요. 사람들도 모두 이 시위를 이해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렇게 불평없이 기다리는 거죠. 우리도 정부에 불만이 많지만 저 사람들도 정부에 대한 반감이 있거든요. 어지간히 약속을 안 지켜야지요. 시골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허울뿐인 정책만 늘어놓고 그걸 지키는 법이 없거든요."
하긴 멕시코시티 농민 시위를 보고 나서 며칠 안 있어 센트로에서 다른 시민단체의 시위행렬과 눈여겨 보진 않았지만 딱스코에서도 대규모 시위를 본 적이 있다. 최근 경제 패러다임이 급속히 변하는 멕시코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받는 계층의 허탈감을 달래지 못한 정부에 대한 불만이 폭주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대화를 나누다 갑자기 사람들이 도로를 막았던 돌과 장애물들을 한쪽으로 치우기 시작했다. 그래도 같은 시민들끼리 불편을 줄 수는 없어 한 시간에 한번씩 길을 열어준단다. 운이 좋으면 막힘없이 갈 수 있지만 도로를 막아놓자마자 도착한 차량은 속절없이 꼬박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다른 시민들도 정부에 반감이 있거든요"
그런데 아까 의문점에서 해결하지 못한 것. 이런 시위를 하고 있는데 아무도 이들을 제지하거나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없다. 정부나 하다못해 경찰들도 전혀 반응이 없고 언론도 오지 않는 이런 시위를 해서 얻을 수 있는 효과가 무엇일까.
"여론을 형성시키려고요. 하다못해 도로점거로 불편을 겪는 운전자들이 여기저기 상황을 알려줬으면 싶은데 다들 이해하고 넘어가는 분위기라 그마저도 쉽지 않네요. 신문사도 방송사도 아무도 오질 않고."
자넷은 축 늘어진 어깨를 들썩이며 방법이 없다는 투다. 최소한 이 시위에 대한 시간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경각심을 가질 만한 운전자들이 정부기관을 상대로 민원을 제기해야 될텐데 다들 이해만 하고 넘어가는 분위기인 것이다. 그러니 효과가 있을 리가 만무하다.
차라리 시내 중심에서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데 그마저도 이미 진행했는데 별 효과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황량한 도로 한 가운데서 벌이는 그들의 시위가 어딘지 쓸쓸하고 처량해 보였다.
시위 현장을 지나치는 교통수단은 딱 두 개다. 구급차와 자전거. 시위대는 두 번에 걸쳐 왔다간 나를 열렬히 환영해 주었다. 그리곤 자신들의 사진을 찍으라고 난리법석이다. 자신들의 소식이 좀 더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일 터.
그들이 정부와 이 문제를 잘 해결해 마음의 앙금을 털어낼 수 있을까? 약속은, 상대적 비교우위에 있는 강한 자들이 더욱더 지켜야 한다. 그것이 인간에 대한 기본 예의다. 나라를 위해 일하는 공무원임에도 나라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하는 그들의 안타까운 시위현장에서 다시 한 번 책임감 있는 정부의 자세를 생각해보게 된다.
'시위대여, 힘 내라!'
약한 자의 마음이 전해지는 안타까움을 뒤로 하고 바퀴를 돌리는 길엔 어느새 차들이 밀려 있었다. 한 시간의 기다림이 귀찮을 법도 한데 여전히 아무도 나와서 불평하지 않는다. 낮잠 자는 토끼 옆을 지나는 거북이처럼 자전거만 바람을 가를 뿐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현재 ‘광야’를 모토로 6년 간의 자전거 세계일주 중입니다.
저서 <라이딩 인 아메리카>(넥서스 출판)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 http://www.vision-trip.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