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ㄱ. 각질화되다

 

.. 바로 그 별빛에 유난히 반짝이던 조약돌들이 하나의 살아 있는 생명처럼 내 각질화된 감정의 언저리를 가끔씩 콕콕 찔러 오기 때문이다 ..  (엄광용) 《풀씨》 두 번째 책(1999.여름.) 29쪽

 

 “하나의 살아 있는 생명”은 “살아 있는 생명”이나 “살아 있는 생명 하나”로 다듬어 줍니다. ‘감정(感情)’은 ‘마음’이나 ‘느낌’으로 고쳐쓰고, ‘가끔씩’은 ‘가끔’으로 바로잡습니다.

 

 ┌ 각질화(角質化) = 각화

 ├ 각화(角化)

 │  (1) 척추동물의 표피가 경단백질인 케라틴으로 되는 일

 │  (2) 잎, 줄기, 열매 따위의 표피가 굳어지는 일

 ├ 각질(角質) : 파충류 이상의 척추동물의 표피 부분을 이루는 경단백질의 물질

 │

 ├ 내 각질화된 감정

 │→ 내 굳어 버린 마음

 │→ 내 딱딱해져 버린 느낌

 │→ 내 메말라 버린 마음밭

 └ …

 

 보기글을 쓴 분은 소설을 쓴다고 합니다. 이름이 낯익다 싶어서 살펴보니 어린이책도 쓴 분이로군요. 어린이책을 낸 분이 쓴 글이라, 이분 글을 곰곰이 떠올려 봅니다. 어린이책이었음에도 어린이 눈높이와 삶에 어울리거나 걸맞지 않는 낱말과 말투가 제법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어린이한테 읽힐 글을 넘어서, 어른들이 주고받는 글에서도 ‘어린이 생각’을 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어린이책을 쓸 때 마음을 쏟거나 바친다고 하더라도 얄궂을밖에 없는 말투가 튀어나오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여느 때 삶과 생각과 매무새에 따라서, 자기 스스로 더 마음을 바치는 자리에서도 달라지지 않으랴 싶어요.

 

 쉽지 않을 수 있지만, 글로 먹고사는 이라면 이 글을 쓰건 저 글을 쓰건, 늘 좀더 낮은자리에 머문다는 매무새로 이야기를 엮어야 하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자기가 쓰는 글을 어린이들이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학교 문턱을 밟아 보지 못한 할머니 할아버지 아주머니 아저씨가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차근차근 써내려 가야 하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배운 이들이 읽을 글이라는 생각을 접고, 지식 많은 이들이 어려움없이 알아들어 주겠거니 하는 생각을 버리면서, 고개 숙이는 마음결로 글을 써야 한다고 느낍니다.

 

 

ㄴ. 영속화하다

 

.. 근대 생산력의 진보는 기존의 생산관계를 영속화시키는 방향으로 복잡하게 뒤얽혀버리게 되었던 것이다 ..  《P.앤더슨/장준오 옮김-서구 마르크스주의 연구》(이론과실천,1987) 127쪽

 

 “생산력의 진보(進步)는”은 “생산력이 나아진 일은”이나 “생산력이 높아진 일은”으로 다듬을 수 있는데, 앞말과 묶어서 “근대에 높아진 생산력은”이나 “오늘날 늘어난 생산력은”으로 다듬어도 됩니다. “기존(旣存)의 생산관계”는 “그동안 이어져 온 생산관계”로 다듬습니다. ‘방향(方向)’은 ‘쪽’으로 손보고, ‘복잡(複雜)하게’는 ‘어지러이’로 손봅니다.

 

 ┌ 영속화 : x

 ├ 영속(永續) : 영원히 계속함

 │   -  젊음은 언제까지나 영속되지 않는다 / 영속하는 전통의 흐름

 │

 ├ 영속화시키는 방향으로

 │→ 굳혀 버리는 쪽으로

 │→ 굳어지게 하는 쪽으로

 │→ 오래 이어지도록

 └ …

 

 언제까지나 이어지도록 한다는 일이라면 ‘굳히는’ 셈입니다. ‘굳어지도록’ 하는 셈이지요. 어느 한 가지로 굳어진다면, 무척 ‘오래가는’ 일입니다.

 

 ┌ 젊음은 언제까지나 영속되지 않는다

 │→ 젊음은 언제까지나 이어지지 않는다

 └ 영속하는 전통의 흐름 → 오래오래 이어지는 전통 흐름

 

 우리 삶을 돌아보건대, 좋은 쪽으로 굳어진다면 더없이 반가울 텐데요, 사회 틀거리나 법이나 교육이나 문화나, 여태껏 좋은 쪽으로 굳어지거나 단단해지면서 오래오래 흘러가는 대목이 있는가는 잘 모르겠습니다. 늘 얄궂은 쪽으로 흐르고, 언제나 안타까운 자리에서 헤어나지 못하며, 자꾸자꾸 슬픈 수렁에서 허우적거리지 않느냐 싶습니다.

 

 

ㄷ. 표면화되다

 

.. 시라누이해 연안 전 지역주민의 단백원과 어민의 생활권 등 사회문제로써 마침내 표면화되었다 ..  《이시무레 미치코/김경인 옮김-슬픈 미나마타》(달팽이,2007) 82쪽

 

 ‘시라누이해(-海)’는 ‘시라누이바다’로 손보면 좋으나 바로 뒤에 ‘연안(沿岸)’이 붙는 만큼, “시라누이해 연안”을 “시라누이 바닷가”로 손보는 편이 낫습니다. “전(全) 지역주민의 단백원과”는 “모든 마을사람들 단백원과”로 손볼 수 있어요. “어민의 생활권 등”은 “바다마을 사람들 살림살이까지 해서”로 손봅니다.

 

 ┌ 표면화(表面化) : 겉으로 나타나거나 눈에 띔

 │   - 속으로만 곪아 있던 문제가 결국 표면화되었다

 │

 ├ 사회문제로써 표면화되었다

 │→ 사회문제로 물위로 떠올랐다

 │→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 사회문제가 되었다

 │→ 사회문제로 커져 버렸다

 └ …

 

 어떤 분은 한자말 ‘표면’을 그냥 쓰고플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표면으로 드러났다”나 “표면으로 떠올랐다”처럼 적으면 돼요. 그렇지만 ‘표면’이라는 한자말을 쓰면서 ‘-化’붙이 말을 안 쓰는 분이 몹시 드뭅니다. 이럴 바에는 ‘표면’도 함께 덜어내거나 다듬어서 새롭게 쓰는 편이 훨씬 나으리라 생각합니다.

 

 ┌ 결국 표면화되었다

 │

 │→ 끝내 불거졌다

 │→ 그예 터져나왔다

 │→ 드디어 뻥하고 터졌다

 └ …

 

 먼저, 말뜻 그대로 “물위로 떠올랐다”처럼 적을 수 있습니다. ‘물위로’를 덜어도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있고, “사회문제가 되었다”로 적어도 어울리네요. 이렇게 적으면 가장 단출하겠습니다. “사회문제로 커져 버렸다”든지 “사회문제로 불거졌다”처럼 적어도 괜찮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화#우리 말#국어순화#외마디 한자말#우리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작은책집으로 걸어간 서른해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